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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증시 현황

중남미·동아시아 신흥국들… 막대한 외자유입, 거품 걱정

중남미·동아시아 신흥국들… 막대한 외자유입, 거품 걱정

안드레 벨라스코ㆍ前 칠레 재무장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택시를 타보라. 차들로 엉켜 있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신흥국 대도시의 흥겨운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택시비 낼 때가 되면 보스턴, 룩셈부르크, 취리히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지도 모른다. 선진국에서 흘러든 단기 투기자금 때문에 브라질 헤알화(貨) 가치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주개발은행(IDB)은 작년 한 해 동안 라틴아메리카 상위 7개 국가에 유입된 해외자금이 2660억달러였다고 발표했다. 2000년부터 2005년 사이 그 규모는 연평균 500억달러도 안 됐다. 해외자금 가운데 핫머니(hot money·단기자금)의 비율은 2006년 37%에서 작년 69%까지 솟구쳤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미국중국의 통화·무역 불균형 갈등 속에서 중남미와 동아시아, 동유럽과 아프리카의 신흥국들은 '죄 없는 구경꾼들'(innocent by standers)이다. 이 구경꾼이 미·중(美·中)의 싸움판에서 가장 크게 얻어맞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 경제는 엄청난 불균형을 겪었다. 중국, 일본, 독일, 스위스, 산유국 등에서는 무역흑자가 잔뜩 쌓였다. 반면 미국, 영국, 스페인 등에서는 그만큼 무역적자가 생겼다. 이 불균형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미국, 영국 등에서 민간 수요가 감소하면서 일시적으로 줄었다가 작년부터 다시 확대되고 있다. 국제 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 세계 경제의 불균형이 2016년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G20(주요 20개국) 공동선언문이 세계경제에서 이 불균형을 '조정'하고 '다시 균형을 잡겠다'고 거듭 약속했었지만 성과가 없었던 셈이다. 무역흑자국들은 쌓인 대규모 외환보유고를 어딘가에 투자해야 한다. 위기 이전에는 그 돈의 상당 부분은 미국, 스페인, 아일랜드 등의 부동산에 투자됐었다. 그 시장은 죽었다.

이제 돈이 어디로 가야 하나? 유럽은 엄청난 규모의 은행 위기와 국가 부도 위기 때문에 매력적인 투자처가 못된다. 미국은 국채 금리가 너무 낮아져 투자처로는 별로다. 반면 많은 신흥국은 금리가 높고 성장 전망도 좋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에게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투자처로 비치고 있다.

막대한 외자 유입은 신흥국이 거시경제정책을 관리하기 어렵게 만든다. 신흥국 가운데 원자재 수출국의 경우 만약 원자재 가격이 계속 높은 수준에 머무른다면 통화가치가 어느 정도 강세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상황 변화에 맞춰 정책을 적정하게 조정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과 유럽에서는 해외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부동산 거품, 주식 거품이 일어났다. 오늘날 중남미의 정책 담당자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나라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봐 걱정하면서 그런 일을 방지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찾고 있다.

이미 브라질, 콜롬비아, 페루, 칠레처럼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신흥국 중앙은행은 달러를 사들여 환율에 개입하고 있다. 개입 규모도 컸다. 만약 달러를 사들이는 것만으로 자국통화 절상의 파고(波高)를 넘을 수 없다면 신흥국 규제당국은 해외자본을 밀어낼 수 있는 장벽들을 세울 것이다. 세계 경제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는 더 좋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손쉽게 얻을 수 없을 듯하다. 이제 우리가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은 다음번 G20 공동선언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