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07 14:10
남성보다 여성이, 고졸자보다 대졸자 이상이 ‘취업 어려워’
“청년 눈높이 맞는 질 좋은 일자리 부족한 상황”
지방 사립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김영연(27·가명)씨는 대학 후배들 사이에서 ‘김느님(이름과 하느님의 합성어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추켜세우는 은어)’으로 통했다. 4.2점에 가까운 학점에 토익 최고 점수는 820점, 건축기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전국 단위 전공 관련 공모전에서 입상한 이력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점점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전공과 관련된 업체에 입사 원서를 넣고 있지만 번번이 낙방하고 고작 제안 받은 자리가 연봉 2000만원에 불과한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연봉 2000만원이면 한 달 받는 급여가 150만원도 채 되지 않을텐데, 그동안 노력한 것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 없는 보상인데다 그나마도 불안한 비정규직이라는 조건이어서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더 한숨 나오는 일이 있었다. 취업이 너무 막막해 취업지원상담센터에 찾아가 상담을 받았는데 ‘다른 부분은 크게 부족하지 않은데 학벌 경쟁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 같다’며 ‘조금 늦었지만 수도권 소재 대학으로 편입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들은 것이다. 김씨는 “어렵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취업 전선이 이렇게 치열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상황을 벼랑 끝에 내몰린 것으로 묘사한 ‘청년 고용 절벽’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청년들의 구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조선비즈가 리서치 전문기업 엠브레인에 의뢰해 전국 20대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취업이 어렵다고 한 응답은 80.9%였고, 보통이라고 한 비율은 13.6%였다. 취업이 어렵지 않다고 한 응답은 5.6%에 불과했다. 취업이 어렵다는 응답 중 매우 어렵다는 응답이 38.4%였고, 어렵다는 응답이 42.4%였다.
20대가 느끼는 취업 체감도는 성별과 최종학력에 따라 달랐는데, 남성보다는 여성이, 최종학력이 고등학교인 고졸자보다는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고학력자의 취업 체감도가 더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 20대 남성 중 취업이 어럽다고 한 비율은 77.0%였지만, 취업이 어렵다고 한 여성 응답자는 85.0%로 남성보다 더 높았다.
서울 D여대 중문과를 졸업한 최유림(25·가명)씨는 중국과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와 중국어와 영어가 능통하다. 여행사에 취업하고 싶은 최씨는 졸업 후 1년 동안 대형 여행사는 물론 중소형 여행사의 취업 문을 수 차례 두드렸지만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마냥 구직 활동에만 매달릴 수 없었던 최씨는 임시로 중국어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최씨는 “여대 출신 구직자들에게 취업문은 더 좁은 것 같은데 앞으로도 취업을 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다”며 울먹였다.
실제로 기업 인사담당자의 절반은 채용 시 남성을 여성보다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2013년 기업 인사담당자 39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가 다른 조건이 같다면 채용 시 선호하는 성별이 있다고 답했는데, ‘남성을 선호한다’고 한 응답자가 67.4%로 ‘여성을 선호한다’는 응답(32.6%)보다 훨씬 많았다.
남성 채용을 선호한다고 한 인사담당자들은 “남성이 여성보다 야근 등 높은 근무 강도에 잘 적응하고, 여성보다 더 오랫동안 근무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혼, 육아 등으로 여성 인력 활용도가 남성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응답자의 절반(50.3%)은 ‘채용 시 여성 지원자를 기피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을 졸업한 이은성(25)씨도 여성 취업자를 향해 높이 쌓인 취업 장벽을 실감하고 있다. 이씨는 “취업을 목표로 중소기업에도 입사할 계획이 있지만, 비(非)상경계인데다 여자인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종학력이 높은 20대일수록 취업에 더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졸자 중 취업이 어렵다고 답한 비율은 67.9%였지만, 대졸자는 80.4%, 대학원 이상은 89.6%로 최종학력이 높아질 수록 취업에서 느끼는 어려움도 커졌다.
서울 유명 사립대 공과대학을 졸업한 최남기(29)씨는 가까운 친구들이 취업 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일찌감치 대학원행(行)을 선택했다. 학업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학력을 더 쌓으면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최씨는 공학 지식을 더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석사 학위는 경제학으로 받았다. 특별한 스펙은 없었지만, 학점과 틈틈이 준비한 영어 실력이 나쁘지 않아 취업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씨는 지난해 취업 전형에 줄줄이 떨어진 뒤 현재 원치 않게 연구실 생활을 더 하고 있다. 지도교수 추천까지 받아 지원한 대기업 입사 전형에서 떨어지고 다른 기업에서도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다. 최씨는 “설마 내가 이런 취업난을 겪을 줄은 몰랐다”며 “물론 눈높이를 낮추면 어디든 취업이 되겠지만, 그동안 생각해온 수준이 있어서 눈높이를 낮춘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허탈해 했다.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학력이 높을수록 눈높이가 높아지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 고학력자들에게 걸맞는 질 좋은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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