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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칼럼 inside] 한국, 물가보다 '가계 부채와 전쟁'이 먼저다

[칼럼 inside] 한국, 물가보다 '가계 부채와 전쟁'이 먼저다

  • 오석태 SC제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입력 : 2011.02.05 14:12

금융위기 이후 가파르게 증가 부채비율 143%… 美 123% 그쳐
금리 올릴땐 저소득층 대책 필요

 

정책 당국은 지금 물가와 전쟁 중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갑자기 커지면서 새해 벽두부터 정부는 물가안정 종합대책을 내놓았고,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렸다.

그런데 과연 인플레이션이 우리 경제의 가장 심각한 위험 요인인가? 정부와 한국은행이 모두 물가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아야 하는가?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 물가 안정이 최대 현안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다른 요소를 감안하지 않고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빠른 경제 성장의 산물이다. 신흥국의 인플레이션 우려는 결국 경기 과열에 대한 우려다. 일부에서는 우리의 기본적 성장능력(잠재 GDP) 이상으로 GDP가 높아졌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전분기 대비 GDP 성장률(작년 3분기 0.7%, 4분기 0.5%)을 보자. 성장세는 둔화하고, 실제 GDP와 잠재 GDP의 차이도 축소되는 것으로 보인다.

임금 상승 역시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우려의 핵심은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이다. 세계가 중국의 인플레이션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임금 급등(20% 가까운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다. 고성장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우리나라의 경우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작년 6~7%의 임금 상승은 2007년에서 2009년까지 3년에 걸친 임금 동결에 따른 반작용이었다. 올해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기업 채산성 악화로 임금 상승률이 오히려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구제역에 따른 축산물 가격 급등과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급격한 금리 인상은 물가를 잡기보다는 경제 성장세를 꺾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최근 물가 상승세는 실질소비의 둔화로 이어져 이미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에 강력한 통화 긴축 정책으로 총수요가 줄어들면 경기회복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완만하고 꾸준하게 금리를 올리는 것이 경제의 위험을 줄이는 데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우리 경제의 최대 과제는 물가와의 전쟁이 아니라 가계 부채와의 전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가계 부채 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9년 현재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43%로, 미국(123%)보다 훨씬 높다. 미국에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가계 부채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가계 부채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의 가계 부채 문제가 전면에 드러나는 숫자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부채의 대부분을 소득 상위 계층이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부동산 거품 붕괴 우려가 별로 없기 때문에 가계 부채가 금융 위기로 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계 부채가 우리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우선 변동금리 대출이 대부분이라 금리 상승에 취약하다.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지불하는 대출의 비중도 높다. 중장기적으로 부채가 계속 늘어날 위험이 큰 것이다. 부채 부담이 내수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점도 있다.

가계 부채와의 전쟁 역시 급격하게 진행해서는 안 된다. 가계 부채 액수의 축소가 경기 침체 및 부동산 시장의 급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꾸준한 가계 부채 증가세로 인한 내수와 자산 시장의 회복은 금융 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 따라서 가계 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면서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줄여 나가는 연착륙이 현실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

가계 부채 문제 해결에서 핵심은 금리 정상화다. 한국은행은 꾸준히 금리를 올려 경제 주체들에게 금리가 결국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 줘야 한다. 그러면 가계 부채 상승세가 제어될 것이다. 다만 변동금리 대출 구조 아래에서 금리 상승 속도가 너무 빨라선 안 된다. 빚이 있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급격하게 줄어 전체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거시 건전성 대책을 통해 부채 증가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올 3월까지 한시적으로 폐지한 주택담보대출의 총부채상환비율(DTI·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간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게 제한하는 조치) 규제를 당초 약속대로 재도입해야 한다. 주택시장이 바닥을 찍은 상황에서 DTI를 재도입하지 않으면 부동산 과열로 가계 부채 증가 속도가 더 커질 수 있다.

변동금리 대신 고정금리 대출을 활성화하고, 원금은 놔두고 이자만 갚는 기간도 줄여야 한다. 이런 조치는 원리금 상환 부담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협의도 함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