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환율

치솟는 원·달러 환율... 명동 환전벨트에 뭉칫돈 밀물

입력 : 2016.02.26 06:01 | 수정 : 2016.02.26 08:33


“1만(달러) 바꾸러 왔는데 기준 환율에서 더 깎아줄 순 없나요?”(50대 주부)
“요즘 환율이 너무 올라서 저희도 곤란해요. 이게 최선이에요” (환전소 사장)

지난 25일 사설 환전소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서울 명동의 환전벨트. 원·달러 환율이 5년 8개월 만에 최고치(1238.8원)를 기록한 이날,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환전을 하려는 손님들과 환전 상인들의 흥정이 한창이었다.

이 곳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신문지로 꽁꽁 싸 맨 달러 5000달러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요즘 달러가 많이 올랐다는 말을 듣고, 작년에 사둔 달러를 바꾸려고 왔다"면서 “환전소마다 환율이 달라서 부지런히 발품 팔면서 (매입 환율이) 좋은 가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환전소 대표 A씨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서면서 5000달러 넘는 큰 돈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며 “앞으로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달러를 사들이는 상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 명동 인근에 위치한 환전소 골목. 은행보다 유리한 환율을 적용해 줘서 실속형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 / 사진=남민우 기자
서울 명동 인근에 위치한 환전소 골목. 은행보다 유리한 환율을 적용해 줘서 실속형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다. / 사진=남민우 기자


◆ 5000불 이상 뭉칫돈 손님 늘어난 명동 환전벨트

최근 달러화, 위안화, 엔화 등 주요 통화 환율이 요동치면서 환전상들의 발걸음도 카운터의 계수기(현찰을 세는 기계)만큼이나 부쩍 바빠졌다. 정부의 구두개입 등 돌발 변수가 튀어나와 장중 환율이 급락이라도 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명동에서 소규모 환전상을 운영하는 B씨는 “여행객들이 푼돈을 바꾸는 평소에는 1주일에 한 번 돈을 되판다”며 “최근에는 1000달러 이상 바꾸는 손님들이 적지 않아 거액 거래를 할 땐 한 사람은 자리를 지키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은행에 바로 돈을 바꾸러 가는 방식으로 교대 근무를 선다”고 말했다.

환전상들이 돈을 버는 기본 공식은 간단하다. 고객이 매도한 외화나 원화를 또 다른 중개상이나 은행에 더 비싼 값에 팔아 마진을 남기는 것이다.

보통 실적을 채워야 하는 은행 지점들이 인근 환전상들과 거래를 맺는다. 은행 입장에선 환전상은 ‘큰 손 고객’이기 때문에 대부분 마진 없이 환전상들이 들고 온 돈을 바꿔 준다. 은행처럼 ‘도매상’ 역할이 가능한 경쟁력을 갖춘 환전상들은 일반 은행 지점보다는 수수료를 적게 받는 방식으로 고객들을 끌어모은다.

일부 환전상들은 환율 변동이 심해지다보니 고시 환율을 적어두는 하얀 칠판을 공백으로 남겨놨다. 명동 부근 지하상가에서 공인환전소를 운영하는 C씨는 “보통 하루에 3번 정도 안내판에 있는 환율을 바꾼다”며 “요즘은 환율이 하루에도 10원씩 왔다 갔다 하다보니 아예 숫자를 지워놨다”고 말했다.

◆ 원·달러 환율 2010년 6월 이후 최고치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은 1주일 새 30원 가까이 오를 정도로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5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4원 오른 1238.8원에 거래를 마쳤다. 2010년 6월 11일 이후 5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달러 환율의 하루 변동 폭(하루 중 고가·저가 차이의 평균)은 올 1월에 7.9원으로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컸고, 2월 변동 폭은 10원에 근접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안전 자산인 달러화와 엔화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중국의 자본 유출이 가속화되면서 환율의 출렁임도 급격하게 커진 탓이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외환시장이 출렁이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공동 명의로 “시장 내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례적으로 구두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은행이나 금융기관에 달러 자산을 맡겨둔 고객들은 큰 이득을 거두고 있다. 강남에 사는 40대 주부 이모씨는 “담당 PB가 여유자금을 원화 대신 달러로 보유하고 있으라고 해서 일부 바꿔 놨는데 반년도 안돼 7%의 수익을 거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전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신중하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국제금융실장은 “미국 금리 인상이 지연되면서 이미 상당 기간 달러 강세가 진행된 측면이 있다”며 “최근 달러 강세기간이 과거에 비해 짧아진데다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도 불투명하다는 전망을 감안할 때 향후 달러 강세 속도는 더뎌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