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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美, 빚으로 사는 부도난 나라"

"美, 빚으로 사는 부도난 나라"

  • 입력 : 2011.02.28 03:18

마하티르 前말레이시아 총리
"美·中G2체제… 동아시아가 서방과 균형 맞출 기회"

한 사람의 삶은 종종 단 하나의 이벤트로 채색된다. 마하티르(Mahathir·86) 빈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그것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였다. 당시 그는 한국과 달리 IMF식 고금리·고환율 처방을 무시하고 외환을 통제했다. 그는 지난 2003년 22년간의 권력을 내놓고 물러났지만 말레이시아에서 국부(國父)로 존경받고 있으며, 정·재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국수주의적이며, 경제 발전을 위해 인권을 탄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글로벌 코리아 2011' 행사차 방한한 그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일생 중 가장 잘한 결정 세 가지를 꼽는다면?

"첫째, 아시아 외환위기 때 IMF의 처방(고금리·고환율)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 것. 둘째, '동방정책(Look East·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경제모델을 벤치마킹하는 정책)'을 추구한 것. 셋째, 민주주의를 추구하지만 미국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를 따르지 않은 것."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동방정책(Look East·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경제모델을 벤치마킹하는 정책)’을 채택한 것을 인생에 가장 잘한 세 가지 결정 중 하나로 꼽았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어느 마을에 성인 영화를 상영할지 논란이 있다고 하자. 미국식이라면 대다수의 마을 사람이 반대해도 성인영화 상영자의 권리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상영을 허락할 것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라면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고 도덕적 가치관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소수의 권리도 존중하지만 다수의 이익과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대 이슬람 채권 발행국이다. 최근 한국에서 이슬람채권 도입 논란이 뜨겁다.

"테러리즘과는 전혀 관계없는 문제다. 이슬람채권을 수용하든 말든 이슬람교도 국가들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만일 테러리스트들이 그 돈을 테러리즘을 위해 쓰려고 한다면 막을 길이 없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돈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쿠크(이슬람채권)'는 상업적인 이윤을 위한 것이며, 이슬람 종교를 편애하는 건 아니다. 이슬람교도는 모든 수익활동을 통해 번 돈의 일부를 마치 세금처럼 기부한다. 그것이 은행권을 통한 수익이든지 아니든 간에. 미국 은행들도 이슬람 자본을 통해 돈을 벌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수쿠크를 도입하고 있다."

―G20에서 글로벌 불균형 해소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어떤 방안이 좋을까?

"문제 중 하나는 미국이다. 미국은 빌린 돈으로 살아가는, 부도난 나라이다. 그런데도 미국 달러가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사람들이 여전히 결제를 위해 달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달러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미국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달러를 더 찍어내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브레턴우즈 체제(달러와 금의 태환(兌換)을 축으로 하는 국제금융질서)'로 복귀해야 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힘이 너무 강력해지는 것 같은데.

"말레이시아는 중국과 1800년 이상 교류했지만 중국이 우리를 정복한 적은 없다. 반면 포르투갈은 1509년 믈라카(15세기 말레이시아 왕국)와 교류를 시작하더니 2년 후 믈라카를 정복했다. 중국은 크고 부유해지고 있지만 혼자 살 수는 없고 여전히 세계를 필요로 한다. 중국도 주변 나라를 지배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G2 체제는 미국이 독주하던 G1 체제보다 안정적인가?

"(웃음) 둘 다 바람직한 체제는 아니다. 세계엔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어느 한 나라, 혹은 몇 나라가 세계를 모두 지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 동아시아가 서방과 균형을 맞출 기회가 왔다. 중국이 강성하다고 해서 동아시아가 서구 강대국을 대체할 수 없고 지배해서도 안 된다."

미국발 금융위기 때 한국 경제는 탄탄했지만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문제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시아 외환위기 때 말레이시아 정부가 환율 관리에 나서자 다른 나라들은 '큰일이다. 망할 것이다. 고생할 것이다'라고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가 환율을 정부가 어느 정도 관리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 한국은 IMF의 권고를 따라 구조조정을 하면서 빠르게 회복했다. 말레이시아도 그렇게 했다면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경제력이 강한 나라였다. 그리고 절하된 원화 가치를 기반으로 산업을 다시 살릴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달랐다. 여러 가지로 한국보다 취약했다. 그래서 우리의 접근 방식은 한국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연세답지 않게 건강하신데, 건강 유지 비결은?

"골프는 안 하지만 승마를 즐긴다. 매년 아르헨티나에 가서 오랫동안 말을 탄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은 승마를 한다. 말을 40필 정도 갖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아르헨티나산 폴로포니(폴로 경기에 사용되는 조랑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