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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이론

[Weekly BIZ] [신동엽 교수의 경영칼럼] 재력가는 富만 늘린 뿐… 기업가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기업가 정신 충만한 사회 역동적으로 진화·발전…
하지만 창업 초심 잃고 단순 재력가 전락 많아 그들의 수백조 재산이 혁신에 투자되질 못해…
21세기형 벤처붐으로 국가의 발전 이끌어야…

흔히 친기업 정책을 부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생각해 비판한다. 기업가와 재력가의 차이를 몰라 생기는 오해다. 기업가 중 재력가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뿌리는 전혀 다르며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기업 경영이 부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부동산 투기로도 재력가는 될 수 있으나 이를 기업가라 하지 않는다. 좋은 기업가가 되고 싶은 열망은 크나 재력가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처럼 기업 활동으로 쌓은 부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경우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연구의 선구자는 슘페터(1883~1950)다. 그는 기업가를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 미래에 도전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혁신가'라 규정한다.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즉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도전과 혁신을 통해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가치창조(value creation)'인 것이다.

반면 재력가는 이미 존재하던 경제적 가치를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가치획득(value capturing)'에 초점을 맞춘다. 재력가는 자신의 부는 늘리나 이로 인해 사회 전체 부가 증가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조하려는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사회는 역동적으로 성장한다.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다.

반면, 축적한 부를 지키려는 재력가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기존 이해관계와 권력구조를 유지하는 데 급급해 정체되기 쉽다. 슘페터는 시장을 선점한 거대 기업들이 독점적 기득권을 방어하기 위해 덤핑, 담합 등을 이용해 새로운 경쟁자들의 진입을 봉쇄하던 초기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을 내놨다. 새로운 시장,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경쟁하는 기업가정신 중심의 역동적 자본주의 모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기업가로 성공하면 창업기의 기업가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단순한 재력가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재력가는 많아졌는데 진정한 기업가들은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도전해 세계적 기업과 경제를 일군 기업가정신의 화신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기업과 경제가 성숙하면서 이런 역동적 기업가정신이 급속히 사라지는 조로(早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성세대 재력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수백조의 재산 중 새로운 가치창출을 위한 신사업이나 혁신에 투자되는 액수는 미미하다. 지난 20여년간 새로 창업해 주요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극소수이며, 10여년 전 전국을 휩쓸었던 벤처 열풍은 과거 얘기가 돼버렸다.

대기업들의 관료화와 역동성 상실은 더 심각하다. 최근 우리 대기업이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도전해 주요 신사업이나 신시장을 창출해낸 사례는 거의 들어본 바가 없다.

이에 대해 우리 대기업들의 경영이 선진화·시스템화돼, 더 이상 과거처럼 개인적 감(感)이나 열정에 의존해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을 하지 않는 데 대한 핑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온갖 구실을 붙여 새로운 시도를 못하게 하는 관료화된 늙은 조직과 사회에 미래는 없다. 최근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젊은 조직론을 강조하며 대규모 신사업 진출을 결정한 것은 우리 대기업들이 가진 관료화와 조로증에 대한 위기 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기업가정신을 부양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와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 자신만 부자가 되는 재력가와 달리 기업가는 사회 전체에 풍요를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신성장동력 창출이나 미래지향적 혁신을 위한 투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원해야 한다. 또 활발한 창업을 유도할 제2의 벤처붐이 시급하다. 10여년 전의 벤처붐처럼 재력가가 되겠다는 벤처가 아니라 진정한 기업가가 되겠다는 21세기형 벤처붐이 돼야 한다. 늘 창조적 혁신을 요구하는 21세기 창조경제에서는 기업가정신이 기업뿐 아니라 각 개인과 국가의 운명까지 좌우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