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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현대건설, 海外공사 누적 수주액 첫 1000억달러 돌파]

입력 : 2013.11.25 03:05

[현대건설, 海外공사 누적 수주액 첫 1000억달러 돌파]

국내 건설사 처음

자동차·조선·제철의 '모태' 역할, 오일쇼크 등 경제위기 땐 '구원투수'
한 해 3만명 고용으로 '일자리 창출', 다리·原電 만들어 '기술 한국' 심어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사로서는 처음으로 해외 수주 1000억달러를 돌파했다. 1965년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해외 건설시장에 뛰어든 지 48년 만이다. 1000억달러는 우리 돈으로 1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올해 정부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액수다.

현대건설은 "지난 22일 중남미 지역에서 14억달러 규모의 정유공장 건설 공사를 수주하면서 해외 건설 공사 누적 수주액이 1010억527만달러가 됐다"고 24일 밝혔다. 이 금액은 올 11월 현재 국내 건설업계의 전체 해외 건설 누적 수주액 5970억달러의 17%에 해당하는 규모로, 2위 대우건설(485억달러)을 2배 이상 웃도는 것이다.

한국 경제개발의 주역이었던 현대건설은 2000년대 들어 극심한 유동성 위기 속에 한때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에 들어가는 굴곡을 겪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기술력과 탄탄한 시공 능력으로 국내 건설업계 역사에 남을 대기록을 만들어냈다. 지난 2011년 현대차그룹에 편입됐다. 현대건설의 해외 진출사는 국내 경제사에 5가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태국서 '첫 삽' 48년만에… 세계를 건설하다

세계무대 진출의 신호탄

현대건설의 첫 해외 수주 공사는 19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였다. 국내 건설업계 사상 첫 해외 진출이었고,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역사의 서막이기도 했다. 변변한 공장 하나 없었던 한국의 한 건설회사가 세계시장의 문을 열어젖히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당시 이 공사 수주는 국가적인 경사로 여겨져, 현대건설 기술진과 근로자들이 김포공항을 떠나는 날, 방송사가 생중계를 했을 정도였다. 현대건설은 수주 금액이 540만달러였던 이 공사에서 큰 손해를 봤지만 끝까지 공사를 마무리해 국제시장의 신뢰를 얻었다. 이후 중동을 비롯해 전 세계를 향한 글로벌 진출이 이어졌고, 총 55개국에서 781건의 공사를 수주했다.

한국 산업계의 큰 뿌리

현대건설의 해외 건설사는 달러를 벌어들여 자동차·조선 등 우리나라 기간산업의 대표 기업들을 키워낸 창조의 역사였다. 해외 진출이 오늘 제조 강국 한국 경제의 모태 역할을 한 셈.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전 LH공사 사장)은 "현대가(家)의 모든 기업이 현대건설에서 파생됐다. 자동차·중공업·제철 등이 세워지고 성장하는 데 (현대건설이) 중요한 기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세계 조선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은 1970년 초 현대건설 내 조선사업부로 시작했다. 울산조선소를 착공한 이듬해인 1973년 이 조선사업부가 독립해 현대중공업이 됐다. 1967년 발족한 현대자동차의 탄생·성장 과정에서도 현대건설이 자금과 핵심 인력을 지원했다. 1974년 착공한 연산 5만6000대 규모의 국산 종합자동차공장 건설 공사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현대건설이 도맡았다. 제철도 마찬가지였다. 이종수 전 사장(2006~ 2009년 재임)은 "1970년대 중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들어온 공사비로 당시 인천제철(지금의 현대제철) 인수 자금을 조달했다"고 말했다.

오일쇼크 등 경제 위기를 극복한 주역

1970년대 두 차례 발생한 국제 석유파동으로 우리나라는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경제는 빈사(瀕死)상태였고, 1974년 국제수지 적자는 17억1390만달러에 달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현대건설이었다.

1975년 처음 중동에 진출한 현대건설은 그해 바레인 아랍 수리조선소 공사를 1억3000만달러에 수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대형 공사를 따내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6년에는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로 일컫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다. 수주액은 9억3000만달러로, 당시 우리 정부 예산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선수금으로 받은 2억달러는 한국은행 외환보유액(2000만달러)의 10배나 됐다. 당시 외환은행장이 고(故) 정주영 회장에게 국제 전화를 걸어 "오늘 우리나라가 건국 이후 최대의 외환보유고를 기록했다"고 감사 인사를 했을 정도였다.

이후 중동은 한국 건설업계의 텃밭이 됐고, 한국 경제는 단숨에 외환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광명 전 사장(1993~1998년 재임)은 "그때 중동에서 달러를 벌어오지 못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었을지 모른다"며 "공사를 못 따내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달려들었다"고 말했다.

배고팠던 시절, 일자리 창출 일등공신

건설업체별 해외 수주 누적 실적.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현대건설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과 빈곤 탈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공사가 한창일 때는 한 현장에 수천 명의 국내 출신 인부가 투입됐다. 젊은이들은 ‘중동에서 2년만 고생하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현대건설 노동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전세기까지 동원됐다. 다른 중동 국가와 동남아에서도 사정은 같았다. 김광명 전 사장은 “중동 진출 초기, 현장 인력은 100% 한국인이었다”며 “현대건설에서만 한 해 2만~3만명이 일자리를 찾아 중동으로 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의 중산층 중 상당수는 이들로부터 출발했다고 봐도 된다”고 덧붙였다.

⑤국내 산업 인프라 구축

1968년 착공한 경부고속도로는 현대건설이 총길이 428㎞ 중 40%를 건설했다. 태국 등 해외 고속도로 공사에서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주역을 맡은 것이다.

현대건설은 국내외를 오가며 쌓은 풍부한 건설 경험으로 국제시장에서 위상을 높였다. 1985년에는 말레이시아 페낭대교(총연장 14.5㎞)를 완공했다. 이 대교는 당시 아시아 최장의 다리이자, 세계에서 셋째로 긴 다리로 이름을 올렸다. 발전소 분야에서도 지난 2011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31억달러짜리 원자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했다. 사상 첫 해외 원전 공사 수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