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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식

[태평로] '버핏세'보다 '세금 안 내는 부자' 대책부터

미국의 억만장자인 워런 버핏은 작년에 692만달러(80억원)의 연방소득세를 냈다. 기부금 등을 제외한 과세 가능 소득 3981만달러(492억원)의 17.4%다. 버핏은 "내 사무실 직원 20명은 33~41%의 세금을 냈다"며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소득 100만달러 이상 부자들에 대한 세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버핏세(稅)'다.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한국에서라면 버핏은 80억원의 두 배가 넘는 170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버핏이 벌어들인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당금에 대한 세율 차이 때문이다. 미국은 근로소득세 최고 세율은 35%이지만 배당소득에 대한 세율은 15%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에선 배당소득과 근로소득의 최고세율이 똑같이 35%다.

최근 국내에서도 '버핏세'를 도입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민주당·민주노동당·참여연대에 이어 여당인 한나라당까지 '부자 증세(增稅)'로 기울고 있다. 1억2000만~2억원을 넘는 연(年)소득에 대해 38~42%의 세금을 물리는 방안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알기 쉽게 '버핏세'라고 하지만 의미는 크게 다르다.

세계적으로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이 들끓고 있고, 체제위기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증가에 대비하려면 부자증세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으로 세수(稅收)가 늘어나는 효과보다 투자위축과 자본유출 같은 역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부자증세의 의미를 살리면서 부작용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소득세율을 건드리지 않고도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을 방법은 있다. 무엇보다 상장주식과 파생금융상품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課稅)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주식 양도차익 비과세는 금융시장을 키우기 위해 도입됐다. 이제는 옵션시장 거래량이 세계 1위에 올라설 정도로 한국의 자본시장 규모가 커진 만큼 비과세 정책을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다. 현재 지분율 3% 이상 또는 지분총액 100억원 이상 대주주만 양도차익에 대해 10~30%의 세금을 물고 있고, 소액주주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소액주주라고 해서 일반 개미투자자들을 떠올리면 착각이다. 거액을 투자할 수 있는 부유층이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면서, 비과세 혜택도 누리고 있다.

스톡옵션 절세(節稅) 방안 같은 편법도 있다. 대기업 임원이 주당 1만원에 주식을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받은 뒤 주가가 5만원일 때 주식을 사서 곧바로 처분하면 주당 4만원의 차익에 대해 종합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그런데 주가가 3만원일 때 주식을 사서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주가가 5만원으로 올랐을 때 처분하면 2만원에 대한 세금만 내면 된다.

몇 년 전부터 새로운 투자대상으로 각광받고 있는 미술품과 골동품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역시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전문직과 자영업자들의 소득에도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로 세제가 복잡해지면서 고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문제도 바로잡아야 한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려도 소득이 드러나지 않는 '숨은 부자'들의 세부담은 늘지 않고, 세제가 오히려 더 불공평해질 수 있다. 세제상의 구멍을 하나하나 메우고, 은폐돼 있는 소득에 대한 과세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게 조세정의를 세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