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소프트웨어 세대 각각 대표하는 두 사람이
동반성장 실마리 삼아 서로 교류할 수 있다면
'한국의 게이츠와 버핏' 처럼 두 세대의 소통과 통합 자연스레 이뤄질 것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13일 그간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초과이익공유제를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거둔 초과이익 중 일부를 중소 협력업체들에게 돌려주자는 이 제도가 드디어 실현될 모양이다. 그는 이 제도에 대한 "일반 국민의 성원은 높았지만 재계 반응은 차가웠다"라고 주장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차가운 반응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지난달 10일 "경제학 공부를 계속해 왔는데 이익공유제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과 정 위원장 간 이런 논쟁을 불러온 배경은 무엇인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은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지만 협력업체와 중소기업의 수익성은 계속 악화돼 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이를 심각하게 여긴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위원회를 출범시켜 정 전 국무총리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이건희 회장 역시 동반성장이 필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해 왔다. 그는 올 초 신년사에서 "협력업체는 삼성 공동체의 일원이며 경쟁력의 바탕이므로 협력업체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는 정 위원장의 이익공유제가 중소 협력업체의 경쟁력 향상 인센티브를 떨어뜨려 오히려 동반성장을 저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자인 나는 이 회장의 생각이 맞고 정 위원장이 틀렸다고 본다. 왜 그런지 벤처기업 안철수연구소의 설립자인 안철수 KAIST 석좌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는 "이익공유제는 결과에 집중하는 것인데 이보다는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불법적인 부분을 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이 회장 역시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높여줘야 삼성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안 교수는 "현업 팀장·임원에 대한 실적위주의 인사평가 시스템 때문에 협력업체와의 상생(相生)이 어렵다"고 진단한다. 이 회장의 '장기적' 의도와 달리 삼성의 임직원들은 협력업체를 쥐어짜서라도 '단기적' 실적을 올리려 든다. 그래야 인사고과를 잘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협력업체의 핵심기술을 빼내오고 경영에 간섭하고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불법적 횡포도 서슴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다. 이것은 이 회장과 그의 대리인인 임직원이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협력업체와의 상생에 관련된 대리인 문제를 풀려면 먼저 안철수 교수와 친구가 되라고 권하고 싶다. 두 사람이 친구 하기에는 20살의 나이 차이가 문제라고? 우리와 문화가 다르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와 두 번째 부자 워런 버핏은 25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20년째 우정을 키워오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자선사업과 자본주의의 건전성 확립을 위해 함께 노력하며 세인(世人)의 존경을 받고 있다.
만약 안 교수가 이 회장의 친구가 되면 '메기론(論)'부터 업데이트하라고 권할 것 같다. 미꾸라지만 사는 논에 메기를 풀어놓았더니 미꾸라지가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노력한 덕분에 더 건강하고 생산력이 높아졌다는 게 이 회장의 메기론이다. 이 회장은 스스로 삼성의 '내부 메기'가 되어 조직을 긴장시켜 왔다. 그 결과 삼성은 일본 소니를 넘어서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 삼성이 지금 아이패드와 아이폰으로 무장한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만나 고전 중이다. 이를 두고 안 교수는 "삼성이 능력 있는 협력 파트너가 있으면 혁신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지금 한계에 부닥쳤다"고 진단한다. 그는 유능한 벤처기업들이 삼성과의 불공정 독점 계약 때문에 협력 파트너가 되지 못하고 '삼성 동물원'에 갇혀 죽어간다고 주장한다.
안 교수가 권하는 메기론 업데이트의 핵심은 이 벤처기업들을 동물원 철창에서 해방시켜 '외부 메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삼성의 계약 시스템을 바꾸라는 것이 아닐까. 또한 그는 삼성의 인사평가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대리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지, 그래서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도모할 수 있을지를 조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하드웨어 세대를 대표하는 기업가라면 안철수 교수는 소프트웨어 세대의 아이콘(우상)이다. 동반성장 논란을 계기로 두 사람이 친구가 된다면 그것은 두 세대 간 소통과 화합을 의미한다. 두 사람이 '한국의 게이츠와 버핏'이라는 찬사를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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