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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이론

[Weekly BIZ] [Interview] 노벨 경제학상 수상 마이클 스펜스 교수


"세계경제 新모델 실험 시작됐는데 美, 장기전략 없어"
"신흥국의 활력·선진국의 회복 결합하면 위기 극복의 길 보일 것"

"2008년 미국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 경제의 올드 모델(old model)은 작동을 멈췄다. 수출국가와 수입국가, 흑자국가와 적자국가, 채권국가와 채무국가 간의 글로벌 불균형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세계 경제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에게 한계가 닥쳤다. 세계 각국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뉴 모델(new model)을 모색하는 거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중국은 수출주도에서 내수증진으로 경제정책의 중심을 옮기는 12차 5개년 계획을 가동했다. 유럽연합(EU)은 재정통합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문제는 미국이다.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이 없다. 국제 문제에 공동 대응할 준비도 안 됐다.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는 망할 수밖에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2001년)인 마이클 스펜스(Spence·69) 미국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의 세계 경제 진단이다. 스펜스 교수는 1950년 이후 최소 25년 동안 연평균 7% 이상 성장을 지속한 국가들의 공통 요소를 추출한 '성장 보고서(2008년·세계은행)'를 작성한 경제성장 분야 전문가다.

스펜스 교수는 "우리의 자녀와 손자 세대가 더 나은 기회를 가지려면 세계 경제가 성장을 지속해야 한다. 3년 만에 두 번째로 찾아온 세계 경제 위기는 미국에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과 국제 공조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가 위기를 거치는 동안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격차는 줄었고 의존성은 커졌다. 한 국가의 위기는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퍼진다. 국제 공조 없이는 위기의 전염을 막을 수 없다. 신흥국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한 탓에 과거처럼 미국이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들 수도 없다.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거버넌스(global governance·국제적인 문제에 세계 각국이 공동으로 대처하는 시스템)가 필요하다. GDP 세계 1위이며 기축통화인 달러를 잡고 있는 미국이 앞장서야 한다. 미국이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을 마련해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른 나라들과 미래의 공존을 논의해야 한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부재는 비극을 낳는다. 세계 역사의 경험이다. 앞으로 선진국과 신흥국이 어느 정도 협력할 수 있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스펜스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저서 '넥스트 컨버전스(Next Convergence)'의 한글판을 올 1월 출간했다. Weekly BIZ가 작년 12월 8일 뉴욕에서 그를 만났다.

 마이클 스펜스 교수는“세계경제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한다. 선진국과 신흥국이 얼마나 협력하는가에 따라 앞으로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 AFP
'적응하라. 안 그러면 죽는다' '논쟁은 이제 그만… 실행이 필요한 때' '서로에게 믿음을 줄 만한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고통 없인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마이클 스펜스(Spence) 교수가 최근 언론에 기고한 칼럼들의 제목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를 향해 보낸 경고다. 스펜스 교수는 "앞길이 험하다. 아무리 낙관주의로 보려고 해도 적어도 다가올 몇년 동안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글로벌 경제가 성장을 회복하고 기회를 확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최근 거듭된 위기의 심각성, 일자리 만들기의 어려움, 보호주의의 확산, 정치적 결단의 부재는 우리를 비관주의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와 미래 세대는 온갖 장애물을 헤쳐나가거나 돌아가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만 한다. 신흥국의 활력과 선진국의 회복을 결합하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지혜를 최대한 동원할 때다."

美는 거북에 뒤처진 토끼
뒤따르던 中·EU에 밀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존재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 미국이 앞장서 마련해야

①미국… 거북에게 뒤처진 토끼

스펜스 교수는 미국을 '거북에게 뒤처진 토끼'로 비유했다. "두 차례 위기를 겪으며 글로벌 경제의 올드 모델이 무너졌다. 중국은 12차 5개년 계획, 유럽은 재정통합이라는 거대한 실험을 통해 뉴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 오랫동안 자신을 뒤따라 오던 거북(중국·유럽)에게 뒤처진 토끼(미국) 같은 모습이다."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는 이야기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경제이다. 미국의 GDP(14조6580억달러)는 세계 1위이며 전 세계 GDP의 23.3%를 차지한다. 세계 2위 중국의 GDP(5조8780억달러)는 미국의 40% 정도에 불과하다. 전 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9.3%)도 마찬가지다. 미국을 빼놓고 세계 경제를 말할 수 없다."

―경제 규모만 가지고 말할 수 있나.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위기를 겪으며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선 중국은 여기에서 미국에 밀린다. 중국이 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새로운 준비통화로 삼자고 여러 번 주장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무역흑자로 확보한 외환보유액을 미국 국채에 투자해 두었기 때문에 달러화가 기축통화 자리에서 밀려날 일도 별로 없다. 달러화가 무너지면 자신들의 자산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세계 경제를 신흥국과 선진국, 수출국과 수입국, 채권국과 채무국 간의 글로벌 불균형으로 유지하던 올드 모델은 작동을 멈췄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으로 대표되는 신흥국의 발언권을 인정해주는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 최대 경제이며 선진국을 대표하는 미국이 나서야 한다. 미국은 자국의 경제를 되살리고 국제적 공조를 이뤄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②미국 경제가 살아나려면

"가장 어려운 일은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라고 스펜스 교수는 말했다. "미국 경제를 바라볼 때 가장 큰 잘못은 과거처럼 시간이 흘러서 경기가 나쁜 상태에서 좋은 상태로 흐름이 바뀌면 이번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는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성장을 회복할 수 없다."

―미국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나.

"일자리 만들기다.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에서 생겨난 일자리는 2700만개였다. 이들의 98%가 해외 수출과는 무관한 정부기관·주택건설·건강관리·소매판매 등의 비(非)교역 부문에 해당된다. 2008년 금융위기를 넘긴 뒤 미국 정부가 긴축재정에 돌입하고 민간소비가 감소하자 비교역 부문의 일자리도 줄었다."

―일자리를 어떻게 만드나.

"문제 속에 답이 있다. 해외 수출을 하는 교역 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제조업이다."

―민간부문에 맡겨둔다고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에서 구조적인 변화는 공공부문의 정책과 투자, 민간부문의 동기와 동력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미국 정부는 1980년대 이후로 제조업을 정책적 고려 대상에서 배제했다. 결과적으로 수출이 줄어서 경상수지 적자가 커졌다. 중간계층의 소득이 줄면서 양극화 문제도 생겼다. 경제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려면 유능한 정부가 있어야 한다."

―미국이 벤치마킹할 나라가 있다면.

"독일이다. 2003년 사민당 정부는 경제개혁 프로그램 '어젠다 2010'을 가동했다. 당시 독일의 성장률은 0%로 떨어져 있었다. 경직된 노동시장, 지나친 기업활동 규제, 과도한 사회보장이 문제로 꼽혔다. 정부가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해고절차를 단순화하는 방법으로 임금을 낮췄다. 경쟁국은 임금이 오르는데 독일만 임금이 내려갔다. 독일 경제는 선진국 가운데 눈에 띄는 성장을 거듭했다."

③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를 향하여

스펜스 교수는 "세계 경제가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신흥국이 G20을 통해 국제공조, 정책조율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은 12차 5개년 계획, 유럽은 재정통합이라는 장기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이런 것이 없다.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의제가 없는 셈이다. 미국이 다른 국가들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장기 성장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내놓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국가도 국제공조를 위한 논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장기 전략은 어떤 내용이 되어야 하나.

"올드 모델에서 벗어난 뉴 모델이 되어야 한다. 위기 이전 미국 경제는 과도한 부채, 자산 인플레이션, 수입의존과 소비과잉에 의해 움직여왔다.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제조업을 되살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경제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먼저 인프라 스트럭처 투자를 늘려야 한다. 소비 중심에서 투자 중심으로 경제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 정부지출을 줄이고 소비세율을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첨단산업이 요구하는 기능을 가진 고급인력을 키울 수 있는 수준으로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증세를 말했는데 그 세금을 누가 낼 수 있나.

"미국은 대차대조표 불황에 빠져 있다. 자산 거품이 빠지면서 부채를 갚느라 소비를 못 하는 상황이다. 국민경제의 총수요를 유지하면서 투자도 늘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죽는 수밖에 없다. 당장에는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서 총수요를 떠받쳐야 한다. 인프라 스트럭처, 인재 양성을 위한 재원도 여기에서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유럽 위기, 시간이 없다
올 세계경제 변수는 EU 그리스는 한시적 퇴출을
유로존 재정통합 이루면 세계경제 성장에 기여

④유럽의 위기… 시간이 없다

스펜스 교수는 "2012년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은 변동성(volatility)이다. 그 진앙(震央)은 유럽이다"라고 단언했다. "유럽연합(EU)을 하나로 묶으면 세계 최대의 경제 단위가 된다. GDP 합계가 미국보다 크다. EU 경제가 안정성을 회복하고 성장을 지속해야 세계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 경제가 성장과 안정성을 갖추려면.

"유로존(eurozone)은 통화통합만 이뤄진 상태에서 위기에 빠졌다. 유로존 안에서도 독일·프랑스 등 중심국가와 그리스·포르투갈 등 주변국가 간에 불균형이 오랫동안 존재했다. 작년 12월 신(新)재정협약을 계기로 유로존은 재정통합을 모색하고 있다. 거대한 실험에 들어간 것이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유럽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의 성장과 안정성에 기여할 것이다."

―위기에 빠진 유럽은 시간이 없다. 당장 처리할 문제가 많다.

"그렇다. 유로존의 재정통합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빨리 처리할 문제가 있다. 우선 그리스를 적어도 한시적으로 유로존에서 나가도록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가 성장과 고용을 회복할 방법이 없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금리, 환율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자국 통화로 복귀해 평가 절하를 통해 경쟁력을 되찾게 해야 한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가능하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어떤가.

"그리스와는 다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경제규모가 훨씬 크다. 두 나라의 위기가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독일의 주장처럼 EU 조약을 개정해 재정통합을 이루는 방법으로는 안 된다. 시간이 없다."

中, 초점 제대로 파악
중국 국내 소비 확대 하면 전세계 일자리 8500만개 만들어 내는 효과 발생
10~15년內 미국·EU와같은 규모로 성장할 것

⑤중국의 미래와 과제

스펜스 교수는 "중국에 대해서는 낙관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글로벌 경제위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대처한 뒤 12차 5개년 계획을 통해 뉴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중국은 세계 1위의 수출국이면서 세계 2위의 수입국이다. 한국·인도·브라질·일본의 최대 수출시장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이 수출에서 내수(內需)로 경제정책의 중심을 옮기면 한국 등에는 수출시장이 커지는 효과가 있다."

―중국의 12차 5개년 계획이 성공할 것인가.

"몇 가지 우려는 있지만 성공할 것으로 본다. 중국은 1978년 경제 개방 이후 상황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12차 5개년 계획도 상황 변화에 발맞춰 수출에서 내수로, 성장에서 분배로 초점을 제대로 옮겼다. 불평등 해소와 사회 안전망 문제에도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앞날은.

"중국은 10~15년 안에 미국·EU와 같은 경제 규모로 성장할 것이다. 선진국은 앞으로 상당 기간 고전할 것이다. 그동안 중국이 성장을 지속하지 않으면 세계 경제가 흔들릴 것이다. 중국이 12차 5개년 계획에 성공해 국내소비를 확대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85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중국의 과제는.

"세계 경제가 중국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수출과 무역흑자를 줄이고 위안화 절상을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1인당 GDP(4382달러)는 한국의 4분의 1, 미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기존 방식의 성장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이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를 위한 국제 공조에 선뜻 응하기 어려운 정치적·경제적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