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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이론

[Weekly BIZ] [Cover Story]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을 만나다

 

[Weekly BIZ] [Cover Story]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 라구람 라잔을 만나다

입력 : 2011.03.12 02:59 / 수정 : 2011.03.12 09:27

"금융위기는교육 불평등에서 시작됐다"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48). 인도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럽 벨기에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수퍼마켓에 먹을거리가 넘쳐나던 풍요의 땅이었다. 그가 인도로 돌아온 것은 11살이던 1974년. 조국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돈이 있어도 물건은 없었다. 빵 한 조각을 구하기 위해 형제들은 밤마다 암시장을 헤맸다. 산업을 키운다며 소비를 억제한 정부 정책 탓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를 가진 경제학자'로 손꼽히는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 그는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을 '불평등'이라고 단언했다. 사진은 라잔 교수가 지난 1월 스위스에서 개최된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게티이미지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나라에 가난만이 넘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소박한 의문이 가난한 인도의 소년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경제학자로 만들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월 12일자에서 '경제위기 이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를 가진 경제학자'로 미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인 그를 선정했다. 하버드대 교수인 케네스 로고프, 뉴욕대 교수 누리엘 루비니가 뒤를 이었다.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그는 금융 이론과 실무에 중요한 공헌을 한 소장학자에게 주는 피셔 블랙 프라이즈(Fischer Black Prize)의 첫 수상자다. IMF(국제통화기금) 최연소 수석이코노미스트 기록도 그의 것이다. 작년 2월 그가 펴낸 '폴트 라인즈(Fault Lines·지진 유발 단층선)'는 파이낸셜 타임스와 골드만삭스가 뽑은 단 한 권의 '올해의 비즈니스 서적'으로 뽑혔다.

하지만 그를 보다 강렬하게 세상에 알린 것은 '금융위기의 예언자'란 수식어였다. 2005년 앨런 그린스펀이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서 마지막으로 주재한 잭슨 홀 회의(JacksonHole Conference)에서 그는 "현재의 금융 발전이 대규모 금융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연설했다. 세계 경제의 절대적 존재로 추앙받던 그린스펀의 노선을 면전에서 비판한 것이다. 그는 "(당시) 사자 우리에 던져진 초기 기독교인처럼 맹공격을 당했다"고 말했다. 2009년 1월 2일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정확하게 2년 후 라잔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고 보도했다.

"빈익빈 부익부 교육이 소득 불평등 부르고
미국 정치인들은 소득층 표 얻기 위해
주택대출을 늘려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해


사람들은 부자가 된 줄 착각에 빠지고
한번만 성공하면 큰 몫을 챙기는 금융계
인센티브 시스템이 부채질을 했다


그러다가 집값 떨어지자
 돈 빌린 사람들도 빌려준 은행들도
방치한 정부도… 함께 다 무너져내렸다"


지난 4일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502호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라잔의 결론은 명쾌했다. "불평등(Inequality)."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유해지는 빈부격차를 말한다.



"미국에서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격차는 1975년 3배에서 2005년 5배로 확대됐다. 저소득층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실시한 '대출 확대'라는 정치의 인기영합적 결정이, 수익을 올리려는 금융계와 상호 작용을 하면서 거대한 '폴트 라인(지진 유발 단층선)'을 형성했다. 금융회사는 정부가 국민의 고통을 두고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이용할 궁리를 했다. 수출지향적 국가가 스스로 소화하지 못하고 남아도는 저축액을 밀어 넣은 곳도 미국 저소득층의 호주머니였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사는 치과의사의 여윳돈이 미국 네바다주의 가난한 대출자에게 흘러간 것이다."

라잔 교수는 "불평등처럼 사회를 뿌리째 뒤흔드는 불균형이 존재하면 그것은 정치에 큰 파도를 불러일으키고 그 파도는 모든 제도를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정치가 균형을 회복하지 못하면 선진국은 다시 개도국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도 했다.

"지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돼 결국 우리 사회를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성장 방식, 그리고 선택 방식 모두를 변화시켜야 한다."(책 '폴트 라인' 중)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분석한 경제적 대지진의 구도는 다음과 같다. 먼저 미국 내 소득 불평등 심화와 이런 현상에서 비롯된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한 대출 확대 정책이다. 그는 이를 "정치적 폴트라인(Fault Line·지진 유발 단층선)"이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지나치게 과도한 리스크(위험 부담)를 용인하는 금융시스템을 꼽았다. 수익이 나면 엄청나게 보상해 주고 손실이 나면 가벼운 징계에 그치는 인센티브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금융권의 리스크를 용인했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권의 탐욕이 가계 대출을 통해 저소득층의 입을 막아 버리려는 정치권의 의도와 상호작용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폴트라인은 수출국들의 과도한 자본 축적에서 비롯된 위기다. 내수를 키우지 못한 수출지향 국가들은 남아도는 자금을 미국 금융회사를 통해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후원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증권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위기는 불평등, 그리고 불평등을 대출을 통해 해소하려 한 정치적 판단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라잔 교수의 분석이다.

"무역 불균형이 또다른 '폴트라인<지진 유발 단층선>'… 경제 대지진은 진행형이다"

 거듭된 이메일, 그보다 많은 전화에도 응답하지 않던 그가 답신을 보낸 것은 인터뷰 바로 전날이었다. "내일 오후 4시 45분. 괜찮으냐?"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먹구름이 폭우를 몰고 왔다. 부스경영대학원 정문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 1분 전. 체크무늬 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그는 "아이스티가 어떠냐?"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인도에 다녀왔다. 그제야 귀국했다." 그는 만모한 싱 인도 총리의 경제자문관이다. 인도 첸나이의 온라인 교육업체 헤이매스(Heymath)의 대표이기도 하다. 책과 자료로 뒤덮여 있는 'ㄷ'자 책상에서 그는 쉴 새 없이 이마에 손을 짚었다 뗐다를 반복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돈이 풀리면서 집값이 올랐다. 미국의 저소득층은 집값이 오르자 대출을 더 받아서 다른 곳에 소비했다. 실제 자기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려서 쓰면서 스스로 부자가 됐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러다 집값이 떨어지고 금리가 올라가자 그들은 빚더미에 깔렸다." 그는 "이가 썩는 줄 모르고 세상이 달콤한 사탕을 계속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떻게 불평등을 완화했어야 할까?

"미국의 기술 발전으로 대학에서 전문지식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 테크놀로지 발전으로 과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춘 노동 인력이 요구됐지만 제대로 공급되지 못한다. 교육제도 탓이다. 소득 불평등은 교육 불평등이 초래한 현상이다. 당연히 해법은 교육에서 기회균등을 추구하는 조치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효과가 시간을 두고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은 이런 본질적 해법이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하는 유권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부담을 미래로 넘긴 것이다. 당장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상황을 방치하면 미래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비용이 늘어난다."

라잔 교수의 해법은 극히 원론적이다. 암을 치료하려면 암 덩어리부터 들어내야 한다는 정공법이다. 이런 정공법이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의해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로 지목되고 세계 전문가 집단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왜곡된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고임금 인력에 높은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방식은 열심히 실력을 연마해 자신의 인적 자본을 개발하겠다는 의욕을 없앨 뿐이다. 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더 나은 인적 자본을 갈고닦을 수 있는 기회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 불평등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하나는 정부 지출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생각, 다른 하나는 기회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라잔 교수는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실용주의적(pragmatic) 이코노미스트"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바다에 가까운 하버드대의 케인지언 성향, 호수에 가까운 카네기멜런대의 자유시장 성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두 학파 모두 실패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라구람 라잔 교수는 지난 2005년 금융위기를 예언했다. 손실을 내면 가벼운 징계만 주고 수익을 내면 엄청난 보상을 하는 금융계의 인센티브 구조가 감당 못할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 블룸버그
다섯 살 교육환경, 운명을 좌우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국가가 개입해… 빈곤층 챙기고 부모 교육을…
전국 일제고사로 학교ㆍ학생 평가… 뛰어난 교사에겐 파격적 혜택…
세금 두려워 말고 투자하라…
교육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투자다…

―기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은?

"18세 청소년들 사이에 격차가 생기는 조건은 5세 때 형성된다. 인간의 지능은 8세가 되면 거의 형성된다. 그래서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빈곤층 어린이는 일찌감치 가난한 운명이 결정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빈곤층 어린이의 건강 증진을 위한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영양보충제를 보급하고 건강 검진을 실시하고, 부모를 교육시켜야 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개입하는 것이 좋다."

저서 '폴트라인'에서 엄격하고 권위적 지도의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빈민가 학교의 경우에도 그런 지도를 통해 학업 능력을 향상시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는 저서에서 '복도를 걸어 다닐 때 질서 지키기, 정숙한 복장으로 등교하기, 올바른 수업 태도 갖기, 숙제하기, 표준 영어 사용하기 등 학생 관리를 엄격히 하고 이를 위반할 때 적절한 징벌을 내리자 학생들 성적이 향상됐다… 비인지적 능력(인내심·결단력·자제력)은 행동을 가르치고 지식을 함양하는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인성 교육만으로 충분한가.

"인적 자본을 강화하기 위한 환경을 이야기한 것이다. 저소득과 고소득 어린이는 공립학교 입학 초기에 성적이 비슷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진다. 긴 방학 동안 고소득 가정은 자녀에게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저소득 가정은 그럴 형편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선 수업 일수를 늘려 교육의 기회 격차를 줄이자고 한다. 일부는 저소득층 어린이를 여름 캠프 같은 교육적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시키자고 제안한다. 모두 가치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교사의 질적 향상을 위해 제시한 방안은 한국의 교원평가제와 비슷하다.

"젊은 인재들이 교사직을 기피하는 것은 연봉이 낮기 때문이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좋은 교사가 필요하고 좋은 교사를 구하려면 교사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일괄적으로 연봉을 인상하는 것보다 교사가 달성한 성과에 따라 인상하는 것이 좋다. 성과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포함돼야 할 기준이 있다. '가르친 학생의 실력이 얼마나 향상됐는가' 하는 점이다."

―실력을 측정할 방법은?

"전국 일제고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시험 결과는 학교 간 실력 비교가 가능하고 학부모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개돼야 한다. 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는 것도 학교 간 경쟁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의 교원노조는 연봉 차별화, 성과에 의한 차별화를 반대하고 있지만 이제는 느린 속도라도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는 저서에서 "빈곤층 청소년의 대학 졸업률을 높이는 데 재정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며 "대학 재학생에게 1000달러의 보조금을 주면 출석률이 4% 증가하고, 그 결과 졸업률도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재정 문제로 돌아간다. 재원 조달을 위해 세금을 올려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 정부 지출(재정)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생각은 매력적인 함정이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투자는 성장을 위해 좋을 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안정을 위해서도 좋다.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번 것을 빼먹을 수 있는가에 관심을 둔다.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사람에게 '교육은 좋은 투자처'라고 말해주고 싶다. 교육 투자야말로 가장 수익률이 높은 투자일 것이다."

―당신은 금융위기의 원인과 대책으로 정치·사회적 측면을 중시하고 있다.

"바람직한 경제학은 바람직한 정치학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선진국의 정치적인 환경은 매우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강력한 제도를 구축하면 정치가 개입할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잘못이다. 선진국에서도 얼마든지 정치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잘못된 정치는 잘못된 조세나 규제의 모습으로 나타나 언제든지 경제를 괴롭힐 수 있다. 제도는 정치가 균형 잡힌 행동을 할 때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대출금 어디서 왔나

수출 위주 국가들의 넘치는 외환 보유고… 투자처 찾아 미국으로…

―경제위기의 또 다른 원인으로 무역불균형을 꼽았다.

"미국 저소득층에 공급된 대출 자금은 어디에서 왔을까? 독일, 일본, 중국, 한국처럼 수출지향 경제 정책을 채택한 국가들이 자금원이 됐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이들 국가들은 수출지향 경제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급격하게 늘어난 외환보유고는 투자처를 찾아 세계를 헤맸다. 소득불평등 문제를 대출 확대를 통해 해소하려고 한 미국이 최적의 상대로 뽑혔다. 2006년 전 세계적으로 남아도는 저축액의 60%가 외채 형식으로 미국에 유입됐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수출지향적 국가는 내수 진작을 통한 성장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상유지를 통해 이익을 얻는 세력들은 변화를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세계적으로 경제협력이 이뤄지지 않으면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한다." 그는 저서에서 "자기 나라에서 노동과 자본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지도자가 탄생해 국수주의와 결합할 경우 우려할 만한 사태가 발생한다… 파시즘이 그것이다"고 했다.

―IMF 근무 경험이 있다. 국제금융기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IMF와 같은 국제기구는 말을 듣지 않는 정부 대신 '생각 있는 시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이나 보고서로는 안 된다. 누구나 알기 쉬운 내용을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서 전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면 각국 정부가 개혁에 필요한 지지기반을 마련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스스로도 개혁해야 한다. 조직 보스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일해야 한다. 경제·군사력을 중시하는 하드파워(hard power)에서 교육·예술·문화의 힘을 중시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위기 대책이 또 문제를 낳고…

느슨한 통화 정책, 신흥국의 성장 욕심… 신흥국은 더 많은 자원을 빨아들이고… 원자재 가격은 무섭게 뛰고있다…

―경제위기 이후 각국의 대응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폴트라인'은 완화됐나?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들이 새로운 긴장을 낳고 있다.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 중 하나는 매우 느슨해진 통화정책 그리고 이머징 마켓에서의 매우 강력한 성장이었다. 선진국들이 빨리 성장하지 못하는 세상에 적응하려고 하고 있다. 이머징 마켓은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그 수요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부르고 있다. 여전히 세계 경제는 재정, 환경에서 지속 성장이 불가능한 글로벌 수요 패턴의 거대한 바위틈에 끼어 꼼짝을 못하고 있다."

그는 저서에서 하버드대 정치과학자 제프리 프라이슨의 논문을 소개했다. 기존 강대국 하나는 계속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떠오르는 신흥 강대국 하나는 그 적자를 메워주는 자본을 공급해 큰 불균형이 발생한 1920년대(대공황 직전)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이 논문에 등장하는 자본 공여 신흥 강대국은 미국이고 외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기존 강대국은 바로 독일이다.

―위기의 근원으로 꼽은 미국 경제는 어떤가?

"미국의 실업률(약 9%)은 여전히 매우 높다. 경제성장은 회복됐지만 낮은 성장률과 잃어버린 일자리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들을 어떻게 취업상태로 되돌려 놓을 것인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가계의 채무도 많다. 집값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가진 것보다 빚진 것이 더 많다."

―금융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어떤 금융기관도 유사시에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심각한 잘못을 하면 대가를 충분히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은행 임직원의 성과급은 그해에 바로 지급하면 안 된다. 일부만 지급하고 몇 년이 지난 뒤에 은행에 손실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나머지를 지급해야 한다."

―세상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낙관하나?

"나는 강력한 낙관주의자다. 사람들이 무엇인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도록 변화할 수 있고, 장기적 비전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제약을 뛰어넘고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