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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뉴욕르포]③ 월가, 인재블랙홀서 '해고천국'으로

입력 : 2013.03.03 10:12

“우리 팀에 트레이더가 모두 15명이었어요. 다음날 출근해보니 5명이 없는 거에요. 그제서야 전날 면담한다고 불려나간 게 그거였구나 싶더군요.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죠.”

2월 뉴욕의 월가는 쌀쌀했다. 영하의 추위와 더불어 감원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금융인들 사이에 잇따른 해고는 이제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하루 아침에 잘 있으란 말도 없이 회사 문을 열고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한 부서가 통째로 없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 일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어느날 불현듯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차가운 사실을 이야기하며 몸을 떨었다.

이들의 경험담은 외신들로만 전해 듣던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한파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게 했다. 우리처럼 서로 고별인사를 하면서 덕담도 나누고, 인사부서에 들러 퇴직금이 얼만지 알아보고 하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해고 통보를 받으면 곧바로 회사 문을 열고 나가야 했다.

“부서장이 잠깐 보자고 하면 그게 바로 끝이었습니다. 면담 후 바로 집에 가야했죠. 사무실에 가서 짐을 싸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 없다며 바로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짐은 며칠 뒤 택배로 왔습니다.”

한 IB 트레이딩팀에 근무하던 펀드매니저는 팀이 해제되면서 같은 팀 동료 9명과 함께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했다. “최고의 팀이라 자부했어요. 해직된 후에도 ‘이참에 팀 단위로 새로운 회사를 알아보자’며 의기투합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정작 그들을 뽑아주는 회사가 없었다.

그는 “규제가 강화되면서 주요 투자은행들이 모두 자기자본매매(PI) 트레이딩 부서를 없애 버렸다”며 “결국 갈 데가 없어지자 일부는 헤지펀드로, 일부는 전문 투자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며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 운용사 직원은 회사가 합병되면서 200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한꺼번에 나가는 걸 그냥 지켜봐야 했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안타까움도 잠시, 살아남은 10%에 본인이 들어갔다는 점에 감사해야 했다.

해고가 일상이 되면서 신규 채용도 팍팍해졌다. 2000년대초에 월가에 들어왔다는 한 헤지펀드 관계자는 자신의 월가 입성 시기를 떠올리며 “수요가 넘쳐났던 그 때가 이제는 모두 옛날 일이 됐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때는 경제, 경영 전공자 뿐만 아니라 수학을 잘해야 하는 공학자들까지 대거 월가에 들어왔어요. 돈을 많이 주니까. 물리학자, 우주학자 등 할 것 없이 장래가 촉망되는 공학자들을 모두 다 빨아들였죠.”

요즘은 임시직으로 뽑는 인턴직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채용 공고를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말했다. 갈 데가 없는 금융인들은 자기들만의 투자운용사를 차리기도 한다. JP모건에서 스타 트레이더로 명성을 날렸던 디팍 굴라티 대표도 조세회피 지역에 헤지펀드를 설립했다.

한 전문가는 이번 기회에 월가로 무작정 인재들이 쏠리는 현상에 제동이 걸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원래 전공을 살려 보다 다양한 분야에 기여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똑똑한 인재들이 다른 분야에서 충분히 기여를 할 수도 있는데 그동안 너무 돈만 밝히고 월가에 몰려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금융업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한 분야에만 매몰될 수도 있는터라 금융만 목표로 한다는 것이 꼭 좋지만은 않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