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안전자산' 이젠 안 먹힌다
위기에 강했던 달러화 리비아사태 맞아선 힘 못써
스위스 프랑·엔화 가치 급등… '존폐 위기' 유로화마저 강세
"美경제에 대한 불신 때문"
세상이 불안할 때 사람들은 은신처를 찾기 마련이다. 투자자들도 그렇다. 가장 전통적이고 흔한 은신처는 달러였다. 그래서 9·11 테러 때도, 리먼 브러더스 파산 때도 달러를 사려는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달러 가치가 급등했다.그런데 그 공식도 이젠 깨지는 것일까? 리비아 위기를 맞아 달러 가치가 오히려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스위스 프랑과 엔화가 달러화를 대신해 '안전자산' 칭호를 얻으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재정위기로 존폐 위기까지 거론됐던 유로화마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선진국 통화 중 달러화만 홀로 약세다. 해가 질 줄 모르던 달러화의 위세에 드디어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일까?
◆달러화 나 홀로 약세
지난 24일 미 달러당 스위스 프랑화 환율은 사상 최저치인 0.9230프랑까지 하락했다(달러 약세-스위스프랑 강세). 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 환율 역시 달러당 81.60엔까지 하락, 역대 최저치인 1995년의 79.70엔에 근접했다(달러 약세-엔화 강세).
사람들이 경제에 얼마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는 흔히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로 알아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이 지수가 올라갈 때마다 달러도 강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징크스가 깨졌다. 리비아 반정부 시위가 고조된 지난 23일 VIX는 지난해 말 이후 최고치까지 올랐지만, 달러는 계속 약세다.
◆깨어진 안전자산 신화
달러화가 안전자산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 경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미국 경제 회복세는 더디며, 쌍둥이 적자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높다.
MF글로벌홀딩스의 제시카 호버선 연구원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지속 가능한 경제 회복세를 달성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상이 지연되고 달러화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스위스 프랑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통화'로서의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스위스 프랑은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확산되던 작년 12월 말에도 달러화와 유로화 대비 모두 사상 최고치까지 올랐었다. 일본 엔화의 경우 일본의 경제 규모 대비 국가 부채가 선진국 중 가장 높기 때문에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그러나 중동위기가 3차 오일쇼크로 확산된다면 달러가 다시 조명을 받을 수 있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직후 달러 가치는 30%까지 떨어진 적이 있지만, 그해 연말엔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위험할 땐 그래도 달러밖에 믿을 게 어디 있느냐'는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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