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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환율

환율 전쟁 확산…중국, 인내심 바닥나다

 

2008년 미국 중앙은행(Fed)이 시작한 환율 전쟁이 일본중앙은행(BOJ)에서 유럽중앙은행(ECB)까지 왔다. 이 전쟁에 중국마저 가담한다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하반기에 미국은 주택 가격 거품이 붕괴되면서 금융 위기를 겪었다. 그 이후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되자 미 정책 당국은 적극적 재정 및 통화정책으로 대응했다. 특히 Fed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통화정책을 과감하게 운용했다. 한국의 기준 금리에 해당하는 연방기금 금리를 5.25%에서 0~0.25%로 인하했고 이도 모자라 3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로 3조 달러 이상의 통화를 공급했다. 미국이 환율 전쟁을 하는 동안 특히 엔화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엔·달러 환율이 2007년 말 112엔에서 2011년 8월 77엔으로 엔화 가치가 무려 31%나 올랐다.

달러 가치 하락은 미국 경제 회복에 크게 기여했다. 2014년 3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8.3% 증가했지만 수출은 2배 정도인 17.5% 늘었다.

증국, 과잉투자 후유증 몸살

2012년부터는 일본이 환율 전쟁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 거품 경제가 붕괴되면서 20년 이상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본 정부가 돈을 풀어 엔화 가치 하락을 유도했다. BOJ는 2013년 본원통화를 46% 증가시킨 데 이어 2014년에도 37% 늘렸다.

엔·달러 환율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일본과 미국의 상대적 본원통화 공급이다. 2008년에서 2011년까지 미국이 양적 완화를 통해 일본보다 돈을 더 많이 공급했다. 그래서 엔·달러 환율이 112엔에서 77엔까지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2012년 이후로는 Fed보다 BOJ가 돈을 훨씬 더 많이 풀고 있다. 이에 따라 엔·달러 환율이 최근 120엔 안팎까지 오른 것이다. 미국은 경기 회복에 따라 금리 인상 시점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아직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돈을 더 풀 전망이다. 엔화 가치가 더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들어서는 ECB가 환율 전쟁에 가담했다. 최근 ECB는 시장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2016년 9월까지 매월 600억 유로(총 1조1400억 유로)를 국채 등 채권 매입에 사용하기로 했다. 이는 앞서 양적 완화를 단행했던 미국과 일본보다 규모가 더 크다. 예를 들면 미국의 양적 완화 규모가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 잔액의 6.3%였고 일본은 7.0%다. ECB가 양적 완화를 계획대로 실행한다면 국채 잔액의 8.0%가 된다. ECB의 양적 완화로 유로화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2009년 유로당 1.5134달러까지 상승했던 달러·유로 환율이 최근에는 1.1204달러까지 하락했다. 게다가 그리스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압승하면서 유로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조만간 유로와 달러 가치가 같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환율 전쟁은 ECB에서 끝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언제 참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2009년 세계경제가 선진국(-3.5% 성장)을 중심으로 마이너스 성장(-0.4%)했다. 그러나 그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9.2%였다. 그래서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제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성장 내용을 보면, 투자 중심의 불균형 성장이었다. 중국의 GDP에서 고정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41.6%에서 2009년에는 47.2%(세계 평균 22%)까지 크게 올라갔다. 중국 정부가 기업에 투자를 유도해 세계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데도 10%에 근접하는 놀라운 성장을 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과잉투자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해 생산 시설은 늘려 놓았는데, 수요 부족으로 대부분의 산업 가동률이 70% 안팎으로 떨어졌다. 중국 기업이 부실해지고 나아가 은행도 부실해지는 과정이 전개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소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유도하고 있다(중국 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현재 36% 정도로 매우 낮다. 미국과 한국은 각각 68%, 49%다). 2014년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7000달러(2013년 6959달러)가 넘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경제가 앞으로 소비 중심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부가 기업에 투자를 늘리라고 유도해 기업 투자가 증가한 것만큼 소비는 그렇게 빨리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변동환율제 전환 나설 수도

이 과정에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앞으로도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4년 중국 경제성장률이 7.4%로 1990년(3.8%) 이후 2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갈수록 경제성장률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2015년과 2016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6.8%와 6.3%로 낮춰 전망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과잉투자한 기업이 부실해지고 여기에 돈을 빌려준 은행도 구조조정을 겪어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제성장률은 한 단계 더 떨어진다. 한국 경제가 1997년 경제 위기(이른 ‘IMF’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하고 경제성장률이 8%에서 5%대로 떨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미국·일본·유럽 중앙은행의 환율 전쟁을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기업과 은행의 부실 처리 과정에서 위안화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환율 제도를 자유변동환율제로 바꾸면서 환율 전쟁에 가담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2005년부터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를 채택하면서 정책 당국이 환율을 결정하고 변동 폭만 점차 확대해 오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2012년 4월부터 1일 환율 변동 폭을 상하 1%로 유지하다가 2014년 3월부터 2%로 확대했다. 중국 정부가 자본시장을 자유화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중국은 그동안 ‘무역 강국’ 혹은 ‘제조 강국’을 목표로 내세웠다. 2013년부터 중국의 무역 규모가 미국을 앞서면서 이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 이제 중국이 추구하는 것은 위안화 국제화를 포함한 ‘금융 강국’이다. 중국은 자본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할 것이고 이와 함께 자유변동환율제도를 2~3년 내에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2005~2013년 연평균 2400억 달러 정도였다.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위안화 가치가 그동안 상승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국외 직접 투자나 금융 상품 투자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 이상으로 돈을 내보내 금융 수지를 적자로 만들 전망이다. 자유변동환율제 전환과 금융 수지 적자로 머지않아 중국이 환율 전쟁에 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원화 가치는 GDP의 6%가 넘은 경상수지 흑자로 이미 주요 통화에 비해 상당 폭 올랐다. 특히 한국 원화는 일본 엔화에 비해 2015년 1월 현재 2011년 10월보다 39%나 상승했고 이것이 이미 한국 수출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수출 중 25%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마저 환율 전쟁에 가담한다면 그 영향은 훨씬 더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