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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환율

본지·LG硏 공동기획] "900원대 진입해도 체감 환율은 1000원대일 것"

2005년보다 위안화·엔화 강세…실질적 원화 가치, 10%정도 낮아
기업들, 해외시장 다변화시켜 대비… 세계 경제 불투명한 점은 惡材

공업용 잉크를 수출하는 동양잉크는 최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내림세를 타자(원화 강세) 색재료나 오일 등 원료의 중국 수입 비중을 늘리고 국내 조달 비중을 줄였다. 이 회사는 환율 변화에 따라 수입산과 국내산 원료 비중을 조절하며 원료비 부담을 낮추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환(換)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매출의 30분의 1 정도를 환 헤지상품에 가입해 놨고, 결제 통화도 그때그때 바꿔 대응하고 있어 큰 문제없다”고 말했다.

원화 환율이 2년7개월 만에 1000원대로 내려앉았지만, 국내 기업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다. 2006~2007년에 900원대 환율시대를 경험한 데다,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환율 하락(원화 강세)을 용인할 것이란 소문이 일찌감치 퍼져서인지 기업들은 미리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석태 SC제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경제 회복이 지속되는 한 원화 가치가 절상되는 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연내에 1050원 미만으로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이제 관심은 원화 환율이 900원대로 진입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문제는 환율 900원 시대를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느냐이다. 본지는 대한민국이 환율 리스크에 얼마나 내성을 갖고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LG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원화 환율이 900원 시대에 접어들 경우 한국 경제의 체질을 점검해 봤다.

900원대 진입해도 체감 환율은 1000원대, 감내 가능…환율 하락 속도가 관건

원화 환율이 900원대로 떨어지기 직전인 2005년과 지금의 경제 여건을 비교해 보면, 그때보다는 대한민국 경제가 견딜 만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LG경제연구원 분석 결과 교역국들의 물가 수준을 반영한 실질적인 원화 가치는 2005년 평균이 100이었다면 지금은 82.9로 나타났다. 당시에 비해 지금 실질적인 원화 가치가 17.1%가량 낮다는 뜻이다. 명목 환율이 1000원을 깨고 900원대로 떨어지더라도 실질적인 원화 가치는 2005년보다 10% 정도 낮기 때문에 환율 측면의 경쟁력은 더 높을 수 있다고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말했다. 다시 말해 명목 환율이 달러당 900원대로 떨어지더라도 우리 경제가 체감하는 환율은 2005년에 달러당 1000원대일 때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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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은 위안화 강세와 엔화 강세 때문이다. 2005년 말 달러당 120엔 수준이던 엔화 환율은 지금 80엔대 중반으로 내려왔고, 위안화 환율도 달러당 8.08위안에서 지금은 6.57위안으로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경제는 2005년보다 수출 의존도가 10%포인트 높아져 환율에 더 민감한 경제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해외시장을 다변화시키며 환율 영향을 줄이고 있다. 우리 수출에서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3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1.8%를 기록, 2005년보다 3%포인트 낮아졌다.

문제는 절대적인 환율 수준보다는 환율 하락의 속도다. 배민근 연구원은 "원화의 완만한 강세는 감내할 수 있지만, 급격한 강세를 보일 경우 그동안 고환율에 적응했던 기업들이 체질을 바꿀 틈도 없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05년에 비해 외부 여건이 훨씬 나빠졌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2005년부터 3년간 세계 경제는 상승세를 지속한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지난해 5% 성장했으나 올해엔 이보다 낮은 성장률이 예상되고 내년 전망도 불투명하다. 또 유가가 2005년의 2배 수준으로 오르는 등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급격하다.

원화환율, 연내 900원대 진입도 가능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중요 변수는 세계 경제 흐름과 위안화와 엔화 추이, 정부의 환율정책 등을 꼽을 수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경제가 유럽 재정위기나 중동사태, 일본 대지진 등의 불안 요인을 극복하고 지난해에 이어 고성장세를 유지한다면 달러당 900원대 진입이 빠르게 가시화될 수 있다"며 "올 하반기 중에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면 달러 자금이 들어와 원화 환율이 하락 압력을 세게 받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금리를 인상한 유럽중앙은행에 이어 미국이 금리 인상을 앞당기거나 최근 소강상태인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고 중동 불안이 커지면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져 원화는 다시 약세(환율 상승)로 돌아설 수 있다.

중국 물가 불안은 원화 환율 900원대 진입을 앞당기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물가를 잡고 내수 확대에 속도를 내기 위해 위안화 절상(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 하락) 속도가 빨라진다면 원화도 동반 강세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경기 침체로 엔화가 약세를 보일 경우 원화 강세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환리스크 대응력 차이

환율 변동에 대한 대응력은 기업 규모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환율 영향을 줄이기 위해 평소 매출 비중을 대륙별로 10% 이상 차이 나지 않게 관리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근본적인 환 리스크 대책은 '경쟁력 강화'이며 평소 원가 절감, 물류 효율화, 구매처 다변화 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효성은 해외 공장의 생산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환율 변동 영향을 줄여왔다. 주요 제품 생산기지를 중국과 베트남·터키·브라질로 분산시켜 매출의 60% 정도를 해외에서 발생하도록 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환리스크에 여전히 취약하다. 지난 1월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109개 수출 중소기업 가운데 28.7%가 "환리스크 관리를 안 한다"고 대답했다. 중소기업은 원자재 가격 급등까지 겹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수출기업인 프러스상사 조정훈 자재부장은 "환율이 900원대였던 2007년엔 원자재 가격이 안정돼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올랐고 원화 강세로 보유 외화 가치마저 떨어지면 타격이 클 것 같다"고 했다.

2006~2007년 환율 900원 시대 경제성적표는 괜찮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환율 900원대를 경험한 것은 2006년 1월부터 2008년 4월까지 2년4개월 동안이었다.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자 환율이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원화 강세), 2006년 1월에 900원대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2006~2007년 우리 경제는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했다. 원화 강세에도 이 기간 중 우리 수출은 평균 14% 증가해 경상수지 흑자가 연평균 180억달러에 달했다. 경제성장률도 연평균 5.1%를 기록했다. 당시 원화 강세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세계 경기 덕분이었다. 버블 붕괴 직전인 2006~2007년에 세계 경제는 연평균 5% 이상 성장하는 초호황기였다. 중국은 2년간 연평균 13.4% 고속성장하며 세계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세계 경제 호황 때문에 원화 강세가 묻혀 지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 중 우리 경제 성장률은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0.2%포인트 더 낮아, 2000~2005년 원화 약세 기간에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1.4%포인트 높았던 것과 대조를 보였다. 박상수 연구위원은 "절대적인 수치로는 원화 강세의 상처가 없어 보였지만, 다른 나라와 상대적인 비교로는 원화 강세의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