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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말을 섣불리 갈아타면 망한다"

[Weekly BIZ] [Cover Story] 조심하라, 신천지…"한국 기업마다 신사업이 화두 마치 10년 전 미국 보는 듯…말을 섣불리 갈아타면 망한다"

베인앤컴퍼니가 "핵심에 집중하라"고 외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은 '핵심사업'이라는 개념이 괄시받던 시기였다. IT 붐의 영향으로 기업이 성공하려면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대세였다.

그런데 막상 베인앤컴퍼니가 기업의 성장 방식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해보니 결론은 정반대였다. 베인앤컴퍼니의 제임스 앨런(Allen) 전략부문 대표는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약 10년에 걸친 미국 상장기업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한 기업은 신사업에 과감히 뛰어든 기업들이 아니라 하나같이 핵심사업에 집중해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한 기업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핵심에 집중하라(Profit from the Core·2001년)≫라는 책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베인앤컴퍼니 전략부문 대표 제임스 앨런 /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그런데 그는 이번에 한국에 와서 마치 10년 전 책을 쓸 때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네 개의 회사를 방문했는데, 모두 신사업이 화두였다는 것이다. "제 충고는 '신천지(white space)를 주의하라'는 겁니다. 지금 사람들은 '기존 모든 사업은 성장 한계에 다다랐고 따분하다. 새로운 시장, 새로운 영역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10년 전처럼요."

핵심에서 벗어나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그는 버드와이저 맥주로 유명한 안호이저부시(Anheuser Busch)의 사례를 꼽았다. 안호이저부시는 맥주의 주소비층인 '뚱뚱한 미국 남성'이 포테이토칩도 즐겨 먹고, 먹는 장소도 맥주를 먹는 곳과 같은 TV 앞이나 바(bar)라는 점에 착안했다. 그래서 스낵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스낵시장엔 '작은 고추'가 있었다. 안호이저부시에 비해선 턱없이 작지만, 스낵시장에서만큼은 60%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프리토레이(Frito Lay)라는 업체였다. 프리토레이는 저가 공세를 펼쳐 안호이저부시를 내쫓았다.

그래도 때로는 핵심사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해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앨런 대표는 "핵심사업에서 모든 잠재력을 이끌어 내 더 이상 추가 성장이 불가능해 보인다면 비로소 확장을 해야 할 때"라고 했다. 해당 산업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는 경우도 그렇다. 그러나 확장을 하는 경우에도 핵심사업과 인접한 사업(adjacent business)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는 비즈니스의 라이프 사이클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1단계엔 핵심에 집중하고, 그걸로 안 되면 2단계에 인접 사업으로 확장하며, 3단계에 이르러 기존 사업의 수명이 다하면 비로소 핵심사업을 재정의(redefine·기존 핵심사업의 정의를 훨씬 크게 확장하거나 다른 사업으로 말을 갈아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설 교수 같은 사람은 "기업이 몰락하는 것은 핵심에서 옆길로 샜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핵심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나. 앨런 대표는 이에 대해 "도널드 설 교수가 얘기하는 것은 격동기에 있거나 재정의 단계에 있는 산업의 경우 핵심에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우리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경우는 전체의 5~10%만 해당하고, 나머지 90%는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는 겁니다."

핵심을 재정의한 드문 성공 사례 중 하나가 다이아몬드 업체 드비어스(De Beers)이다.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거래하던 회사로 전 세계 원석 공급량을 통제해 다이아몬드 시장 가격을 좌우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러시아·캐나다·호주 등지 생산업체의 반발로 공급 통제력을 잃게 된다. 드비어스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처했다. 예전과 같은 사실상의 독점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독점을 포기하고 소비시장에서 경쟁사들과 경쟁할 것인가. 드비어스는 후자를 택했다. 100년 동안 고수해 온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당시 CEO였던 니키 오펜하이머가 부친으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을 때 부친은 이런 말을 했다. "너의 임무 중 99.9%는 물려받은 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바꾸지도, 망치지도 마라. 그리고 임무의 0.1%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패를 적절할 때 써라." 오펜하이머는 바로 그 0.1%의 시기가 왔다고 판단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앨런 대표는 인접 사업으로 확장하려고 하는 경영자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첫째, 확장을 하는 경우에도 가능한 핵심에 가까이 머물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같은 제품을 다른 나라에 팔거나, 신제품을 기존 유통 채널을 통해 팔아보는 것은 괜찮은 축에 속하지만, 신제품을 다른 나라에 팔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유통망을 통해 파는 식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둘째, 신사업에 진출할 경우 선도적 지위를 구축할 수 있는 길로 가야 한다. M&A를 할 때도 이를테면 7위 업체가 아닌 1위 업체를 인수해야 한다. 그는 영국 이동통신업체인 보다폰(Vodafone)이 일본시장에 진출하면서 3위 업체인 제이폰(J Phone)을 인수하는 바람에 고생만 잔뜩 하고 별 성과 없이 철수한 사례를 들었다. 그는 "기업들이 범하는 큰 실수 중 하나가 많이 뒤처진 후발 주자를 인수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