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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그때 그사람

장 도영 회고록 망향

1. 신앙소년

평안북도 중간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그의 집은 대대로 기독교 집안이었다. 조부가 교회를 시골에 세울 정도로 신앙심이 좋은 집안이었다.


2. 소녀와의 첫사랑

이 소년은 신의주중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서 한 소녀를 만나 첫사랑에 빠진다. 시내서점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져서 둘이 어울려 다니게 된다. 같이 중국음식도 사먹고, 스케이트도 타고, 신의주 시내를 쇼핑하며 데이트도 한다. 그러나 이 소녀는 학교를 졸업하자 집안의 강압에 의해 시집을 가고, 소년은 대입시험에 실패하여 재수하게 된다.


3. 대학생활

소년은 일본에 있는 중간정도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때는 1940년초였다. 한창 태평양전쟁이 일본 전체를 몰아넣고 있을때였고, 수업은 따분했으며,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소년은 점점 공부에 흥미를 잃고, 영화관,맥주집,찻집등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진다.


4. 징병대상

어느날 등교를 했을때 강의실 칠판전체를 가득메운 글씨, '일본군 하와이 진격!'이란 글자를 보자마자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리나케 뛰어 도망친다. 그때조선학생들은 아직 강제징집되기 전이었다. 시모노세키행열차를 타고, 다시 부산행 여객선을 탔지만 이내 배안에 타고 있던 일본인 징집관들의 심문에 걸린다. 징병입대를 권유받고 이를 거부하자 무자비한 구타를 당한다.


5. 강제입대

피투성이 매맞은 몸으로 부산항에 내려 바로 옆에 있는 부산역에서 우동으로 점심을 먹으려는데 분함과 억울함에 눈물이 쏟아진다. 그가 기차를 타고 평안북도 고향집에 도착했을때 이미 집안에서는 경찰서의 통보를 받고 있었다. 집안의 무사를 염려하여 할수없이 그는 입대하기로 마음먹는다.

추운 겨울, 굵은 눈발을 헤치며 평양 대동강 다리를 건너 일본군 병영으로 향하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다. 바로 입대자와 그 가족들이었다. 도영도 역시 이 무리에 섞여 병영안으로 들어간다. 막사를 배치받고 처음 들어간 훈련소 내무반. 자기의 이름이 붙어 있는 관물대. 그러나 저녁식사때 나온 조악한 군대밥에 목이 걸린다.


6. 중국으로

훈련소를 마치고 도영은 중국전투장으로 향하는 군용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가 배치받을 부대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창문도 없는 어두컴컴한 객차안에서 한참을 달리다가 아침에 문득 객차문을 살짝 열었을때 환한 아침햇살에 눈을 부시며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요동벌판에 넋을 잃는다.

중국 한가운데 위치한 서주라는 곳에 주둔하는 일본군부대에 배치된 도영은 험난한 이등병생활을 겪는다. 그때 마침 장준하라는 조선인학생출신병사가 탈영하는 바람에 같은 조선인으로 고통이 더해진다. 1년여가 지났을때 그는 간부시험에 합격하여 소위가 되고, 조국이 해방된다.


7. 조국으로 귀향

해방이 되고 마냥 상황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험난한 길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요동은 소련군이 점령한 상태였다. 해로로의 귀국대신 육로길을 택한 도영은 북경까지 가서 천신만고끝에 귀국열차에 탑승한다. 중간에 소련군의 행패를 당하게 되고 간신히 단동역에 도착한다.

단동시에서 고국 신의주는 다리 하나 사이. 그는 같은 징병학생출신인 두사람과 함께 그 다리 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고국땅이 있는 다리 저 끝을 향해 뛴다. 다리 중간부터 그들에게는 자유였다. 자유!


8. 불안한 조국

귀국후 북한에 몰아닥친 지주제 철폐움직임에 그는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집안의 소작인들을 모두 모아 지대료를 개선한다. 그리고 신의주로 나와 선배의 주선으로 중학교 국사 교사로 취직한다. 성의를 다해 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던 그때 신의주는 주둔한 소련군과 공산당의 횡포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는 신의주반공학생의거를 목격하게 되고, 소련군의 폭압에 스러져가는 어린 영혼들을 보며 갈등한다.


9. 국군 장교

결국 남하하기로 결심하고, 식구들을 데리고 월남한다. 그리고 우연찮게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하게 된 뒤 국국장교로 임관하게 된다. 지방부대를 돌면서 그는 서서히 승진도 하게 되고, 결국 지난날 피투성이되었던 채로 눈물을 흘렸던 부산, 바로 그곳에 있는 연대의 연대장으로 임명이 된다. 그의 나이 28세.


10. 6.25 발발

그리고 29세로 육군본부 정보국장에 임명되어 일하고 있을때, 6.25전쟁이 발발한다. 후퇴하는 육본의 후발대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강으로 달려갔을때 그는 한강인도교가 폭발하는 엄청난 참상을 목격한다. 비오는 날 컴컴하고 습진 공기속에서 10여미터를 튀어 오르는 차량과 사람들. 그리고 비와 섞여 후두둑 떨어지는 살점들. 모든게 지옥이었다.


11. 박정희와의 인연

구사일생으로 한강을 넘어간 그는 육본에 합류하여 다시 작전을 수행한다. 그때 그는 국장의 권한으로 박정희라는 사람을 다시 군인에 기용할 것을 상부에 건의한다. 그때 박정희는 공산당가입전력때문에 군복을 벗고 민간인상태가 되어 있던 때였다. 아무튼 도영의 도움으로 박정희는 다시 소령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된다. 이후로도 도영은 여러번 박정희를 도와주게 된다.


12. 뛰어난 지휘관

6.25전쟁은 처참했다. 그는 사단장으로 큰 전투를 두 번 치른다. 체계적인 부대운영과 치밀한 전략으로 중공군 1개군단을 섬멸하기도 한다. 그 공으로 대통령으로부터 최고훈장을 2번씩이나 받는다.


13. 쿠데타를 막지 못함

종전후 그는 중장으로 승진하고 나중에는 육군의 최고 지위인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다. 그때 뜻하지 않게 그가 가장 많이 도와준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미 반란군이 서울시를 장악한 상태여서 그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로 마음먹고 박정희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14. 고향을 그리며..

그러나 그는 박정희와 그를 따르는 혁명장교들의 모함에 빠져 반혁명죄로 체포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군복을 벗고 제대를 한 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대학교부터 공부를 새로 시작해 나중에 박사학위까지 받고 대학교수가 된다.



여기까지가 3년전에 제가 읽은 장도영장군의 회고록 '망향'의 줄거리입니다.

[출처] 장도영장군회고록|작성자 정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