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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환율

환율 연중 최저... 불붙은 달러 투자붐

입력 : 2016.08.10 06:00 “지금 달러 싸게 사두면 찬바람 불 땐 수익이 나지 않겠어요?”(40대 주부 이모씨)

9일 서울 삼성동 하나금융투자 강남WM센터. 이날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1106.1원으로 연중 최저치까지 떨어지자, 지점에는 달러 매수 타이밍을 문의하는 고객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환율이 앞으로 어디까지 떨어질 지 향후 전망과 적절한 매입 시점을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문경신 지점장은 “하루 100통 넘게 달러 매입 여부를 묻는 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며 “자산 규모에 따라 다른데 5만달러에서 10만달러 정도를 한꺼번에 매입하거나 1만~2만달러씩 쪼개서 사는 고객들이 많다”고 전했다.

한때 1200원선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 초반까지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에 달러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다. 강남권의 거액 자산가들뿐 아니라 30~40대 중산층까지 달러 강세에 베팅하는 환(換)테크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환율이 오르지 않으면 환테크로 큰 손실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106.1원(종가 기준)까지 하락하며 1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작년 6월 23일(1104.6원)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106.1원(종가 기준)까지 하락하며 1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작년 6월 23일(1104.6원)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 연중 최저치로 떨어진 원·달러 환율

지난 2월 1달러당 1241원을 웃돌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일 1106.1원까지 내려가 1100원대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 시중은행 본부장은 “최근 환율 하락을 기회라고 보고 달러에 베팅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수십만 달러 규모로 달러를 사재기하는 수퍼 개미들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이 지금보다 더 떨어진다고 예측하면서 달러 쇼핑을 미룬 대기 수요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윤석민 신한PWM강남센터 팀장은 “10만 달러씩 투자하는 자산가들이 많은데, 환차익은 비과세여서 환율이 10원 오르면 100만원 가량 순이익이 난다”면서 “수익률로 따지면 10%가 채 안 되지만 정기예금 금리가 1.5%인 저금리 시대에는 괜찮은 투자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홍윤희 기업은행 강남WM센터 부센터장은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 정도를 분할 매수하는 수요도 꾸준하다”고 했다.

달러 투자가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주요 금융회사들의 달러 자산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대신증권의 달러 자산은 지난 5월 말 1억6883만달러에서 7월 말엔 3억1121만달러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6월에 2961만달러가 유입됐고 7월에는 이보다 4배 이상 증가한 1억1277만달러(약 1250억원)가 몰렸다.

KEB하나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도 지난 5월 113억2800만달러에서 지난 달에는 138억1900만달러까지 24억9100만달러 증가했다. KB국민은행도 같은 기간 달러예금이 41억8100만달러에서 48억2800만달러로 6억4700만달러가 증가했다.

◆ 달러펀드·달러보험 가입해 환차익+투자수익 노려


자료 한국은행, 그래픽 이진희 디자이너
자료 한국은행, 그래픽 이진희 디자이너


달러 재테크에 가담한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상품으로는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이 꼽힌다.

달러RP는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표시 유가증권(채권)을 일정기간 후 되산다는 조건으로 고객에게 파는 상품이다. 달러 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운 대신 이자가 거의 붙지 않지만 달러 RP는 90일 보유시 0.8%의 금리가 붙는다. 대신증권이나 신한금융투자 등 대다수 금융회사들이 달러 RP를 판매하고 있다.

달러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달러보험이란, 보험료 납입과 자산 운용, 보험금 지급이 모두 달러로 이뤄지는 일종의 저축보험이다.

AIA생명의 달러보험 상품인 ‘골든타임 연금보험’은 지난 달 초회보험료가 1114만달러(127억2000만원)로 집계됐다. 한달 전인 지난 6월 초회보험료 783만달러보다 331만달러 증가했다.

달러 증여로 더 큰 절세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이호용 KB국민은행 WM컨설팅부 세무전문위원은 “환율 상승이 기대되는 시점에서 달러 현찰을 증여하면 원화 증여 대비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다”면서 “환차익은 비과세라는 점에 착안한 세테크 전략"이라고 말했다.

◆ 전문가들 “원·달러 환율, 연말엔 상승 여지 높아"

얼마 전까지 1200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 초반까지 내려앉은 이유로는 미국 금리 인상 지연과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상승 등이 꼽힌다.

허진욱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거시경제팀장은 “미국 금리인상이 빠른 시일 내에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원화 가치 상승(환율 하락)의 주된 원인”이라며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발생했을 때의 우려감과 달리 글로벌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세를 유지한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연말 쯤엔 원·달러 환율이 다시 상승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박형중 대신증권 자산배분실 팀장은 “기업 구조조정이나 경제성장률 하락 등이 얽혀있는 국내 여건과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4분기(10~12월) 쯤에는 원·달러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도 “브렉시트(Brexit) 이후 글로벌 자금 이동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원·달러 환율은 1차적으로 1150원선까지 회복되고 연말까지 1185원선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