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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지펀드가 온다]③‘리먼사태 흐름 바꿨다'

‘헤지펀드의 대가‘ 조지 소로스는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지분에 투자했다가 최소 1억20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리먼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틀리고 말았다.

## 2008년 12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다단계 금융사기(폰지 사기)가 발각되며 헤지펀드의 명성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까지 지냈을 만큼 유력 금융인이었던 버나드 메이도프는 최대 46%의 수익률을 약속하며 신규 투자자들로부터 끌어모은 돈의 일부를 기존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으로 주는 일명 폰지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확인된 피해자만 4800여명, 피해금액은 650억달러에 이른다. 이 충격으로 지난해 메이도프의 아들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2008년 말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폰지사건은 소위 ‘무서울 것 없었던’ 헤지펀드의 흐름을 바꿔놨다.

2007년까지 전세계 헤지펀드 산업은 펀드 수나 규모면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왔다. 특히 1990년대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은 신흥 부유층들의 투자가 늘어나면서 급성장했다. 시장 벤치마크 지수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2000~2007년 동안 헤지펀드 자산의 연평균성장률(CAGR)은 무려 26.8%에 달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에 전체 헤지펀드 중 약 75%가 손실을 기록했으며 업계 전체적으로 -13.9%라는 역사상 최저 수익률을 보였다.

이 때문에 약 10%의 헤지펀드가 청산됐고 펀드 자산 규모는 30%나 급락했다. 프라임 브로커 업무를 했던 대형 은행들의 위기, 주식시장 폭락, 공매도 금지 조치, 마진콜 압력 등 복합적인 악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 헤지펀드 투자자 이동 ‘고액자산가?기관투자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는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국은 헤지펀드 규제가 자본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엄격한 규제를 반대했었다.

오바마 정부는 대규모 금융개혁으로 헤지펀드를 규제하기 시작했고, 헤지펀드들의 사업환경은 악화됐다. 2008년 7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 제한 비상조치를 한시적으로 취했다. 또 2010년 4월에는 변형된 업틱률을 도입해 한 종목의 주가가 하루에 10% 이상 하락하면 공매도 호가를 시장가격 밑으로 낼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유럽연합(EU)도 헤지펀드 감독을 강화했다. 유럽연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부터 금융위기 발생 주요 원인으로 인식된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펀드운영과 관련해 보고 기준을 강화하고 레버리지 비율을 제한하는 등의 규제안이다. 2010년 5월 독일은 공매도 금지를 법제화해 규제를 강화했다.

미국과 유럽의 헤지펀드 규제가 강화되자 헤지펀드 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투자자층이 기존 고액자산가(HNW, High Net Worth) 위주의 개인투자자에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로 이동한 것이다.

헤지펀드는 1990년대 초반까지 소수의 개인 거액투자자(HNWI)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운용돼 왔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국제금융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2000년대 들어 개인보다는 기관 투자자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 및 절차, 투명성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수익 증대와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 헤지펀드에 상당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연기금 등은 자신의 투자자들에 대한 수탁자 책임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헤지펀드에 상당한 투명성을 요구한다.

◆ 선진국 규제 강화에 신흥시장 눈돌린 헤지펀드

금융위기를 계기로 선진국들이 규제를 강화하자 헤지펀드는 신흥시장을 적극 공략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제 성장이 가파른 아시아시장에 공을 들였다.

규제 강화에 더해 저금리로 투자처를 찾기 어렵자 아시아 지역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신시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로스펀드를 비롯해 무어 캐피털과 바이킹 글로벌 인베스터스, 맨그룹이 인수한 GlG 파트너스, DE쇼 등 대형 헤지펀드들이 잇따라 홍콩과 싱가포르 등에 지점을 설립하거나 인력을 보강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10억달러 이상 운용하는 대형 헤지펀드 수는 작년초 10여개 정도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18개로 크게 늘었다.

연기금과 기관투자가들의 참여 확대, 헤지펀드의 구조조정 등으로 점차 대형화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헤지펀드 1곳당 평균 자산규모는 2000년 850만달러에서 2009년에는 1810만달러로 증가했다.

◆ 아시아 ‘개인소득세 낮아 매력 높아’

홍콩과 싱가포르가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부과하는 개인소득세가 영국 등에 비해 크게 낮다는 점도 헤지펀드를 유인하는 요인이 됐다.

현재 홍콩과 싱가포르의 소득세는 각각 17%와 20%로 50%인 영국의 절반도 안된다.

미국에서는 헤지펀드 매니저의 성과보수를 자본이득세(15%)가 아닌 소득세(35%)로 부과하자는 논의가 이뤄졌고, 오바마 정부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매니저들의 소득에 영향을 주는 자본이익세를 15%선으로 낮춰 지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더해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데다 중국과 인도의 경제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헤지펀드가 아시아 진출을 확대하는 이유다.

메릴린치의 세계 부(Wealth)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자산 100만달러 이상인 아시아 지역의 고액 순자산 보유자는 2005년 240만명에서 2009년에는 300만명으로 20% 늘었다.

◆ 헤지펀드 쏠림현상 심화

리먼 사태 이후 헤지펀드는 대형펀드 중심으로 쏠림현상이 심화됐다.

상위 1%에 해당하는 100여개의 펀드 자산 비중이 2003년에는 54%였던 것이 2008년에는 75%까지 상승했다가 2009년에는 70%를 차지하고 있다. 헤지펀드 1개당 평균 자산규모도 2000년 8500만달러 수준에서 2009년 1억8000만달러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금융위기 이후 기관투자자들의 대형 헤지펀드 선호, 투자은행들과의 제휴, 난립했던 헤지펀드의 구조조정 때문에 헤지펀드 대형화 추세가 심화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프라임 브로커들간에도 2008년에 인수 합병이 활발히 일어났다. 베이스턴스와 JP모간이 합병했고, 리먼브라더스와 바클레이즈캐피탈이 합쳤다. 또 메릴린치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합병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7개의 주요 회사들이 전체 프라임 브로커리지 시장의 약 80%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빅 3가 50%를 점유하고 있어 쏠림 현상이 심한 편이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프라임 브로커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은 100억달러로 집계된다”며 “이는 차입, 대출, 거래수수료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순수 프라임 브로커리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전체 헤지펀드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61%에 달할만큼 연관 산업 시장도 크다”고 설명했다.

2009년 이후 헤지펀드 업계는 빠른 회복 속도를 보였다. 연간 수익률도 19%로 회복됐다. 2009년말 단독 헤지펀드 기준 총 자산은 1조7000억달러에 달하며 9400개의 헤지펀드가 운용되고 있다. 2010년말 기준으로는 자산 2조달러, 펀드수 1만여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