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아일랜드·스페인 포르투갈 부채 위기 진행중… 재정지원 놓고 회원국 분열
경제통합 강조해왔던 독일 "남의 나라 빚잔치" 시큰둥…내달 4일 EU정상회담서 '유럽판 IMF' 불발되면…
-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지난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 회의에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와 얘기하고 있다. 1년 전 그리스가 과 도한 국가 부채로 재정위기를 맞았을 때 프랑스는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그리스를 구제하자고 주장한 반면 독일 언론은‘휴가나 즐기던 그리스 국민에게 (독일)국민의 세금을 퍼줄 수 없다’고 맞섰다. 경제적으로 통합됐다는 EU 내에서도 27개 회원국들이 처한 경제 사정은 제각각이다. / 블룸버그
주식시장만 놓고 본다면 유럽은 위기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올 들어 독일과 프랑스 증시는 5% 이상 올랐고 영국도 4% 가까이 상승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풍경도 있다. 15일 국제금융시장에서 포르투갈 국채(5년 만기 기준) 금리는 7%를 넘어섰다. 포르투갈이 유로화를 도입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달 유럽중앙은행(ECB)이 포르투갈 국채를 직접 사들인 덕에 포르투갈 국채 금리는 한동안 떨어졌지만 이달 들어 상승세로 돌아서더니 최고치마저 경신한 것이다. 유럽발(發) 부채 공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물론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의 부채가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유로화를 도입한 이들 나라가 싼 이자를 취해 돈을 빌렸고 경제위기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빚을 떠안으며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빚 자체가 아니라 유럽연합(EU)이 회원국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그리고 한 여인이 주목받고 있다.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Merkel) 독일 총리다.
■위기 이후 놓고 EU 내 견해차
지난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메르켈 총리가 주도하고 사르코지가 동의했다고 알려진 이 방안은, 정부 부채 규모를 각국의 국내법으로 명문화하고, 회원국마다 다른 법인세에 하한선을 두는 내용이 포함됐다. 임금상승률과 물가상승률을 연동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근로자의 퇴직 연령을 더 높이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날 오찬(午餐)은 극도로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고 유럽 언론들은 전했다. 낮은 법인세를 무기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온 아일랜드는 법인세에 하한선을 두는 방침에 반대했고 스페인처럼 청년실업률이 높은 국가는 정년 연장이 시위로 이어질까 우려를 표했다. 폴란드처럼 EU 회원국이지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10개국은 그런 제안이 EU를 분열시킨다고 주장했다. 영국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이 경제적 통합을 강조하면서 예전에는 요구할 수 없는 것들을 회원국에 요구하고 있다"며 "EU가 터닝포인트(전환점)에 서게 됐다"고 분석했다.
유럽 1위의 경제대국 독일은 이번 경제위기 내내 '엄한 부모'의 역할을 해 왔다. 그리스의 부채위기가 터졌던 지난해 2월에는 프랑스가 내놓은 그리스 구제안에 대해 메르켈 독일 총리가 회의실 탁자를 손으로 치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휴가나 즐기던 그리스 국민에게 독일 국민의 세금을 퍼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임시구제금융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키워드)의 확대 여부를 놓고도 독일은 다른 나라의 빚 갚는 데 더는 세금을 내줄 수 없다며 버티기도 했다.
■3월 EU 정상회의가 시험대 될 듯
왜 메르켈 총리가 주변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엄한 부모를 자처했을까? 유럽은 '하나의 경제·하나의 시장'을 지향하지만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국가 간 체력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스는 GDP 대비 국가 부채 규모가 140%를 넘지만 독일은 75%에 불과하다. 독일의 1월 실업률은 통독(199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7.4%)이지만 스페인에서는 20%가 넘는다. 통일 이후 임금상승을 억제하며 경쟁력을 키워온 독일 국민들의 입장에서 빚 많은 이웃나라를 무작정 곱게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 지도자 가운데 그리스 구제에 신중한 입장이었지만, 국내에서 그리스에 세금을 퍼준다는 비판을 받았고 여당은 지난해 5월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기도 했다.
회원국에 '경제적 규율'을 부과하지 못한 EU 집행부의 약한 리더십도 독일로서는 불만이다. 독일은 그간 반(半)만 통합된 유럽 경제에 대한 불만을 표시해 왔다. EU 27개국 가운데 유로화를 쓰는 17개 나라(유로존)의 경우 금리나 통화량 같은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이 결정하고 재정정책은 각국이 결정한다. 단일통화는 환율변동을 줄여줬지만 문제점도 낳았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물가가 오르더라도 지금처럼 각국의 경제 상황이 다른 경우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달 4일 핀란드에서 열리는 EU 정상회담은 향후 유럽의 진로를 가늠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 자리에서 2013년 설립될 유럽안정화메커니즘(ESM·키워드)의 기금 규모와 운영 방법을 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기구는 '유럽판 IMF'라고 할 수 있는데, EU 회원국 가운데 재정 위기를 겪는 나라를 구제하는 상설기구다. 독일은 그간 이 제도 도입의 전제로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는 경우 강력히 제재하는 방안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상당수 국가는 이런 방침이 개별 국가의 주권을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이 때문에 3월 회의에서마저 회원국 간의 이견이 생길 경우 EU가 분열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필립 스테판스(Stephens)는 이 모습을 앞뒤가 분리된 기관차에 비유했다. "독일이 운전석에 타고 프랑스가 뒷자리에 탄 열차는 달려가겠지만 느림보(독일·프랑스와 행동을 같이하지 않는 국가들)는 뒤에 남겨질 것이다."
☞ 유럽재정안정기금(EFSF·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
2010년 5월 룩셈부르크에 세워진 임시 구제금융기관이다. 유로화 사용국가가 돈을 내고 이 현금을 바탕으로 채권을 발행해 그리스·아일랜드에 지원했다. 당초 4400억유로 규모로 조성하기로 하고 독일이 28.4%, 프랑스가 21.3%, 이탈리아가 18.7% 순으로 출자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높은 채권등급(AAA)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빌려줄 수 있는 규모는 2500억유로다.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 유럽안정화메커니즘(ESM·European stabilization mechanism)
2013년 끝나는 유럽재정안정기금을 대신해 만들어지는 상설구제금융기관. 5000억유로 규모로 조성이 추진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3월 EU 주요국 정상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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