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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은행원 A씨가 주말농장 찾는 까닭은?"... 금융권 '알짜 일자리' 금융위기 이후 최저

입력 : 2016.01.12 10:27 | 수정 : 2016.01.12 13:36 # 서울에 있는 시중은행 모 지점에서 대출 업무를 담당하는 A차장은 작년 말부터 주말마다 수도권 인근 농장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은행원이 퇴직하면 치킨집 창업밖엔 길이 없다”는 동료들의 말을 농담처럼 들어왔던 그였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아무런 준비 없이 은행을 떠나는 선배들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본점 인사부에서 “이번 기회에 퇴직하는 것이 어떠냐”는 전화를 받은 선배들은 고민 끝에 짐을 싸서 떠났다.

# 국내 중형 손해보험사에 다니는 B차장은 지난해 말 정년까지 10년 넘게 남았지만 회사를 떠나야 했다. 회사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희망 퇴직을 실시했는데,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B차장은 “후배 직원들과 식사는 물론, 말조차 섞지 못하게 하는 등 사측의 퇴직 압박 강도가 거세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고연봉 직장으로 각광 받는 금융권(은행·보험·증권 등) 일자리 수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원 A씨가 주말농장 찾는 까닭은?"... 금융권 '알짜 일자리' 금융위기 이후 최저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기준 금융권 일자리 수는 78만9000개였다. 12월 수치는 아직 통계에 잡히지 않았지만, 연말에 많은 숫자의 금융맨들이 회사를 떠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종적으론 78만개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엔 지난 2013년까지만 해도 87만개에 육박하는 일자리가 있었지만, 2013년 7월(89만4000개)을 정점으로 매년 몸집이 쪼그라들고 있다. 전체 취업자 중 금융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3%로 낮아지면서 지난 200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저금리와 저성장으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게 된 금융회사들이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면서 “향후 핀테크(금융과 IT의 결합)가 활성화될 전망이어서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직원 5명 중 1명꼴로 짐싼 은행도… 대리급까지 낮아진 구조조정

2016년 금융권 구조조정의 신호탄은 신한은행이 쐈다. 신한은행은 오는 13일부터 1주일 가량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희망퇴직 대상은 만 55세 이상이며, 희망퇴직을 원하는 직원들이 많아 퇴직자는 약 200~3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은행도 조만간 희망퇴직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최근 2~3년간 이어지고 있는 금융권 구조조정 한파는 은행·카드·증권·보험 등 금융권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책임자(관리자)급으로 한정됐던 희망퇴직 대상도 대리급까지 낮아지는 등 구조조정 바람은 연령과 직급을 가리지 않고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은행권에서는 4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짐을 쌌다.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과 외국계 은행인 한국SC은행이 1000명 안팎의 대규모 특별 퇴직을 시행했고, 연말에는 KEB하나은행(690명), 기업은행(188명), NH농협은행(347명)이 막판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한국SC은행은 지난해 전체 직원의 18% 수준인 961명을 특별 퇴직으로 내보냈다.
한국SC은행은 지난해 전체 직원의 18% 수준인 961명을 특별 퇴직으로 내보냈다.


◆ 보험, 카드, 증권... 업종 가리지 않고 전방위 구조조정

은행 뿐만이 아니다. 카드업계도 인력 감축 등 몸집 줄이기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업계 1위인 신한카드는 지난해 말 2년 만에 희망퇴직을 실시해 100여명을 내보냈고, 지점도 32곳에서 28곳으로 줄였다. KB국민카드 등 일부 카드사는 수수료 혜택이 많은 카드 발급을 중단하며 비용 절감에 나섰다.

구조조정 바람은 지난해 좋은 실적을 냈던 증권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IBK투자증권, 하나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이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중소형 증권사들도 추가로 감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업계도 예년보다 더 적극적인 감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3월 메리츠화재가 창립 이래 최초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400명을 내보낸 데 이어, 삼성생명과 롯데손해보험, MG손해보험 등도 인력을 줄였다. 지난 2001년 창립한 악사다이렉트도 지난달 처음으로 만 35세 이상 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 임금피크제 도입, 수익성 악화, 핀테크 확산 맞물려

금융권 일자리가 줄어드는 직접적인 이유는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은행 수익성을 나타내는 순이자마진(NIM)은 지난 2010년 2.93%에서 2013년 2.31%, 2014년엔 2.18%로 줄었다. 급기야 지난해 3분기에는 1.81%까지 낮아졌다. 순이자마진이 낮아지면 은행 실적이 타격을 받는다.

카드업계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연간 수익이 67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보험업계는 IFRS(국제회계기준) 제도 도입을 앞두고 회계 장부상 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고령화와 저금리 여파로 과거 2000년대 초반 일본처럼 금융사들이 상당 기간 역(逆)마진에 시달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은행원 A씨가 주말농장 찾는 까닭은?"... 금융권 '알짜 일자리' 금융위기 이후 최저


◆ 직원들끼리 ‘으르렁’... 내부 갈등 조장하는 희망퇴직

희망퇴직은 표면적으론 직원들의 자발적인 신청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인건비 감축을 위해 일정 목표를 잡고 진행을 하게 된다. 때문에 퇴직을 종용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해 갈등을 빚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일부 금융사들은 연수원 등에 대기 발령을 내놓고 사실상 퇴직을 종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 경우 어쩔 수 없이 회사 문을 나서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뱅킹과 같은 비대면 채널 확산과 핀테크 기업의 부상 등 금융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도 금융사들이 감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점 일감이 떨어지면서 예전처럼 지점에 대규모 인력을 둘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2012년 7698개이던 국내 지점 수는 지난해 9월 말 7322개까지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