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Weekly BIZ] '중국 증시 미스터리'

지난해 중국 경제는 10.3% 성장했다. 세계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초고속 성장이다. 그러나 지난해 전 세계 주가는 평균 15% 상승했는데도 중국 증시는 14% 하락해 꼴찌를 다퉜다. 심지어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이탈리아보다 주가 하락폭이 컸다. 〈그래픽1〉

물론 이론상으로는 경제성장률이 높으면 주가상승률도 높아야 정상이다. 그렇다면 경제 성장은 세계 1등인데도 주가는 최악인 중국 증시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2010년 중국 증시의 '이상한' 하락은 증시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물타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중국은 4대 국유 상업은행 중 하나인 농업은행의 기업공개를 비롯해 모두 1조400억 위안(약 187조원)어치의 주식을 발행해 증시에서 돈을 빨아들였다. 농업은행의 기업 공개는 역대 세계 최대로 기록됐다.

정부 규제로 묶여 유통이 제한됐다가 규제 완화로 유통이 허용된 주식 물량도 사상 최대였다. 그 결과 유통되는 주식의 시가총액이 791조원 급증했다. 한국 증시의 72%에 해당하는 시장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시가총액이 늘어난 효과를 주가지수에 반영한다면 중국 증시는 작년에 사상 최고치를 넘어선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픽2〉

■원자바오 총리의 입이 좌우하는 증시


서방 세계는 정부가 시장의 눈치를 보지만, 중국은 정반대다. 중국은 '시장경제'가 아닌 '정책경제'다. 정부의 힘이 세기 때문이다. 중국 증시는 경제 통계 숫자보다 원자바오 총리의 '입'이 더 중요하다. 중국 증시는 정부의 경제 정책, 다시 말해 정부가 긴축 정책을 펴느냐, 확장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곰과 황소가 치고받는 싸움을 한다.

중국 정부는 2007년에 경기 확장 정책을 쓰다가 경기 과열을 우려해 긴축 정책으로 돌아섰고, 와중에 미국발 금융위기를 만났다. 2008년에는 긴축 정책으로 경기를 더 급속히 냉각시키는 바람에 주가가 폭락했다. 중국 경제계에서 원자바오 총리에 대해 "성실히 일하는 건 인정하지만 경제 관리 능력이 전임 주룽지 총리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바로 당시의 경험 때문이다.

2009년 들어 중국 정부는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금융위기에 겁을 먹고 다시 엄청난 돈을 퍼부어 8% 성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동산이 과열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1년 만에 대도시 집값이 50~70% 뛰어오르자 정부는 2010년에 다시 부동산 규제를 빌미로 은행을 통한 통화 단속과 긴축에 들어갔다. 〈그래픽3〉

증시에는 '70대 20대 10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개별 종목의 주가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자세히 보면 시장 전체의 '대세'가 70%를 좌우하고, '업종'이 20%, '개별 종목'은 10%의 영향력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바닷물의 온도가 변하면 큰 고기든 작은 고기든 가리지 않고 어종 전체가 바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세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경기와 유동성이다. 중국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변수를 단 하나 꼽으라면 통화량, 즉 유동성이다. 작년 초부터 중국의 통화 증가율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부동산의 과열 때문에 시작된 통화 단속은 애꿎게도 증시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 상하이 시내 금융기업들의 밀집지 와이탄(外灘) 지역에 설치된 황소 동상. 지난해 5월 중국은 상하이의 금융 중심지 도약 등을 기원하며 미국 월가에 있는 황소 동상을 본떠 이 동상을 제작했다. 하지만 증시 활황을 상징하는 이 황소 모습과는 달리 지난해 중국 증시는 전 세계 주요 국가 중에 꼴찌를 다툴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 블룸버그
■핫머니와의 전쟁

중국은 지금 미국이 풀어놓은 '양적 완화의 덫'에 걸렸다. 요즘 중국에는 매달 평균 4000억 위안(71조원) 이상의 외화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중앙은행이 채권 발행을 통해 돈을 빨아들이지만, 회수율은 85% 선에 그치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 지준율을 올리고, 금리를 인상한 것도 외환유입으로 유발된 인플레를 막기 위한 것이다.

만약 작년 중국 증시에서 경제성장률에 걸맞게 주가 역시 급등했다면 전 세계의 핫머니란 핫머니는 모두 중국으로 몰려와 걷잡을 수 없어졌을 것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증시에서 '초대형 물타기'에 나선 것은 이런 이유도 있었다. 〈그래픽4〉

2010년 중국의 외환보유고 변화를 보면 귀신같이 동작이 빠른 핫머니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외환보유고 순(純) 증가분 중 직접투자와 무역흑자를 제외한 나머지를 핫머니라고 보면, 중국에 유입되는 핫머니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최근 1년간 핫머니 누계액은 1853억달러로 같은 기간 외환보유고 순 증가분의 41%에 달한다.

중국으로 핫머니가 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들은 모두 성장 잠재력이 잠식돼 성장률이 떨어진다. 따라서 투자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은 예외이다. 중국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다.

둘째, 환율 효과가 있다. 중국 경제가 별문제 없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인 매년 5~6% 내외의 위안화 절상이 이루어진다면 대미(對美) 환율은 현재의 1대 6 수준에서 3~5년 새에 1대 4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중국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핫머니의 입장에서는 환차익만 노리고도 충분히 중국에 베팅해볼 만하다.

중국 증시는 여럿으로 나눠진다. 먼저 중국 내국인만이 살 수 있는 'A주' 시장이 있다. 또한 규모는 작지만 외국인도 투자할 수 있는 'B주' 시장, 그리고 중국 기업이 홍콩 증시에 상장한 'H주' 시장이 있다.

상하이 A주 시장은 작년 한 해 동안 17% 하락했지만, 외국인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상하이 B주 시장은 19% 상승했다. 화교와 외국인의 달러 핫머니가 B주 시장에 들어와 주가를 올려놓은 것이다.

한국의 중국 펀드들은 대개 홍콩에서 운용하거나 중국에 운용을 위탁하는 형태라서 주로 홍콩 H주와 상하이시장의 A주 일부 종목에 투자하고 있다. 핫머니 유입으로 주가가 올라도 한국에서 판매된 중국 펀드들의 수익률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하반기를 주목

중국 경제에는 두 가지 손이 있다. 하나는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또 하나는 사회주의 특성상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애국심에 불타는 '정부의 손'인데, 이 손이 가끔 오버를 한다.

중국 정부는 불황이 오면 '경기 부양책→통화 방출→경기 안정→긴축'의 순으로 정책을 쓴다. 중국의 기준으로 보면 8~9% 성장은 경기 확장기이고, 10~11%는 안정기이다. 11% 이상은 과열이기 때문에 긴축 정책을 쓴다. 작년 1분기에 중국 GDP는 11.9%로 과열 단계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의 가만있지 못하는 손이 작동을 시작했다.

중국은 바로 통화량 단속에 들어갔고, 그래도 약발이 듣지 않자 사상 최고의 고강도 부동산 경기 단속을 시작했다. 그리고 6월에는 환율과 수출 환급세 정책에도 변화를 주었다. 그러자 정부 시책에 발맞추어 주가가 알아서 하락한 것이다.

정부 정책과 경기, 기업 이익이 중국 증시에 반영되는 속도와 영향력을 보면, '정책'이 가장 먼저다. 다음이 '경기 사이클'이고 '기업 이익'은 맨 나중이다.

최근 7년간 중국 증시를 보면 정부의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방향이 바뀌면 이듬해 주가는 큰 변동이 있었다. 정부 정책이 긴축에서 확장으로 바뀌면 증시는 상승했고, 반대로 가면 하락했다. 그리고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방향성이 긴축과 확장으로 서로 엇갈려 혼란스러울 때는 전반적인 주식시장도 혼조세였다.

마지막 변수는 기업 이익이다. 기업의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을수록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매력이 부각돼 다음해 주가는 상승세를 보였다. 대개 주가수익비율이 20배 이하면 이듬해 주가는 오르고, 반대로 40배 이상 높아지면 이듬해는 떨어졌다.

작년에 중국의 금융정책은 긴축으로, 재정정책은 확장으로 가버려 정책의 방향성이 엇갈렸다. 중국 증시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런 상황이면 2011년 증시는 큰 재미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금융업종은 금융 긴축 정책의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2011년 중국 투자는 인덱스펀드처럼 시장 전체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될 성싶은 업종에 선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중국 증시에 투자할 때는 무엇보다 정부 정책에 주목해야 한다. 당분간은 중국 증시에서 금융 긴축이란 정책 변수가 경기 사이클과 기업 이익을 압도할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주가수익비율이 12로 역대 최저 수준인데도 증시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작년부터 시작된 긴축 정책의 효과로 경기가 연착륙하는 신호가 확인되면 정부 정책도 다소 확장 기조로 바뀔 것이고,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사실이 새삼 주목을 받을 것이다. 상반기엔 그런 신호를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하반기엔 그런 신호가 있을지 눈여겨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