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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아침논단] 늙어가며 벌어놓은 재산도 없는 한국


初老의 나이에 접어든 한국 경제, 日처럼 '재산 많은 노인' 아니고 
中처럼 '성장 왕성 청년'도 아냐… 늙는 속도 늦추고 재산 불리려면 
성장잠재력, 경상수지 흑자 중요… 결국 경쟁력 키워 수출을 늘려야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외환 위기 사태가 발생한 지 15년이 흘렀다. 외환 위기를 계기로 한국 경제는 대대적인 구조 개혁을 통해 환골탈태했고 결국 위기 극복에 성공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는 또다시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경제의 성장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조로(早老) 현상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를 사람의 일생에 비유하면 어떤 시기의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절대적인 평가가 쉽지 않은 만큼 비교 대상으로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을 먼저 들여다보자.

노(老)대국 일본은 화려한 젊음을 보내고 퇴조하는 노인이다. 하지만 초라한 노인은 결코 아니다. 젊어서 벌어놓은 재산이 많은 재력가다. 일해서 버는 수입은 쪼그라들었지만 재산에서 나오는 수입이 어마어마하다. 통계로 설명하자면 상품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상품수지는 적자(赤字)로 반전해 '제조 대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가 되었지만 해외에 투자해 놓은 재산에서 얻는 투자 수입이 연간 2000억달러를 넘을 정도로 막대하다. 투자 수입에 힘입어 상품수지 적자에도 경상수지는 큰 폭의 흑자(黑字)를 지속하고 있다. 힘을 써서 일하는 능력은 떨어졌지만 재산을 굴리는 지혜는 뛰어나 재산이 재산을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민이 해외에 투자한 대외 투자 자산이 7조달러를 넘을 정도이고 여기에서 외국인들의 일본 투자 자산을 뺀 '순국제투자(Net International Investment)' 자산 규모로 봐도 3조달러를 넘어서 단연 세계 최고다. 일본이 대규모 정부 부채에도 의연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모아놓은 이 재산의 힘이다.

중국은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는 근육 덩어리 젊은이다. 성장 속도는 느려지고 있지만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성장 욕구가 왕성하다. 성장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젊은이답지 않게 재산도 모을 줄 안다. 젊은 나이에도 벌써 재산을 많이 모아 순국제투자 자산이 일본 다음으로 많은 2조달러에 육박한다. 중국이 단기간에 재산을 크게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위안화 가치 저(低)평가에 있다. 중국은 이미 20년 전에 위안화 가치를 큰 폭으로 평가절하해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의 발판을 마련해 놓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의 지혜를 발휘했다. 그리고 '환율 조작국'이란 욕을 먹어가면서도 꿋꿋하게 버텨 20년 동안 2조달러가 넘는 경상수지 흑자를 얻었고 이를 차곡차곡 쌓아 재산을 마련한 것이다. 앞으로는 벌어놓은 재산을 바탕으로 내수 시장을 부지런히 육성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복안도 가지고 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떤가? 성장 측면에서 보면 벌써 초로(初老)의 노인 모습이다. 화려했던 고(高)성장기는 옛날의 일이고, 이제 늙은 선진국들의 성장률에 빠르게 수렴해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적당한 성장을 하면서 그럭저럭 살 만했지만 성장세가 급격하게 둔화되고 있어 앞으로 살아갈 날이 걱정이다. 일본처럼 재산이나 많으면 걱정을 덜 해도 되겠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순국제투자 자산은 적은 정도가 아니라 마이너스다. 우려하는 것처럼 한국 경제가 일본의 저성장 경제를 빠르게 닮아간다면 일본보다 더 큰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다.

지금 한국 경제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당면 과제는 늙어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그 기간 동안에 가능한 한 재산을 많이 불려놓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동시에 경상수지 흑자 폭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초라하고 궁핍한 노년의 미래가 한국 경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성장과 경상수지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내수 주도를 통한 경제성장은 경상수지 악화를 의미하므로 중국이나 일본처럼 대외 자산이 많은 나라는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처럼 순국제투자가 마이너스인 나라는 자칫 위기를 불러올 수 있어서 섣불리 택할 수 없는 방법이다.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수출을 주도해왔던 제조 대기업의 수출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비스산업 부문과 중소·중견기업 부문을 수출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이 부문들을 규제를 통해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독려해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고용 창출력이 높은 서비스산업과 중소·중견기업 부문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해 나갈 수 있다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일자리 창출과 내수 시장 확대도 자연스럽게 달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