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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Weekly BIZ] [칼럼 inside] 인플레이션 아직 심각하지 않은 이유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국제금융시장 및 정책 당국의 레이더망에 등장한 것은 올 초부터다.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같은 통화 긴축 정책을 시행 중이고, 3월 초에는 유럽중앙은행(ECB)도 금리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양적 완화를 빨리 끝내고 긴축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 초부터 30년간 이어진 물가 하향 안정 추세가 신흥국의 빠른 성장으로 인해 곧 상승세로 반전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국제금융시장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아직 심각한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세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최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는 인플레이션보다는 경기 침체에 대한 걱정이다. 북아프리카의 정정 불안이 튀니지에서 이집트, 리비아로 이어지고 일부 중동 국가에도 확산되면서 국제 유가는 당분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고공 행진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대지진으로 정유시설이 파괴되면서 단기적으로 석유제품 가격이 오를 수 있고, 원자력 발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화석연료 사용을 촉진해 중장기적으로도 유가를 떠받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흔히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심화시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희석시킨다고 보는 것이 옳다. 유가가 오를 때마다 등장하는 시나리오대로 배럴당 150달러, 200달러 식으로 급등하면 급한 것은 물가가 아니라 경기침체 우려다.

둘째,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이나플레이션' 즉 중국이 전 세계로 인플레이션을 수출한다는 우려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임금이 급등하면서 중국산 제품 가격도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 있으며, 한국은행과 정부의 당국자들도 여러 차례 중국발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의 주요 소비처인 미국, 유럽의 금융시장이나 정책 당국이 중국발 인플레이션을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차이나플레이션이라는 단어 자체가 해외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신조어다.

서구 선진국이 중국에 위안화를 절상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발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음을 잘 보여준다. 선진국에서는 위안화 절상이 현실화됐을 때 중국산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보다는 수입품을 자국 제품으로 대체하거나 대(對) 중국 수출을 증가시켜 생길 수 있는 일자리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이다. 선진국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인플레이션, 중국산 제품 가격의 상승을 오히려 환영하고 있다.

셋째, 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도 국제금융시장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제한하는 요인이다. 최근 몇 달 동안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 실행에 옮겨진 2차 양적 완화와 감세 연장 조치를 고려하면 현재 나타나고 있는 회복세는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다. 미국 FRB는 아직 인플레이션 우려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많은 시장 참가자들은 올해 안에 금리 인상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가 안정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신흥국도 정말로 인플레이션과 '싸우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많은 나라가 긴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금융위기 이전 수준까지 정책 금리를 올린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긴축 정책의 선두에 선 중국조차도 과거 선진국과 비교하면 그 강도가 약해 보이며, 그나마 많은 시장 참가자들은 중국이 올 상반기 안에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대다수의 중앙은행은 경기 하방 위험을 계속 점검하면서 조심스럽게 금리를 올리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증가, 차이나플레이션의 부재(不在), 선진국의 미약한 경기 회복세, 그리고 신흥국의 점진적인 긴축 등을 종합해 보면 현 시점에서 국제금융시장의 인플레이션 우려는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언젠가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이 시작되는 시점이 유력해 보인다. 2004년에서 2006년까지 미국의 정책 금리가 1%에서 5.25%까지 인상되었을 때는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자본이 유입되면서 '그린스펀의 수수께끼' 현상(단기금리를 조정해도 장기금리가 변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 장기금리는 안정되고 국제금융시장도 큰 혼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인 시나리오가 재연된다는 보장은 없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서는 미국 금리 인상 시점을 2013년으로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