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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환율

‘환율 하락의 두얼굴’… 수출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물가는 안정

“수출 - 물가 ‘황금환율’은 1000∼1030원”… 어제 1달러 1091원 마감
전문가들 “더 떨어져도 돼”… 中企 “1150원이 마지노선”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30개월 만에 원-달러 환율 1100원 선이 붕괴되면서 한국 경제가 ‘환율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은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키는 악재다. 하지만 환율 하락은 수입 물가를 낮춰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4.7% 급등하며 갈수록 심각해지는 물가고(苦)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수출과 물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황금(적정) 환율’ 수준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 정부, 환율하락 용인 시사

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5.6원 내린 1091.1원에 거래를 마쳐 이틀 연속 올해 최저치를 경신했다. 2월 말 한때 달러당 1130원을 넘어섰던 환율이 한 달여 만에 40원 가까이 급락한 것이다. 특히 외국인투자가들이 국내 주식시장으로 꾸준히 유입되면서 환율 하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원화 강세가 아직 경제에 악재가 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원-달러 환율이 좀 더 떨어져도 수출 감소에 따른 악영향보다는 물가 안정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경제연구소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보지 않으면서 물가도 안정세로 돌아설 만한 황금환율을 달러당 1000∼1030원으로 보고 있다.

배민금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990년대부터 추정한 장기 적정 환율 수준은 1000∼1030원 정도”라며 “냉정하게 말하면 이 정도 환율에서도 경상수지는 흑자가 난다”고 말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역시 “지난해 말 경상수지와 실질구매력을 감안한 적정 환율은 1026원 선으로 나타났지만 현 시점에서는 좀 더 낮아져도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아직은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만큼 원화 강세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당초 정부가 올해 경제목표를 세우면서 예상했던 환율은 달러당 1150원 선으로 환율 하락세가 장기화되면 목표했던 경제성장률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당장 물가 안정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만큼 1100원 선 유지를 고집하기 어렵게 됐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회에 출석해 “정부는 결코 인위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취하고 있지 않다”며 원화 하락을 용인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 대기업은 OK, 중소기업은 울상

대기업들은 최근 원고 현상을 아직은 견딜 만한 수준이라고 본다. 지난해 말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들이 수출 마진을 확보하기 위해 유지돼야 하는 환율을 달러당 1062원.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품질 경쟁력이 높아져 환율 하락이 수출에 미치는 악영향은 예전보다 줄어든 덕분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사정은 다르다. 아직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환율 하락에 민감하다. 실제 중소기업들은 지난해 말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 원-달러 환율이 1150원 밑으로 떨어지면 수출할수록 손해가 커진다고 답했다.

특히 환율 하락세가 지속되면 기업들의 피해도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재스민 혁명과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가라앉으면서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데다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한 양적완화 조치를 이어가면서 당분간 원화 가치 상승세가 꺾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한국의 수출 경쟁상대인 일본의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것도 기업들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 7개국(G7)의 시장 개입으로 최근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며 “해외 시장에서 주요 경쟁 상대가 일본 기업이라는 점에서 엔화 환율 추이도 주의 깊게 보면서 황금의 환율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