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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한국 年 2243시간 노동…OECD 평균보다 500시간 더 일해

삼성토탈은 지난해 대구에 있는 지방영업소를 없앴다. 직원들은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하는 대신 곧장 거래처로 간다. 예전에는 사무실에 들러 출근도장을 찍고, 점심식사 후 거래처를 방문한 뒤 밤늦게 귀사해 회의하는 일정을 반복했다.

그러나 거래처를 출ㆍ퇴근 장소로 삼으면서 평소보다 하루에 거래처 2~4곳을 더 방문하게 됐다. 퇴근길에 무작정 회사에 들러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막을 수 있게 됐다. 이러다 보니 영업실적도 자연히 높아졌다. 회의는 스마트폰이나 이메일로 대체됐다.

불필요한 초과근로 시간을 줄여 업무 효율성을 개선한 사례다.

우리나라 노동생산성 개선을 가로막는 주요인은 근로시간이 다른 나라보다 불필요하게 길다는 것이다. 업무와 관계없이 느슨하게 보내는 시간을 줄이거나 업무 숙련도를 높여 같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간편한 방식으로 대처해온 탓이다. 수당을 미끼로 법정 근로시간을 넘기는 것은 국내 기업의 오래된 관행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 연간 노동시간은 2243시간으로 OECD 국가 전체 평균(1766시간)보다 약 500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불필요한 초과근무가 관행적으로 굳어지다 보니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한상용 한국생산성연구소 부소장은 "주요국과 비교해 근로시간이 길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 추가로 근로시간을 늘려 산출량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이제는 초과근로를 줄여 생산성을 개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성을 무시한 채 근무 연장을 장려하는 등 요소 투입을 늘리는 방식은 앞으로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초과 근로시간을 단축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먼저 직원 초과근로에 따른 유인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직원들로서는 잔업이나 야근수당이 높다면 일부러 근무시간을 늘리려는 유인이 발생하는 만큼 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부 근로자들은 잔업수당을 받기 위해 할 일이 없음에도 남아 있거나 정규 근무시간에는 일을 태만히 하고 늦게까지 남아 특근을 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며 "초과근로에 따른 인센티브를 크게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유니클로사(社)는 근무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특정 시간대에는 직원들 간 대화도 금지한다. 반면 대다수 사무실은 오후 7시에 일제히 소등한다. 직원들이 일을 제시간에 끝마치려면 근무시간에 딴짓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물론 야근이나 특근에 대한 보상이 너무 낮으면 사측이 오히려 ’싼값’에 초과근무를 조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잔업수당이 너무 높아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너무 낮아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잔업수당은 초과근무가 관행적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노사가 합의해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 국가들은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으로 돈이 아니라 휴가를 제공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아무리 초과근로를 많이 해도 대체휴가를 가야 한다면 총근무시간은 일정해질 수밖에 없다. 독일 기업들은 초과근로에 따른 인센티브로 수당(5.5%)보다 보상휴가(30.8%)를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초과근로를 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기본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인데 노사가 합의하면 1주일에 12시간을 늘려 최대 52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법 제59조는 운수업 금융보험업 보관업 등은 노사 간 합의가 있으면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과근로시간 제한에서 사실상 면제되는 업종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 당국이 법정근로시간 준수를 제대로 감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근로기준법상 노사 합의로도 최대 3개월 기간에 주당 52시간 이상 근로를 할 수 없음에도 현실에서는 많은 기업이 이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과근로를 무작정 줄이는 데 따른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근무시간을 줄이면서도 과거와 동일한 산출량을 내려면 업무 강도가 세질 뿐 아니라 초과근로에 따른 수당이 줄어 결국 임금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 초과근로 철폐가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노동시간을 과도하게 줄이면 시간당 업무 부담이 늘어나 결과적으로는 산출량을 줄여 생산성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우선순위 측면에서 초과근로가 관행화한 우리나라에서는 업무시간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데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손민중 연구원은 "상사 눈치를 보면서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불필요한 회의를 자주 하는 등 비효율이 만연해 있는 만큼 근무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