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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여행] 절정은 위대하다…안동 하회마을

[훌쩍 떠나는 여행] 절정은 위대하다…안동 하회마을
기사입력 2011.04.26 10:38:57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고택, 종택 가득한 마을에 웬 절정? 그렇다.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한 마을에 절정이란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하회마을에도 계절은 변화무쌍하게 찾아오고 사라진다.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는 꽃이 절정을 이룬다. 꽃잎이 스러지고 나면 깊은 초록의 세상에 뒤덮인다. 4월17일, 벚꽃비가 내리던 날 하회마을 둑방길을 걸었다.

절정, 그 슬픔의 오르가즘

주차장에서 하회장터를 지나 매표소로 간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조금 더 걸어가면 버스 종점이 있다. 이곳에서 500원을 내고 셔틀을 타면 5분 안에 하회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황홀함은 이곳부터 시작되었다. 둑방길로 올라가자 멀리 부용대가 보이는가 싶더니, 둑방길을 화사하게 비추고 있는 벚꽃 물결이 가슴에 풍덩 들어와 앉는다. 멋지군… 담담한 마음으로 그 벚나무 가로수길로 접어드는데, 마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들이 흔들리며 이내 꽃 비가 나려 주신다.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 본다. 바람에 날리는 투명한 연보라 잔꽃들이 강물을 향해 달려가다 이내 둑방길에, 둔덕에 떨어진다. 얼마나 많은 벌들이 이곳에 찾아왔는지 무성한 가지 숲 속에서는 그들의 힘찬 날갯짓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웅장하게 들리고 있다. 이곳의 하늘은 완벽하게 청명했고 절정을 이룬 오후 두 시의 햇살에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이런 걸 보고 미친 존재감이라고 해야 할까?

바람에 날리는 꽃비의 풍경은 그러나 불과 일주일 뒤의 하회마을 둑방길을 마음으로 그리게 한다. 연보라색 꽃잎은 대부분 떨어져버리고 파릇파릇한 이파리만 남아 신록을 준비할 것이다. 거기에 비라도 한번 내리고 나면 2011년의 꽃길도 그걸로 끝이다. 낙화 장면에 ‘비’자를 갖다 붙인 것은 절정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뒤안길로 이어지는 이별의 슬픔조차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풍산 류씨 마을을 부러운 마음으로 걷다

둑방길을 지나 하회마을로 들어서자 이곳이 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지 한 눈에 확인된다. 또한 600년 동안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아옮으로써 집을 살리고 길을 살리고 마을의 생명을 유지케 한 풍산 류씨에게 존경의 마음도 일어났다.

조선 시대의 유학자인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내 류성룡 형제가 이 마을에서 태어났고 배우 류시원의 문패도 이 마을 골목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이 하회(河回)마을이 된 것은 이 지역에서 S 자로 흐르는 낙동강 물길 때문이다.

순우리말로는 ‘물도리동’이라 하기도 한다. 하회마을이 풍산 류씨 집성촌이 된 것은 그들 조상의 부지런함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산 류씨는 원래 풍산 상리에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가문의 번성을 위해 보다 좋은 곳에 정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류종혜 공이 화산에 올라가 터를 찾던 중 이곳을 발견, 3년 동안 인근 마을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活人-사람의 목숨을 구하여 살림) 산 끝에 이곳에 부락을 이루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로 가문의 광영이 더욱 빛났다고 하니 후손된 사람들로서는 조상님께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그들이 남기고 보존한 마을이 통째로 세계문화유산이 되고 국내외 수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마을 출입을 허락했으니 600년 전 ‘活人’의 약속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회마을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관광지이지만 여전히 150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는 자연마을이다. 그들도 전기밥솥에 밥 해먹고, 식재료와 음료수를 냉장고에 넣었다 먹고 마시며, 일 하러 나갈 때는 승용차를 이용하며 주말에 관광객이 몰려들면 그 소음과 노출되어버리는 사생활 때문에 당황하기도 한다. 절도 있고 교회도 있다. 자연마을 하회마을을 여행할 때 심신을 조신 모드로 바꿔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마을답게 이곳에는 문화 유산도 많이 보전되고 있다. 하회탈과 병산탈,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적은 원고본인 징비록 등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류성룡 종가의 문적과 유물, 양진당, 충효당 등 고가(古家) 등은 보물로, 병산서원은 사적이다. 화경당(북촌), 원지정사, 빈연정사, 작천고택, 옥연정사, 겸암정사, 염행당(남촌), 양오당(주일재), 하동고택 등 정사나 가옥과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은 중요민속자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하회마을이 통째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것은 1984년의 일이었다.

개방된 공간에서는 전시, 공연,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에서는 류성룡의 유물인 가죽신, 갑옷, 갓끈, 관대, 관자, 유서통, 인장, 투구, 제목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수관에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 공연이 수, 토, 일요일 오후 2시에 열리고(7월19일부터 8월19일까지는 화, 수, 금, 토, 일요일 오후 2시) 빈영정사에서는 다도체험을, 번남고택에서는 도자기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가훈 쓰기와 한지공예도 체험할 수 있다.

신분이 없는 안동하회탈

하회탈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 유산이다. 가면미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술의 한 장르인데, 안동하회탈은 세계가면미술 분야 뛰어난 걸작으로 이미 인정받았다. 하회탈은 양반, 선비, 중, 백정, 초랭이, 할미, 이매, 부네, 각시, 총각, 떡다리, 별채탈 등 12개와 동물형상의 주지2개(암주지 숫주지)가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총각’, ‘떡다리’, ‘별채’ 탈 등은 분실된 채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하회탈은 사실적 조형과 해학적 조형을 합하여 시대적 신분적 특징을 표현하고 있으며, 신분에 걸맞는 관상까지 표현하고 있다. 얼굴은 좌우를 비대칭적으로 만들어 고정된 표정을 피했고, 성격의 특성에 알맞은 표정을 짓도록 만들어졌다.

양반, 선비, 중, 백정탈은 턱을 분리시켜 인체의 턱 구조와 같은 기능을 갖게 하여, 말을 할 때 실제의 모습처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다른 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탈을 쓴 광대가 웃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면 탈은 입이 크게 벌어지며 웃는 모습이 되고, 화를 낼 때에도 광대가 고개를 숙이면 탈은 윗입술과 아래턱 입술이 붙어 입을 꾹 다문 화가 난 표정을 짖기도 한다. ‘탈 쓴 광대가 웃으면 탈도 따라 웃고, 광대가 화를 내면 탈도 따라 화를 낸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하회탈은 모두가 오리나무로 만들어 졌으며 제작시기는 대략 고려 중엽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회탈은 하회마을에 보관되어 오다가 1964년 국보로 지정되어 현재는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회마을 입구에 있는 하회탈박물관에 가면 하회탈은 물론 우리나라의 탈, 세계의 가면을 소상히 볼 수 있다. www.mask.kr

하회마을 고택에서의 하룻밤

하회마을의 고택에서 하룻밤 자보는 것은 어떨까? 마을 안에는 석고고택, 락고재 등 36곳의 민박 공간이 있다. 단순하게 잠만 잘 수도 있고, 직장, 동호회 단위로 갔을 경우 널찍한 별당에서 세미나를 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도 있다.

관광객이 모두 떠난 하회마을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을 이룬다. 물도리동에서 올라오는 물냄새, 새소리, 고요한 밤하늘을 가슴에 품고 잠드는 그 기분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다. 숙박비는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기본 요금이 5만원에서 10만원 정도다. 고택 한 채를 통째(4인 기준)로 빌릴 경우 최대 60만원까지 소요되기도 한다. 성수기와 비수기 가격에도 차이가 있으니 협의 후 예약하는 게 알뜰한 방법이다.
www.hahoe.or.kr

안동하회마을 찾아가는 길

승용차
주소 :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257 / (새주소)경북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186-8
중앙고속도로 서안동톨게이트에서 약 15km

기차
청량리에서 무궁화호 하루 8회 운행, 4시간20분 소요

안동 가는 버스
동서울터미널에서 40회 운행, 2시간30분 소요
강남터미널에서 12회 운행, 2시간30분 소요

안동 시내에서 하회마을 가는 버스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46번 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