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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식

로봇 vs PB, 자산관리시장 놓고 한판 붙는다…로보어드바이저시대 개막

2030년 1월 8일, 월급 통장 내역을 살펴보던 직장인 최모 씨가 스피커폰에 대고 이야기한다. “지금 예금에 가입하면 금리가 얼마나 되니? 좀 더 기다렸다가 가입할까?” 최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피커폰에선 “지금 예금 금리는 연 0.25%입니다. 지난 달과 같은 수준입니다. 글로벌 채권 금리가 오르고 있으니, 예금 가입은 뒤로 미루시는 게 좋겠습니다. 앞으로 정기예금 금리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과거 통계 치로 산출해 보면 90%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금 거래량이 지난주 대비 10%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금(金)값이 바닥을 친 것 같으니, 금을 일부 사두시면 좋겠습니다.” 최씨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라고 대답했고, 5분 후에 최씨 통장엔 1000달러 어치 금을 매수한 내역이 찍혔다.

최근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각광 받고 있는 로보 어드바이저(Robo-Advisor. 로봇과 어드바이저의 합성어)가 구현해낼 수 있는 미래의 기술이다. 로보 어드바이저란, 컴퓨터 프로그램이 사전에 입력된 투자자의 성향에 기반해 자산 관리를 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정교하게 짠 컴퓨터 프로그램이 몇 가지 설문으로 투자자 성향, 목표 수익률, 자금 성격 등을 진단한 뒤 그에 알맞은 포트폴리오 구성과 운용 방식을 결정해 준다. 각종 빅데이터(거대 정보)를 이용하고, 포트폴리오에 대한 모니터링과 리밸런싱(자산 배분 비율 조정)도 주기적으로 이뤄진다.

그 동안 일반인들은 전문가에게 제대로 된 자산 관리를 받고 싶어도 받기 힘들었다.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회사에 찾아가 프라이빗뱅커(Private Banker)를 만나야 했는데, 이런 PB 서비스는 자산이 많은 거액 자산가 위주로만 서비스가 제공됐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굳게 닫힌 PB센터 안으로 들어가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하지만 로보 어드바이저가 보편화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일반인들도 자산 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 낮아진 자산관리 서비스 문턱… 저렴한 수수료도 장점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는 과연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걸까. 기자가 직접 쿼터백투자자문 사이트(www.qbinvestments.com)에 접속해 체험해봤다. 이름과 나이 등 신상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팝업창에 떴다. 회원가입이나 공인인증서 인증과 같은 번거로운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투자할 때 ‘리스크’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질문을 받은 기자는 ‘손실’, ‘불확실’, ‘투자기회’, ‘높은 수익’ 중 손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손실을 누르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투자를 할 경우 감내할 수 있는 손실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원금보장’, ‘최소한 손실’, ‘일부 손실’, ‘상관없음’이라는 4개의 보기가 떴다. 기자는 ‘일부 손실’을 눌렀다.

이렇게 총 5가지 질문에 대해 답변을 작성했다. 초기 투자금 1000만원에 매달 60만원을 추가 투자하고 총 투자 기간으로 2년을 입력했다. 1초도 안돼 투자 포트폴리오가 완성됐다. 투자금액 중 53.8%는 주식에, 31.3%는 채권, 5.9%는 상품, 9.1%는 통화에 투자하라는 조언이 나왔다.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자문사인 쿼터백투자자문은 KB국민은행과 제휴를 맺고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국내 은행권에선 최초다. 간단한 질문과 투자금액을 통해 개인의 투자성향과 간략한 투자포트폴리오 정보를 제공한다.

기자는 투자 시 위험선호도 9점 만점에 5점을 받아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시 기대 수익률 4.9%(연 기준)를 받을 수 있다고 분석됐다.

쿼터백투자자문은 로보어드바이저 체험판 형식으로 투자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있다. / 쿼터백투자자문 홈페이지
쿼터백투자자문은 로보어드바이저 체험판 형식으로 투자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있다. / 쿼터백투자자문 홈페이지

◆ 자산 적은 월급쟁이도 자산관리 받을 길 열려

사실 금융권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매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이를 기반으로 매매하는 프로그램 매매는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다. 또 2000년대엔 이론 가격 차에 각종 투자 지표를 첨가해 매매하는 시스템 트레이딩이 큰 인기를 끌었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이런 과거의 서비스에 투자자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에게 맞춤형 자산 관리를 해주는 서비스다. 경제 상황에다 투자자의 선호도를 취합해 투자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기존 기계식 매매에 ‘지능’이 결합했다고 보면 된다.

프라이빗뱅커(PB)에게 서비스 받는 것에 비해 수수료가 저렴하고 비교적 소액도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런 기세에 힘입어 국내 금융사는 로보어드바이저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쿼터백투자자문과 함께 은행권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 자문형 신탁상품 쿼터백R-1을 출시했다. 쿼터백 R-1은 글로벌 자산배분 상품으로 쿼터백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6개 자산군과 77개 지역, 920조개 이상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투자대상을 선별한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기존 투자자문 수수료가 2% 안팎인 것에 비해 쿼터백 R-1 수수료는 1%에 불과하다.

KEB하나은행도 이달 중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을 적용한 사이버PB(프라이빗 뱅킹) 베타 버전을 출시한다. KEB하나은행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사후 자산관리까지 제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사이버PB로 KEB하나은행의 PB서비스를 보다 많은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NH투자증권은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일종인 ‘QV로보 어카운트’를 내놨다. KDB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도 쿼터백투자자문과 제휴를 맺고 쿼터백 알파와 쿼터백 베타를 출시했다. 또 오는 상반기 내 출범 예정인 인터넷전문은행들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로보 어드바이저 출시를 준비 중에 있다. 핀테크기업임에도 대우증권과 연계해 관련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국내 또한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성장이 예상되는 국면이다.

◆ 급변하는 경제 상황에 로봇이 잘 대응할까…우려의 목소리도


전세계 로보어드바이저 운용 자산 규모는 오는 2020년 2조2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조선DB
전세계 로보어드바이저 운용 자산 규모는 오는 2020년 2조2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조선DB

로보어드바이저 성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급변하는 경제상황에 컴퓨터가 정해진 알고리즘(컴퓨터에 입력된 사고 체계와 실행 방식)대로만 자산을 관리할 경우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 혹은 중동국가의 정치 불안 등을 로보어드바이저가 사람처럼 인식하고 투자 포트폴리오에 즉각 반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북한 리스크의 경우 과거에는 국내 금융시장에는 큰 영향을 미쳤지만 점차 그 영향력이 약해질 수 있다. 로봇이 지정학적 리스크의 위험도를 정확히 판단내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시스템트레이딩의 경우 이미 한 차례 실패를 경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알고리즘 매매를 지향했던 일부 미국 헤지펀드사는 한창 매물이 쏟아질 때 과매도라고 판단하고 대거 매수했다가 파산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단기간내에 반토막났다면 과매도라고 애초에 설계돼 있던 탓이다.

증권가 PB들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생각보다는 단순한 알고리즘을 채용하고 있어 오히려 투자자의 자산을 엉뚱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로보어드바이저가 서비스하고 있는 ETF의 경우에도 투자자가 고위험 투자성향에 속한다면 그동안 변동성이 가장 높았던 종목, 수익률이 높았던 종목을 추천하게 되는 구조라 인공지능이라고 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빅데이터를 활용한다고 홍보되고 있지만 최소한 아직까지 로보어드바이저는 생각보다 단순한 알고리즘”이라며 “복잡한 경제 상황을 재종합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사람처럼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없어 투자 분야별 집중도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피나클 어드바이저리 그룹의 리서치 담당 이사 마이클 키세스는 마켓워치를 통해 “로보어드바이저는 다른 인간 투자자들에 비해 창의적인 투자 전략을 제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로보어드바이저, 핀테크 열풍에 힘입어 시장 확대 전망

로봇 vs PB, 자산관리시장 놓고 한판 붙는다…로보어드바이저시대 개막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로보어드바이저가 운용하는 자산규모는 2014년말 기준으로 190억달러에 달해 8개월만에 65.2% 늘었다. 경영 컨설팅 업체 AT커니는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운용 자산규모가 2020년에는 2조2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전체 미국 투자금액의 5.6%에 달하는 수치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로보어드바이저의 성장세가 국내 핀테크 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국내 핀테크 기업 위즈도도메인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가 글로벌 투자사이트 시킹알파닷컴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위즈도메인이 개발한 주가기술비율(Price Technology Ratio·PTR) 기반 로보어드바이저가 해당 사이트에 게재됐고 업계 전문가들이 이에 대한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글로벌 재무전문가인 폴 실리스 베이징대 광화경영학원 교수는 “PTR은 기술가치를 시가총액과 비교해 투자지표로 삼는 최초 방법”이라며 “향후 이는 주식투자에 있어 매우 유망한 방법론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위원회 역시 올해 핀테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목적으로 한 한국핀테크협회를 출범하면서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국내 기술과 업체들의 해외 진출이 봇물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로보어드바이저가 현재 서비스하는 분야는 상장지수펀드(ETF)시장인데, 향후 금융위가 추진하는 ‘ETF 발전방안’이 가시화되면 개인투자자의 로보 어드바이저 시장 역시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