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선부론(先富論)' 버린 대륙, 분배로 방향 틀다
선부론(先富論)<일부 지역만 먼저 성장>
중국, 수출중심이 내수중심으로… 노동집약서 기술집약으로 골격 바꿔
누군가는 그 변화를 '중국 리스크'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 변화를 두고 '중국 대망론'을 말한다. 중국의 임금·물가 상승은 이미 '차이나플레이션(China+Inflation)'이란 이름으로 한국에도 어두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 앞에 펼쳐진 중국의 신천지가 더 넓다.
- ▲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한 여인이 일손을 구하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들고 서 있다. 최근 중국에선 노동자의 임금이 크게 올라 소규모 기업일수록 일손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화 연합
■13억 중국에서 일손 부족이 시작
경제발전 단계로 볼 때 중국의 인구 문제는 고령화 함정에 빠져든 일본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생산·소비력이 약한 고령자가 늘어나고 젊은이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고령화 사회의 기준인 7%를 넘어선 것은 2001년. 새 노동력을 공급하는 15~29세 인구는 올해 정점을 찍는다. 소비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5년부터 줄어들 전망이다. IMF에 따르면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7258달러 수준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일본에선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넘어선 1996년부터 줄었다.
중국의 인구 구조는 '4-2-1'로 비유된다. 조부모 4명, 부모 2명, 자녀는 1명이란 의미다. 중국 정부가 1979년부터 한 가구에 한 자녀만 허용하는 인구억제 정책을 실시한 결과다. 이 정책은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농촌 지역의 값싼 노동력을 도시 지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2개의 중국' 논리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도시로의 급격한 노동력 유입을 부를 만큼 지역 간 임금격차가 큰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서부 지역 농민공(농촌 출신 노동자)의 임금상승률은 8.3%로 동부 지역 농민공(5.2%)을 상회했다. 농민공의 임금 격차도 1422위안(동부)과 1378위안(서부)으로 축소됐다. 중국 정부의 내륙지원 정책으로 중서부가 제조업의 새로운 메카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15~29세 인구 내년부터 감소세
'고령화 문제' 日보다 빠르게 다가와
도시·농촌간 임금격차도 줄어들어
中정부 "임금 올려 소비 늘리겠다"
돈줄 안죄고 인플레 즐기는 쪽으로
물가 상승·버블 붕괴 위기가 변수
■중국 정부, 정책 방향을 전환
작년 10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은 중국 경제를 내수 중심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내수를 키우기 위해 임금을 올려 소비를 늘리는 방법을 택했다. 권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수출 시장인 선진국 경제가 둔화되면서 새로운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런 정책은 오는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확정된다.
중국에선 현재 정부와 노동자 양 방향에서 임금인상 압력이 분출하는 상황이다. 작년 혼다자동차, 폭스콘 공장의 분규처럼 농민공들은 파업뿐만이 아니라 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으로 의사를 관철하려 하고 있다. 중국 내 30개 성(省), 시(市), 자치구(自治區)는 작년 5월부터 9월까지 최저임금을 평균 24% 인상했다.
내수 확대와 임금 인상은 한국과 일본 역시 현재 중국과 비슷한 경제발전 단계에서 경험한 과정이다. 일본은 1960년 이케다 하야토 내각이 사회적 혼란을 완화하기 위해 성장과 완전 고용을 통한 '소득배증(倍增)계획'을 실시해 두터운 중산층을 만드는 데 성공을 거둔 일이 있다. 한국은 1988년 올림픽 이후 노동운동이란 진통을 거치면서 근로자 임금의 급속한 상승을 경험했다. 일본과 한국 모두 그 기간 동안 산업구조가 크게 변했고, 이후 경제는 안정성장 또는 저(低)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중국 산업구조 역시 '노동집약'에서 '기술집약'으로 급속히 변해가고 있다. 신발·섬유 산업은 이미 베트남·방글라데시·캄보디아로 옮겨가고 있고, 빈자리를 반도체·평판디스플레이와 같은 산업이 메우고 있다. 박래정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그동안 중국이 주변 국가보다 훨씬 나은 인프라스트럭처(사회기반시설)를 구축했기 때문에 하이테크 산업이 중국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즐긴다?
1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당국의 관리목표 수준(4%)을 넘어선 4.9%를 기록했다. 물가 발표 후 사흘 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급준비율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돈줄을 조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7일 '인플레이션을 좋아하는 방법 배우기'란 기사에서 "경제학자들 중에는 중국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환영해야 한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며 "높은 인플레이션은 중국 경제를 리밸런스(rebalance)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지난 10년간 평균 물가상승률은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낮은 2% 수준. 임금 인상과 소비 확대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다소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임금 인상을 통해 '국가는 부자이고 인민은 가난한' 불균형 문제를 어느 정도 시정할 수 있는 체력이 중국에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의 명목 GDP는 연평균 9.5% 성장했지만, 임금은 8.4% 상승했다.
작년 12월 중국 정부가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마련한 2011년 정책기조에서도 '인플레이션 즐기기'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적절히 완화된 통화정책'에서 '안정적인 통화정책'으로 전환하면서 금융긴축을 강조했지만,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그대로 유지했다. 돈줄을 너무 강하게 틀어쥐면 인플레이션은 잡겠지만, 임금상승을 통한 소비증대라는 목표에선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중국 정부가 판단한 것이다.
임금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위안화 절상 압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다. 수출기업의 임금이 뛰면 수출상품의 가격도 올라 위안화가 절상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인위적 절상에 따른 리스크는 피하게 된다.
■주목할 변수
한국과 일본 모두 임금과 물가, 환율 상승 국면에서 경제에 거품을 만들었고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를 겪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잇따라 내놓는 것도 중국 경제에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 1월 국무원은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올리고 양도세를 높였다. 이미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외지인(外地人)은 일정 기간 집을 사지 못하게 했다. 상하이·충칭 등 2개 도시에서 부동산 보유세를 시범적으로 부과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중국의 부동산 거품은 정책적 미(微)조정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준이란 시각이 아직은 일반적이다. 이장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은행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 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부동산 거품 붕괴는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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