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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알아듣기/영어한마디

[나의 영어 공부기①]

[나의 영어 공부기①]

요즘 해외연수를 앞둔 후배 법조인들 및 유학을 준비하는 대학생들과 얘기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그러다보니 문득 필자가 늦깎이 유학(법원에서 보내주는 1년짜리 석사과정 해외연수)을 준비하며 벼락치기로 영어공부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선 전제로 필자는 영어를 잘 못한다. 그래도 공부 잘해서 판사까지 되었을 텐데 겸손한 척하는 거냐는 분들도 있겠다. 핑계를 대자면 요즘 학생들과는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에 자랐고, 태어나서 신혼여행 때 처음 해외 구경을 해 보았다.

88학번인 필자의 대학입시 당시에는 전두환 대통령 시대의 과외금지, 사교육금지 조치로 재학생의 학원 수강까지도 금지되어 있던 시기였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자기가 문제집 열심히 푼 것으로 객관식 위주 대입고사 하나만 잘 보면 되는 역사상 가장 단순명쾌한 입시제도였다. 어차피 부유한 환경이 아니어서 학원비, 과외비 댈 능력이 없던 필자와 같은 학생들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이었다. 그 은혜를 입은 필자로서는 그 분의 전재산 상당액을 무이자로 빌려 드릴 용의가 있을 정도다(29만 원).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에도 중산층의 사교육만 묶여 있었을 뿐 최상류층 권력자, 큰 부자들은 현역 교사들을 집으로 불러 고액 비밀 과외를 하고 있었지만, 워낙 극소수라 그런 애들이 명문대 좀 묻어 들어간다고 전체 입시 판도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 돈으로 스펙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전국 단위 시험에서 초고득점을 하도록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입학사정관, 학생부, 각종 스펙이 중요한 지금이 시험 한 방으로 승부하던 당시보다 훨씬 부유층에 유리한 제도라고 본다.

얘기가 옆길로 샜지만, 당시의 영어 역시 문법, 독해, 어휘 위주로 틀린 것 찾기 수준의 시험이어서 문제 풀기 반복 훈련이 필요하지 요즘 같이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실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어 선생님들도 발음이 ‘엄부렐~라’ 수준이고, 그때만 해도 주변에 외국물 먹고 와서 빠다 발음하는 친구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문법, 독해만 잘하고 듣기 말하기는 안되는, 전형적인 눈으로만 배운 영어였다.

법대 들어간 후에는 아예 영어공부를 한 적이 없다. 영어 원서 보는 게 기본인 이공계와 달리 법학은 독일법을 원조로 한 일본법이 우리 법의 기본을 이루고 있어서 책에 한자만 많지 영어 단어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독일어 단어는 자주 나옴). 사법시험도 1차 시험에 외국어가 있긴 하지만 영어보다 불어 등 제2외국어 시험이 더 쉽게 출제되었다. 그래서 당시에도 대학생들 누구나 하던 토플 공부나 바퀴벌레 22000마리 공부(vocabulrary 22000) 등을 해 본 일이 없다. 이러다 보니 일생 영어는 옛날 중고등학교 공교육 외에는 접해 본 일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보면 경악할 뿐이다. 중학생이 토플 만점 수준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어려서 외국물 먹은 친구들이 발에 채일 만큼 많고. 멀리 갈 것 없이 필자가 하버드 연수갈 때 유치원, 초등학교 1학년 다니던 딸애들이 1년 미국생활하더니 ‘빠다 발음’으로 미국 친구들이랑 자유롭게 수다떨기 시작하는 걸 충격과 공포로 지켜본 기억이 있다. 필자가 카운터에서 더듬더듬 영어하는 걸 보다 못해 딸애들이 나서서 해결해 준 적이 있을 정도.

여기까지의 배경을 전제로 하여, 필자가 해외연수를 다녀 온 후 2008년경에 주로 해외연수를 준비하는 후배 판사들을 위하여 썼던 ‘나의 영어공부기’라는 글을 감히 기고하려 한다. 어려서 외국물 먹어 본 일 없는 필자 같은 토종 된장 영어 구사자들, 늦깎이로 유학이나 해외연수를 꿈꾸는 직장인, 학생들, 그리고 아이들 영어공부 시키는 데 관심 많은 분들에게 혹시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는 면이 있을까 해서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