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증시 현황

일본 주식시장 그리고 유동성 장세

일본 주식시장 그리고 유동성 장세
            
2013.06.03

유럽 경제가 6분기째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동안 독일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다. 오랜 기간 경험해 왔던 경제와 주가 간 관계로는 설명이 힘들다.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도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구리는 경제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하는 금속이다. 산업 수요가 많아 경제가 좋아지면 가격이 올라가지만 반대로 경제가 나빠지면 가격이 내려간다. 올 초까지 둘은 전통적인 모습대로 움직였다. 2월 들면서 관계가 얽히기 시작해 구리 가격이 10% 하락하는 동안 S&P500은 11% 상승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주식시장을 가지고 있다. 시가총액 규모가 전 세계 시장의 12%에 달한다. 이런 시장이 지난 6개월 사이에 80% 가까이 상승했다. 아베노믹스 때문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베노믹스는 효과가 있을까?


일본 경제가 가장 오래 회복 국면을 누린 건 언제일까?


전후 최호황기였던 1960년대 중반 이자나기 경기 때일까? 아니면 버블이 한창이던 80년대 중반일까? 둘 다 아니다. 2002년부터 금융위기 직전까지 60개월 동안이다. 지난 20년간 일본 경제가 최악의 침체 상황이었던 걸 감안하면 의외다. 당시 일본 경기 회복은 고이즈미 정권이 성장 우선 정책을 편데다 중국 경제 부상에 따른 수출 증가가 원인이었다. 엔화 약세도 두드러졌다. 2007년 엔/달러 환율이 124엔이었다. 5년간 평균 경제 성장률이 2.2%였고, 주가는 80% 정도 올랐다. 작년에 집권한 아베 정권이 ‘성장을 통한 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고이즈미의 경우를 보면 과거에도 유사한 경우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정책 강도나 주변 상황을 비교해 보면 지금이 2002년보다 약하다.


일본 경제가 장기 회복을 계속했음에도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일본 경제의 저성장 구조 때문이다. 과거 70~80년대만 해도 경제 탄력성이 강해 한번 회복이 시작되면 성장률이 5% 이상으로 올라갔다. 주가도 300% 가까이 상승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제의 탄력이 떨어져 경기 부양책이 나오면 경제가 일시 회복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약해지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이런 틀을 깰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플레 목표를 정하고 이에 맞춰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진일보된 면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동안 무수히 시행됐던 정책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금리가 급등했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 수익률이 유동성 확대 정책 시행 전에 0.35%에서 최근 1%까지 급등했다. 대규모 자산 매입 정책을 시행하면서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행이 2조엔 규모의 채권 매입에 나서면서 금리 상승이 진정됐지만, 자산매입만으로 국채금리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무역수지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4월 일본 수출이 3.8% 증가했지만 수입은 9.4%가 늘어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고인 8,800억 엔으로 늘었다. 

 

 

일본과 유럽 시장을 끌어당긴 힘은?


반면 주가는 크게 올랐다. 6개월간 일본 주식시장이 2002년 이후 경기 회복 기간 전체 상승과 맞먹을 정도로 올랐다. 아베노믹스와 엔저의 영향이 있었지만 그걸로 모든 걸 설명하긴 힘들다. 경제가 좋지 않은 데에도 일본과 유럽 시장을 끌어올린 힘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유동성이다. 유동성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주가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후에는 유동성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기반이 있기 때문에 경제 침체 속에서도 주가가 올랐고, 투자 대상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유동성에 의해 주가와 경제 관계가 뒤죽박죽 된 경우는 수없이 많다. 국내 시장의 두 가지 예를 보자. 우선 1989년인데 ‘85년 3저 호황으로 시작된 주가 상승이 ‘88년 초 힘을 잃는다. 경기가 둔화하는 등 상승을 끌고 오던 힘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종합주가지수는 ‘88년 2월부터 10월까지 600을 벗어나지 못했다. 상황은 11월에 바뀌었다. 금리 자유화를 위해 유동성을 풀면서 돈의 힘으로 종합주가지수가 1000까지 50% 이상 빠르게 상승했다. 유동성에 의한 상승은 이후 장기 하락의 원인이 돼 주식시장이 3년간 약세를 면치 못했다.


2007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돈이 경제 전체에 넘칠 정도가 아니었지만, 주식형 펀드로 자금이 들어오면서 유동성 장세가 본격화됐다. 2007년 2월에서 7월까지 5개월 동안 펀드로 40조 이상이 유입되면서 주가가 42% 상승했다. 시장을 주도했던 조선, 기계 같은 중국 관련주는 PER이 40배가 될 때까지 상승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가 본격화되고, 국내외 경기가 둔화하기 시작했지만 펀드멘털이 돈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유동성 장세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


이제 유동성에 의해 시장이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 예측해 보자. 이를 위해 유동성 장세의 특징부터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유동성 장세는 실적 등 다른 성격에 의한 상승이 상당히 진행된 후 나온다. 유동성 장세가 펼쳐질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모여야 하기 때문인데 주가 상승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유동성 장세가 주로 대세 상승의 끝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유동성 장세가 시작되면 주가가 빠르게 큰 폭으로 상승한다. 국내 시장의 경우 6개월에 걸쳐 45% 정도 올랐다.


상승이 끝나면 유동성 장세가 시작됐던 시작점까지 주가가 빠르게 후퇴한다. 2007년에는 1500이 그 지점이다. 하락이 여기서 멈출 수 있었는데 미국 금융위기가 심해지면서 더 내려갔다. ‘89년에는 종합주가지수 600이 그 선이었다. 선진국 유동성 장세는 얼마나 진행된 상태일까? 미국 시장이 7개월간 25% 정도 올랐다. 워낙 많은 돈이 풀려 경기 회복이 있으면 실적에 이어 돈에 의해 주가가 끌어올려 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런 저간의 사정을 다 감안한다 하더라도 낮지 않은 상승률이다.

 

 

정책 변경보다 높은 주가에 의해 유동성 장세가 끝날 가능성이 있어 


이번 유동성 장세는 금융 완화정책이 수정되든지, 고주가로 심리적 부담이 생기면 끝날 전망이다. 조만간 미국을 중심으로 양적 완화가 약해지겠지만, 강도가 세진 않을 거다. 아직은 정책 변경에 따른 부담을 안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보다는 주가가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유동성 장세 때에는 고평가 부담이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주가가 상승한 후 갑자기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 주식시장이 하루 7% 가까이 떨어지는 격렬한 등락이 있었지만 아직은 유동성 장세의 1차 조정 정도로 보는 게 맞다. 일본 주가 하락의 영향이 일본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유동성 장세를 판단하는 건 정말 어렵다. 실적 장세 같으면 예상 실적을 가지고 주가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지만, 유동성 장세는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그리고 어떤 조건이 되면 방향이 바뀔지 가늠하기 어렵다. 돈의 힘이 주가를 움직이는 핵심 요인이므로 펀드멘털과 주가가 따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추가 상승 가능성에도 안심하고 주식을 살 수 없는 이유다.

 

 

유동성 장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평정심이 필요


현재 국내시장은 스스로 주가를 만들어갈 힘이 없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1분기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5월 말에 보여준 것처럼 선진국과 주가 차별화가 심해져 이를 줄이기 위한 매매가 그나마 시장을 끌고 가는 힘이 되고 있다. 선진국 유동성 장세가 우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그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다. 


선진국 시장이 유동성에 의한 움직이는 동안 우리 시장도 양호한 흐름을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박스권을 뚫고 올라갈 정도는 아니다. 유동성 장세는 상승 때 안심하면 안 된다. 항상 기민하게 대응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경험상 유동성 장세의 끝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