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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환율

한국, 수출경쟁력 지키려면 환율전쟁 손놓고 있어선 안돼

◆ 빅샷 인터뷰 ③ 노벨경제학상 수상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다면 추가 금리 인하를 검토해볼 만하다.”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는 기자의 설명에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내놓은 답변이다. 지난해 말 컬럼비아대 교수실에서 만난 스티글리츠 교수는 “현재 원화 환율은 한국 거시경제 펀더멘털이 아닌 다른 나라 통화정책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환율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스티글리츠 교수는 “일본 등 주변 경쟁국들이 금리 인하·추가 양적완화를 통해 자국 통화가치를 앞다퉈 낮추는 경쟁적 환율절하(competitive devaluation)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환율 때문에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또 스티글리츠 교수는 추가 금리 인하 후 사후정책을 주도면밀하게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저금리로 풍부해진 유동성이 비생산적 부분에 흘러들어 가 거품을 키우도록 해서는 안 되고 생산적인 곳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득불평등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는 그는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 경제성장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경제가 더 강한 성장을 하는 데 장애물은.

▶미국 경제가 다시 강한 성장궤도로 재진입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전 기록한 장기 성장률과의 격차(갭)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제는 3가지 위협에 직면해 있다.

첫째, 미국을 제외한 글로벌 경제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유럽 경기는 아직도 매우 취약한 상태다. 특히 러시아를 필두로 신흥시장 성장 둔화세가 뚜렷하다.

둘째, 미국 정치 리스크다. 지난 수년간 정치가 미국 경제 발목을 잡아왔다. 특히 올해 공화당이 상하 양원 다수당이 된다는 점이 미국 경제 최대 위협이라고 본다. 공화당은 재정건전성 강화를 금과옥조로 생각해 재정긴축(Austerity)에 매우 집착하고 있다. 경기 활성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 같은 긴축 마인드는 경제에 부담만 줄 뿐이다. 셋째, 소득불평등 때문에 더 강한 경제성장이 안 되고 있다.

―좌파 성향 지식인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명확한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먼 교수의 발언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소득 불평등이 대거 확대된 2003년부터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전까지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며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보인 점에 주목했다. 이 때문에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이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연방준비제도가 키운 자산거품 때문이었다. 연준이 주택·증시 거품을 확 키우면서 미국민들이 주식·주택 평가차익을 가지고 실제로 부자가 된 것처럼 소득을 훨씬 넘어서는 무절제한 소비에 나섰다.

거품이 커지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듯 보였지만 과잉소비가 한계점에 도달하면서 미국 경제 거품이 붕괴됐고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현재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약점은 수요 부족이다. 이 같은 수요 부족은 소득 불평등과 큰 관련이 있다.

미국 경제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부의 대부분은 최상위 10%, 특히 1%에 집중됐다. 최상위 부유층 10% 부는 더욱 커졌지만 나머지 90% 부는 그다지 많이 늘어나지 못했다. 미국 국내총생산의 70%를 쥐락펴락하는 가계 소비 대부분은 이들 90%에서 나온다. 그런데 부익부 빈익빈 불평등이 커지면 90%의 소비가 쪼그라들어 총수요가 늘어날 수 없다. 이것이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한 처방전은 무엇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 기회 확대, 기업지배구조·독과점 개선 등 소득 불평등 개선을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은 여러 가지다. 나는 특히 양도소득·자본이득세(capital gains tax)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리면 소득 불평등 개선과 함께 미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경제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 토지 등 부동산이나 주식 등 금융자산 투자에서 거둔 양도소득·자본이득에 대한 세금을 일반 소득세율보다 훨씬 낮게 가져가는 것은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주식 등 금융자산과 부동산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계층은 부유층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는 고소득층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몇몇 억만장자들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게이츠 창업자는 지식재산권을 중요하게 생각해 복제약을 쉽게 제조하도록 하는 것을 반대한다. 게이츠 창업자가 자신의 부를 이용해 질병예방·공중보건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복제약을 쉽게 제조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 글로벌 공중보건 개선에 훨씬 더 효율적이다. 억만장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부를 쏟아부을 수 있겠지만 이들 소수의 억만장자들이 사회적 이슈와 방향성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안 된다.

■ 스티글리츠 교수는…

1943년생으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1967년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26세에 예일대 교수가 됐다. 프린스턴, 스탠퍼드대 교수를 거쳐 클린턴 행정부 때 경제자문위원장(1995~1997), 세계은행 부총재(1997~2000)를 지냈다.

 

대표적인 케인스학파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시장 자율성을 강조하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실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라며 시장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선호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IMF 고금리 긴축 처방에 반대하다가 세계은행 부총재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