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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Weekly BIZ] [칼럼 inside] 인플레이션, 그건 원래 정부 때문이야

[Weekly BIZ] [칼럼 inside] 인플레이션, 그건 원래 정부 때문이야

  • 장용성ㆍ연세대 언더우드 특훈 교수(미 로체스터대 교수)
입력 : 2011.02.18 15:57

인플레 원인이 화폐? 재정?… 정부 재정적자 때문이 많아…
하지만 수치 낮추려 시장 개입하면… 오히려 경제 효율성 왜곡하는 셈…
자장면값 못 올리게 단속하면… 주인은 양 줄이고 질 떨어뜨린다

금융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않고,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피부로 느껴지기도 전에 어느덧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통화주의 이론(Monetarism)의 창시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인플레이션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화폐적 현상이다"라고 했다.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금융당국의 화폐 발행에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향후 노벨상 수상이 유력시 되는 프린스턴 대학의 크리스토퍼 심스(Christopher Sims)와 컬럼비아대학의 마이클 우드포드(Michael Woodford)는 최근 경제의 물가 수준은 금융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재정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는 물가의 재정 쟁책 결정론(Fiscal Theory of Price)을 제기했다.

한 쪽은 금융정책이 원인이라 하고, 다른 쪽은 재정정책이 중요하다고 한다. 누구 말이 옳을까? 언뜻 상반되는 견해처럼 들리지만 실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화폐 또는 유동성이 경제의 물가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해 유동성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재정 지출은 크게 세금, 국채 발행, 그리고 통화 증가를 통해 조달된다. 세금 인상은 국민들의 반발을 사기 쉽고, 국채를 통한 재원조달은 시장 이자율을 올릴 수가 있기 때문에 화폐 발행이 손쉬운 방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동성의 증가로 인해 인플레가 발생하면 그만큼 현금을 보유한 사람이 인플레이션 인상율만큼 손해를 보기 때문에 민간 부분은 결국 세금(inflation tax)을 내는 셈이다.

인플레이션이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예측 가능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주체들이 그에 대응해서 거래를 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폐해는 크지 않다. 예를 들어, 돈을 빌려줄 때, 예상되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해서 이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실질 이자율은 인플레와 무관하게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은 시간, 장소, 품목에 따라 상이한 패턴을 보이기 때문에 예측이 쉽지 않다. 대개 예상했던 것보다 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면 정해진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손해를 보는 셈이고, 돈을 빌려 쓴 채무자는 그만큼 실질이자부담이 줄어 이득을 본다. 정부의 경우 적자재정 상태라면 돈을 빌려쓰는 입장이기 때문에 인플레가 발생하면 실질 채무는 줄어든다. 역사적으로 실질 채무를 줄이려 정부가 인플레를 유발한 경우도 제법 있었다.

기업들의 담합으로 인해 독과점 이윤이 의심스러운 경우, 정부는 기업들의 가격 결정 과정을 단속해 공정 거래를 확립해야 하지만, 단지 인플레 수치를 낮추려는 목적으로 정상적인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왜곡하는 하는 것은 곤란하다.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우월한 이유는 가격이 시장의 수급 상황을 반영해서 경제주체들에게 시그널을 주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을 보면 소비자는 아껴 쓰려하고, 기업은 신이 나서 물건을 더 많이 만들어 공급하려 한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말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은 이러한 가격의 자원배분 기능을 지칭한 것이다.

일부 가격을 통제해 인플레이션 수치가 낮게 나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플레이션을 계산하는 공식 통계에 사용되는 소비자 물가지수는 도시에 사는 평균적인 소득을 가진 가계가 한 달 동안 소비하는 대표적인 품목들의 가격을 조사해 계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489개 품목을 조사한다. 예를 들어, 한우 쇠고기 500g, 255㎜ 운동화 한 켤레, 미장원 컷트비용 같은 것이 포함된다. 이들 품목의 가격을 통제하면 소비자 물가지수는 낮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는 이보다 훨씬 다양한 종류의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한다. 또한 물건 가격을 통제해도 시장은 늘 다른 방법으로 실질 가격을 인상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을 5000원 이상 못 받도록 단속한다고 하자. 재료값이 오르는 데도 값을 올릴 수 없으면 가게 주인은 양을 줄인다. 정부가 나서서 양까지 재겠다고 나서면 싸구려 재료를 써서 품질 낮은 물건을 만들 것이다. 같은 값을 주고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사야 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오른 것과 다름없다.

가격을 통제해 인플레를 막으려는 시도가 실패하고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왜곡한 경우는 흔하다. 2차 대전 중 인플레로 인해 뉴욕의 집세가 급등해 서민들이 맨해튼에 살기가 힘들게 됐다. 시장 개입을 선호하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집세를 동결(rent control)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집세를 올릴 수 없는 집주인은 창문이나 수도가 고장 나도 고쳐줄 생각을 않는다. 우리 경제처럼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경우, 원자재 가격, 환율 등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수입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인플레이션의 일차적 원인은 정부에 있다.

정부 스스로 지출을 자제하지 않으면서 민간부문의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자원 배분을 왜곡해 오히려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생산성이 낮은 경제는 좋은 물건을 값싸게 공급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