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1%만이 부자였다, 경제는 곤두박질했다"

 

 "1%만이 부자였다, 경제는 곤두박질했다"
  • 입력 : 2011.02.12 03:01

"상위 1%에만 富가 집중됐던 1928년·2007년 경제위기 터져
소득격차 줄이고 중산층 살려야 '대번영의 시대' 다시 찾아올 것"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로버트 라이시 지음|안진환·박슬라 옮김|김영사|240쪽|1만3000원

2008~2009년 불황 동안 미국에서는 900만개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난해 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회복을 했지만 새로 생겨난 일자리는 100만개를 조금 넘었다.

고통스러운 경제위기가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미국인들이 빚잔치를 벌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준 은행을 비난한다. 은행을 감독하지 못한 당국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 금융위기조사위원회는 금리를 낮춰 '부동산 거품'을 만든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공범'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UC버클리 교수이자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저자의 분석은 다르다. 요약하면 이렇다. "미국인들이 과도하게 돈을 빌린 것도 맞다. 하지만 많은 빚은 위기의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미국의 부(富)가 상위 1~2%에 집중된 반면 중산층의 소득이 정체된 데 있다."

저자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찾기 위해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도 부가 소수에 집중되고, 소외된 중산층은 구매력이 떨어졌다. 미국 역사에서 소득 상위 1%가 전체 부의 23% 이상을 차지했던 해는 딱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1928년이었고 다른 한 번은 2007년이었다고 한다. 두 번 다 이듬해 경제위기가 터졌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 정부는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꿨다. 정부는 공공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고용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확대해 무너진 중산층을 키웠다. 소득이 늘어난 중산층이 물건을 사들이자 미국 경제 전체가 선순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대번영의 시대'다. 상위 1%가 차지하는 부는 전체의 8%까지 떨어질 정도로 소득 분배가 개선됐고,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 가족이 차 두 대를 살 여력을 갖게 됐다.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한 가족이 차를 두 대 사면 할인해 준다는 내용의 TV 광고 '포드 두 대의 자유'를 시작한 것은 1950년대였다.

이런 대번영이 레이건 시대부터 변질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작은 정부, 시장 자율, 기업과 부자에 대한 감세를 축으로 한 레이건의 경제정책은 미국 경제를 어느 정도 활성화시켰지만(저자는 이마저도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소득 격차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공장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생산성은 올랐지만 중산층 노동자들의 임금은 게걸음을 걸었다. 중산층이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세 가지였다. 집에 있던 여성들이 일터에 나가고, 더 오랜 시간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대출받는 것. 오르는 집값이 중산층 가게의 현금인출기였지만 그마저도 2008년 집값이 폭락하면서 작동을 멈췄다. 결국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급감했고 경제가 추락했다는 게 저자가 말하는 이번 불황의 연대기다.

원인이 다르다면 대책도 달라야 한다. 저자는 가계와 정부가 빚을 줄이고, 은행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대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가 내놓는 해법은 과감한 중산층 살리기다. '대번영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이 돈으로 중산층에는 소득을 보조해 주자는 주장이다. 중산층이 학자금 대출에 억눌리지 않도록 학자금 쿠폰을 지급하고 비싼 민영(民營) 의료보험을 대신한 전국 단위의 국가의료보험을 도입하라는 주장도 한다. 그는 이런 주장이 '부자 때리기'가 아니며 부자들의 정치적·경제적 이해와도 부합한다고 강조한다. 중산층 없이는 경제의 파이를 키울 수 없고, 지금과 같은 큰 소득 격차는 부자들이 우려하는 과격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치를 낳기 때문이다.

저자의 대책이 현실적인지, 실현 가능한지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위기의 원인을 단지 '금융의 실패'에서 찾는 게 아니라 정부·시장·노동이라는 큰 그림에서 꿰뚫어보는 저자의 시각은 날카롭게 설득력 있다. 원제는 'After Shock'으로 2010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