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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식

[헤지펀드가 온다]① "헤지펀드 넌 누구냐"

1949년 첫 등장, 위험 회피하며 절대 수익 내는 게 목표
1969년·1973년 증시 폭락때 위험관리 못해 외면받기도
레버리지·공매도 등 다양한 투자전략 활용해 수익

금융위기 터널을 빠져나오던 2010년 영국 경제는 재정적자로 골머리를 앓았다. 파산 위기에 몰린 금융사에 구제금융을 투입하면서 영국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7년 국내총생산(GDP)의 2.7%였던 영국 재정 적자는 2009년 12.6%로 증가했다.

재정적자에 영국 경제가 흔들리자 파운드화 가치도 위태로웠다. 세계적인 유럽계 헤지펀드인 맨 그룹(Man Group)과 윈턴캐피탈(Winton Capital), 블루크레스트(BlueCrest)는 공매도 투자로 파운드화 가치 하락에 베팅(betting)했다. 연초 1.609달러에 거래되던 파운드화는 이후 3개월간 10% 가까이 하락했고, 이들은 불과 몇 달새 수억 파운드를 벌어 들였다. 

그래픽=조경표

 그러나 헤지펀드가 항상 똑똑했던 것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달 8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원자재 헤지펀드인 클리브캐피탈(Clive Capital)이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4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5월 초까지 급등했던 원자재 가격이 며칠 새 큰 폭으로 하락하자 원자재에 투자했던 클리브캐피탈의 한 주간 펀드 수익률은 마이너스 9%를 기록했다.

1998년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의 파산은 헤지펀드 투자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다. 1990년대 LTCM은 1000억 달러의 자금을 모아 해마다 40%의 수익을 올렸다. LTCM은 미국과 러시아의 채권 금리 차익을 이용해 수익을 얻었지만,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채무 불이행)을 선언하자 하루아침에 파산했다. 1998년 8월 LTCM은 하루에 5억5500만 달러 손실을 봤고 한 달 손실은 무려 19억 달러를 기록했다.

◆ 60년 역사의 헤지펀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헤지펀드는 세계 금융시장의 붕괴를 가속화시킨 주범으로 지목돼 ‘탐욕’의 대명사로 꼽혀왔다. 헤지펀드라면 ‘무모한 도박’이나 ‘규제 필요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투자자들이 많다.

그러나 헤지펀드의 본질은 초과수익이나 고위험과는 거리가 먼 상품이다. 말 그대로 ‘위험을 회피’(hedge)하며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상품이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비해 원금을 지켜내면서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헤지펀드의 목표다.

헤지펀드는 1949년 처음 등장했다. 사회학자이며 경제 저널리스트였던 알프레드 존스(Alfred W. Jones)는 레버리지(Leverage·차입투자)로 많은 주식을 사면서 위험 회피 차원에서 숏(매도)전략을 함께 취했다. 이후 1952년 존스는 주식 시장의 등락의 영향보다는 어떤 투자 전략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헤지펀드’를 설정했다. 당시 존스는 소수 투자자의 자금을 운용하며 수익률의 20%에 달하는 수수료를 부과했지만, 수수료를 포함하고도 다른 일반 뮤추얼 펀드보다 수익률이 높았다.

1969년과 1973년 두 차례에 증시 폭락이 나타나자 위험을 관리하지 못했던 헤지펀드는 투자자에게 외면받았다. 그러나 1990년대 주식 시장이 다시 강세를 회복하고 세계 금융 자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리서치(HFR)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1만개의 헤지펀드 회사가 설립돼 있으며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만 2조 달러에 이르고 있다. 헤지펀드 운용자산의 68%는 미국, 23%는 유럽으로 양 지역이 9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융 당국이 한국형(形) 헤지펀드 육성에 적극적인 의지를 밝히며 대안 투자처로써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글로벌 투자은행(IB)과 헤지펀드를 육성하기 위해 제도 마련에 착수했고, 각 증권사는 해외 헤지펀드에 간접 투자하는 펀드를 출시하고 있다.

◆ 다양한 전략의 헤지펀드

헤지펀드의 특징은 상상 가능한 모든 전략을 활용해 절대 수익을 얻는 것이다. 일반 뮤추얼 펀드는 다양한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여러 가지 규제를 적용받으며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한다. 반면 헤지펀드는 주식 시장에서 공매도와 차익거래, 롱-숏(매수-매도) 전략을 활용해 수익을 올린다.

헤지펀드가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레버리지 투자 전략이다. 헤지펀드는 투자자에게 모은 자금뿐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투자한다. 예를들어 투자자에게 100억원의 자금을 모아 10억원 수익을 올렸다면 이 헤지펀드의 수익률은 10%이다. 하지만 투자자에게 10억원 모으고 금융 기관으로부터 90억원의 자금을 빌려 투자한 뒤 10억원 수익을 올렸다면 투자 수익률은 100%가 되는 셈이다.

헤지펀드는 다양한 투자 상품을 활용하기도 한다. 주식시장 옵션과 선물, 전환사채, 부동산 부실채권에 투자하고, 때에 따라서는 가치가 오르는 각국 통화나 원유, 금ㆍ은 귀금속 가격 상승, 혹은 하락에 베팅(betting)해 수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 헤지펀드, 일반 사모펀드와 다른 점은

헤지펀드는 소수의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사모펀드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은 사모펀드를 49인 이하의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반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자 전략에서 드러난다. 헤지펀드는 레버리지와 공매도 등 다양한 투자 전략을 활용해 수익을 얻는다. 반면 사모펀드는 개별 기업의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에 참여해 수익을 얻는다. 사모펀드는 경영에 참여해 기업 가치를 높인 뒤 지분을 되팔아 이익을 얻는 것이 보통이다. 2003년 외환은행(004940) (9,230원 ▲ 80 0.87%)지분을 인수한 미국계 론스타가 사모펀드의 가장 잘 알려진 예다.

헤지펀드는 공개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는 공모펀드와는 보수 체계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헤지펀드는 1~2%의 운용보수와 10~20%의 성과보수로 운용한다. 일반 공모펀드와 달리 높은 성과 보수를 요구하는 만큼 헤지펀드는 투자 손실을 감수할 수 있는 투자자에게 적합한 투자 상품이다.

그래서 헤지펀드가 발전한 자본시장은 규제 환경이 다르다. 일반 뮤추얼 펀드는 활용할 수 있는 투자 전략이 제한돼 있고 투자자를 모으는 과정도 까다롭지만, 헤지펀드의 보수 체계와 운용은 당국의 규제로부터 훨씬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