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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이론

"유럽 위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


각국 정부·은행들, 초긴축·달러확보 등 조용히 대책 마련 나서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이나 이탈리아 구제금융땐 최악, "해결책 나올 것" 전망 우세

작년 11월 영국을 방문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로드 터너 FSA(금융감독청) 의장에게 최근 영국 정부가 펴고 있는 초(超)긴축 정책을 언급하며 "이렇게 하면 국민 반발이 크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인기가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 유럽 재정 위기가 최악으로 번질 것을 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터너 의장은 국제 금융 위기의 원인을 분석한 '터너 보고서'로 국제 금융계에서 화제를 모은 주인공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4일 미국 채권시장에서 세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2009년 이후 최대였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유럽 재정 위기에 따른 자금 확충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채권을 발행했다"고 설명했다. 김석동 위원장은 최근 국책은행 행장들에게 "한국에 있지 말고 외국에 나가서 돈을 구해오라"고 등을 떠민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 정부가 조용히 최악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유럽 위기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발전할 확률은 낮지만, 일단 터지면 리먼 파산 때와 버금가거나 이를 넘어서는 충격파가 세계 경제를 때릴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거나, 이탈리아가 국채 만기 연장에 실패해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경우를 꼽았다. 이 경우 이 두 나라 국채에 많이 투자한 프랑스 대형 은행들이 부실해지고, 프랑스 국채 금리가 치솟아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 유로화 가치는 폭락하고, 미국과 유럽의 일부 대형 은행에서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사태)이 발생한다. 대형 은행들이 전 세계에서 자금을 회수하면서 세계 증시가 폭락한다. 거래 상대방을 못 믿는 불신이 팽배해 신용 경색이 심화되면서 기업들이 사업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세계 실물경제가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유럽 사태가 최악으로 번지기 전에 해결책이 나오리라고 보는 전망이 더 많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금은 몸을 사리고 있지만, 사태가 악화되면 적극적으로 돈을 풀거나, 중국이 자금을 지원하는 식의 국제 공조가 이뤄질 것이라는 뜻이다. 유럽의 싱크탱크인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의 티에리 드 몽브리알 소장은 "어느 유럽 국가도 재앙의 책임을 감당할 수 없기에 마지막 순간에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