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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리더십·상호협력 사라진 'G제로' 시대

美 쇠퇴에 권력 진공… 결론 없는 회의로… 리더십·상호협력 사라진 'G제로' 시대… 세계 경제 회복과 발전이 위태위태하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주요 20개국이 세계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는 G20(group 20)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리더십은 사라졌고, 통화와 재정이라는 양대 경제 정책에서부터 환율, 국제수지 불균형, 무역, 에너지 같은 문제에서 G20 내부에는 심각한 혼란과 이견(異見)이 있다. 주요국들은 이런 문제가, 모두가 득을 보는 포지티브섬(positive sum) 게임이 아니라 한 명이 이득을 보면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보는 제로섬(zero sum) 게임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G0(제로) 시대에 살고 있다.

19세기에는 영국이 자유무역과 자본이동을 주도하며 안정된 헤게모니를 행사했다. 금본위제와 영국 파운드화는 세계 통화로서 역할을 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그 자리는 미국이 차지했다. 미국은 서유럽과 아시아, 중동, 남미에 안보우산을 제공하며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를 실현했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를 지배했다. 기축통화가 된 달러를 통해서는 무역과 금융의 세계질서를 결정했다.

하지만 오늘날 '제국'으로서 미국은 쇠퇴하고 있고 막대한 적자를 감안하면 재정적으로도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중국이라는 떠오르는 강대국도 마찬가지다. 무역, 환율, 기후변화 문제에서 중국은 세계 전체에 기여하기보다는 기존 시스템에 무임승차하고 있다. 미국 달러에 대한 각국의 불만이 있지만 중국 위안화를 기축통화는 둘째치고 주요 통화로 보기도 어렵다.

이런 권력의 진공상태는 G20의 리더십을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G7(주요 7개국 회의)이 G20으로 확대된 이후, 각국이 경기부양책에 합의했던 2009년 4월 런던회의를 제외하면 G20은 단지 또 하나의 관료 회의가 됐다. 논의는 많이 하지만 결론은 못 내리는 회의 말이다. 그 결과 주요국들은 경기부양책이 더 필요한지, 아니면 그것을 줄여야 하는지에 대해 합의를 못한 채 논쟁만 계속하고 있다. 전 세계 무역수지 불균형 축소 문제나 환율 문제도 마찬가지다. 환율을 둘러싼 갈등은 환율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무역 전쟁과 무역 보호주의로 번질 수 있다.

다자간 자유무역을 협상하는 도하라운드는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여러 나라가 외자(外資) 유입에 대해 다시 규제를 도입하고 있어 금융보호주의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은행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어떻게 개혁할지에 대한 국가 간 합의도 진전이 없다.

기후변화 협상도 마찬가지로 실패로 끝났다. 자원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식량과 에너지 안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이나 핵무기를 둘러싼 이란의 야심,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충돌,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혼란, 중동국가의 민주화 같은 지정학적인 문제에서도 주요 국가들은 입장이 갈리고 있어 해결책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G20이 G제로가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숫자다. 일반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논의할 경우 7개국이 모인 G7보다 20명이 협상해야 하는 G20에서 분명한 합의를 하기 훨씬 어렵다. 둘째, G7 지도자들은 자유시장이 장기적인 번영을 가져온다는 믿음, 정치적인 안정과 사회 정의를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공유했다. 하지만 G20에는 독재 국가도 끼어 있다. 이들은 경제 문제에 대한 국가 개입 수준부터 법의 역할, 재산권, 제도의 투명성, 언론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셋째,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국제적인 의제를 논의할 주도할만한 정치적, 경제적 여력이 없다. 미국은 보수와 진보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돼 있고 재정 적자도 어느 순간부터는 줄여야 한다. 유럽은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을 되살리는 문제에 골몰해 있고 공통의 외교 안보 정책도 없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교착상태에 빠진 일본은 자기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신흥국가들은 자기 나라의 발전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국제 질서를 세우는 데 필요한 경제적, 정치적 비용을 치르려들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국제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정치적 의지나 경제적 능력을 갖춘 개별 국가나 강력한 동맹이 사라진 상황에 직면해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권력의 공백기에서 각 나라는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하고 때로는 그 이익을 위해 공격적으로 변한다. 공동의 이해를 지킬 제도와 이를 정할 높은 수준의 합의가 없는 상황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리더십과 상호협력이 사라진 G제로 시대에 세계 경제 회복과 발전은 위태롭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