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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리비아 사태와 유가 전망

[월가 인사이드] 리비아 사태와 유가 전망

  • 조영제 뉴이코노미 그룹 대표
입력 : 2011.03.14 17:20

 

 악화일로의 리비아 정치위기와 중동의 정정불안이 전세계 원유 공급과 국제유가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원유의 역사가 중동의 투쟁, 공급 쇼크 및 글로벌 경기침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 '피크 오일'(Peak oil: 석유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가 특정 시점을 정점으로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예견한 시대의 시작인가? 과연 200달러 유가는 불가피한 것일까?

계속되는 리비아의 공급차질과 다른 산유국 파급 우려를 배경으로 브렌트유(Brent) 가격이 2008년 8월 이래 처음으로 배럴당 115달러를 넘었다. 브렌트유는 지난 2월 24일 120달러까지 올랐다. 서부텍사스중질유(WTI: West Texas Intermediate)도 2008년 9월 이후 최초로 최근 장중 최고가 106.98달러에 달했다. 1년전에 비해 28% 상승한 셈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Organization of Petroleum Countries)는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으로 원유가격을 배럴당 128% 오른 6.50달러로 인상했다. 그러나 1973년 오일 엠바고(Embargo)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고, 이란의 산유량 증가가 유가 안정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진 1979년-1981년 이란혁명 중에도 유가는 이란의 산유량 급감 영향으로 77% 상승했다. 그러나 사우디 아라비아가 수급안정을 위한 산유량 증가에 나섰다.

최근의 시장위기와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 1990-1991년 걸프전 중에는 OPEC의 생산 능력이 크게 감소했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산유량을 최대 가능 수준까지 확대했지만 유가는 2개월 반만에 130%나 급등했다. 그러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시장개입이 없었다면 오일쇼크의 영향은 한층 더 치명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거대한 생산능력이 유용했던 것은 비단 오일쇼크 기간만이 아니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글로벌 석유산업의 등락을 줄이기 위해 1980년 이래 정기적으로 잉여생산능력(Spare capacity)을 사용했다. 그 결과 세계경제는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사우디 아라비아가 세계 원유시장의 중요한 스윙 프로듀서(Swing producer) 역할을 해 온 셈이다.

원유가격은 원론적으로 보면 수요-공급과 공급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원유시장은 마치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 수급에 대한 펀더멘탈 분석은 창 밖으로 던져진 지 이미 오래인 듯하다. 원유수급과 심리적 공포감 모두 세계 13위 원유수출국인 리비아의 사태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 사태와 그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현재 유가와 선물가격에 내재하는 '불안감 프레미엄'(Anxiety premium)은 배럴당 10달러-30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50년 전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석유 시추장에서 석유시대가 문을 연 이래, 석유 소비는 증가일로의 길을 걸었다.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생산, 운반과 사용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2010년과 2011년 글로벌 일일수요는 전년 대비 각각 3.3%와 1.7% 증가한 8770만 배럴과 8930만 배럴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선진경제의 취약성과 신흥경제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려하면, 2011년 전망은 하향 조정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1월말 현재 글로벌 원유공급은 전월에 비해 50만 배럴 증가한 8850만 배럴이었다. 이라크의 추가 산유량 증가에 힘입어 OECD의 1월말 공급량은 지난 2년 최고치 2720만 배럴에 달했다.

원유가격의 장기적인 상승세는 일반적으로 수요 증가 추세를 반영하고, 단기 유가 증가는 시장 공급 변동에 의한 경우가 많다. 단기간에 변화하는 원유수요와 달리 공급 증가는 장기적인 기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최근과 같이 수요 증가가 공급 증가를 상회하는 경우에는 단기간에 가동할 수 있는 잉여생산능력의 변화가 가격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잉여생산능력의 감소는 예상하지 않은 공급 감소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높여 원유가격 상승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비중이 낮은 리비아의 산유량 감소가 국제유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OPEC의 공식적인 잉여생산능력은 현재 4백만-6백만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포함한 OPEC의 최근 잉여생산능력이 이미 2백만 배럴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것은 2008년 중반, 유가가 147달러로 급등했던 시기의 잉여생산능력에 매우 근접하는 수준이다. 물론 선진국은 50일 수요에 상당하는 원유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 아라비아가 2008년보다 높은 산유량을 기록할 가능성도 낮고, 미국의 전략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 방출 속도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가 불안정 가능성이 고유가 그 자체보다도 훨씬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대목이다.

만일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정치적 불안이 알제리아에 파급되어 석유산업을 위협하게 되면 잉여생산능력의 완충력은 2008년 수준 이하로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원유 수요 수준이 훨씬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높은 현재 수요 수준에 상응하는 잉여생산능력은 훨씬 낮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장의 궁극적인 우려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잉여생산능력에 대한 것이지만 리비아에 이은 알제리아의 산유량 감소는 국제유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원유 선물가격 곡선(Forward curves)의 백워데이션(Backwardation) 현상은 바로 이러한 시장의 불안감이 가격을 통해 표출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브렌트유는 중동위기가 원유시장을 휩쓸기 이전인 지난 1월 하순 95달러에 거래되었다. 그렇다면 리비아가 카다피의 퇴진으로 단기간에 평정을 되찾는다면 유가는 다시 95달러-100달러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리비아 자체는 정상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광범위한 중동사태의 호전이 없는 한 단기간에 95달러-100달러 회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유가의 회복 속도는 리비아의 유전과 관련시설에 대한 피해 정도가 결정할 전망이다.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보면, 리비아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어 60만 배럴에 달하는 리비아 원유 공급이 완전히 중단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월가의 분석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 경우 OPEC의 잉여생산능력이 산유량 손실을 충분히 보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국제유가는 110달러-125달러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110달러-125달러 수준의 가격 안정성 회복은 부분적인 원유수요 감소를 동반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원유시장은 지금의 공급 쇼크 이전에는 미국과 중국의 높은 원유수요에서 오는 수요 쇼크를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유가 상승이 초래할 수 있는 글로벌 경제성장 침체는 상호작용고리(Feedback loop)의 영향으로 수요파괴(Demand destruction) 과정에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리비아 석유산업이 상당 기간 동안 중단된 상태에서 정정불안이 다른 중요 산유국에 파급되어 추가 공급 감소를 초래하는 것이다. 후보 산유국으로는 예멘, 오만, 바레인, 알제리아와 세계 8위 원유 수출국으로 오는 4월 선거를 맞는 나이지리아를 꼽을 수 있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150달러-200달러에 이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올해 12월까지 150달러에 원유를 매도할 수 있는 풋 옵션 매수가 최근 투자자의 주목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월가는 분석하고 있다.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치위기가 사우디 아라비아에 파급되어 산유량에 미치는 경우다. 이 경우 원유가격은 미증유의 급등을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우려는 이웃나라 바레인의 최근 정정불안으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아라비아의 산유시설은 대부분 인구밀집 지역에서 원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지니고 있다.

원유시장은 현재 리비아의 생산 중단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정치적 불안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계속 확대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현재 유가 수준은 추가적인 생산 중단에 대한 리스크 프레미엄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시나리오 하에서는 브랜트유의 가격이 한동안 110달러-125달러 범위에 머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