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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글로벌뷰] 너무 쏠렸나…안전국채 버블 논란

유럽 재정위기가 길어지고 경제전망도 어두워지면서 유럽 내에서도 안전 국채 쏠림현상이 심해지자, 다시 거품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안전 국채는 세계 경제가 어두워질 때마다 투자자들에게 각광받아 온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은 물론 2008년 8월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하지만 유례 없는 저금리로 자금을 둘 곳 없는 투자자들은 과거보다 맹렬히 안전 국채를 쫓고 있다. 당장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유럽 재정위기로 안전 국채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경우,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는 국가들의 경제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 6개국 국채, 마이너스 금리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2년 만기 단기채 기준으로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유럽 국가는 6곳이다. 독일·핀란드·덴마크·스위스·네덜란드에다 최근 오스트리아도 합류했다.

그중 금리가 가장 낮은 곳은 스위스로 2년물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 0.55%를 기록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각) 실시된 독일 국채 발행에선 2년물 금리가 마이너스 0.06%를 기록하기도 했다. 발행시장에서 마이너스 금리는 사상 처음이었다. 유럽 공동기금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발행하는 채권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넘보고 있다.

모간스탠리의 리차드 포드 채권팀장은 “최근 단기물 국채 가격이 급등(금리 하락)한 것은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인하 영향이 크다”며 “이미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안전 국채를 낚아채게 하는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안전 국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면서 거품 가능성도 조금씩 새어나온다. 스트래티지 이코노믹스 창립자인 매튜 린은 CNBC에 “시나리오는 당국의 개입 또는 가공할 만한 거품, 두가지”라고 분석했다.

◆ 통화도 동반 절상…해당국 경제 위협

거품 우려의 바탕에는 급격한 자금 유입에 따른 통화 절상 가능성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 비유로존 국가들이 우려를 사고 있다.

스위스가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안전자산 지위를 누려온 스위스프랑은 스위스 경제를 갉아먹는 요인이 됐다. 매튜 린은 “스위스의 취리히와 제네바는 원래부터 물가가 높았지만 이제 주택을 구매하기 위한 담보비용은 커피 몇잔 값에 불과하다”며 “스위스 중앙은행은 통화 가치를 내리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이를 위해 작년 9월 유로당 환율을 1.2 스위스프랑으로 묶어두기도 했다.

이제 덴마크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구가 550만에 불과한 덴마크에서 수천억유로에 달하는 자금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지난 5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0.05%에서 마이너스 0.2%로 조정했다. 기준금리도 0.45%에서 0.2%로 인하했다. 투기성 핫머니 유입과 크로네화의 급격한 절상을 막기 위해서다.

헨더슨글로벌인베스터의 데이비드 제이콥 매니저는 “일부 국가에서 통화 가치가 급격히 절상될 경우 투자자들은 마이너스 수익을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에 하나 유로존이 붕괴될 경우에는 큰폭으로 절상된 마르크화(옛 독일 통화)로 독일 국채의 화폐단위가 변경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틈새 전략 성행

‘안전자산도 안전하지 않다’는 논란까지 일자 아예 틈새 전략을 구사하는 투자자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글로벌 채권펀드들이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발을 빼고 세르비아·헝가리·이라크 등 틈새 국가의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장 규모는 작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중이 유로존 국가에 비해 낮은데다 안전 국채보다 수익률이 높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1924년 미국에서 설립된 이튼밴스에서 77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마이클 시라미 펀드매니저는 최근 세르비아 국채 비중을 12%까지 늘렸다. 미국, 중국에 이어 세번째 규모다. 지난 10년간 세르비아가 빠르게 성장했고 GDP 대비 부채 비중이 51%에 불과하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레그메이슨의 스티브 스미스 펀드매니저도 운용 중인 펀드 자금 4%를 헝가리 국채에 배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헝가리에 구제금융을 지급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바탕이 됐다. 그는 “스페인 국채보다 헝가리 쪽을 보유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