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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자수첩] 금융회사 뭘 믿고 내 돈을 맡기나?

최근 금융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융회사들의 행태가 가관이다. 돈을 믿고 맡길만한 곳인지에 대한 근원적 의문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금융신뢰의 위기'는 이미 위험선을 넘어섰다.

신뢰를 무너뜨린 첫 타자는 저축은행이다.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총 8곳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과다 집행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부실화됐고, 불법대출 등 대주주의 전횡이 속속 드러났다.

저축은행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는 대주주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전날인 지난 2월16일 밤, 평소의 3배가 넘는 대량 예금이 인출됐다. 영업정지 정보를 미리 알게 된 저축은행 임직원들이 친인척과 일부 VIP 고객을 대상으로 먼저 예금을 인출해준 것이다. 이들은 영업 마감시간이 지난 오후 4시 이후에도 예금을 인출해줬을 뿐 아니라 일부 임직원은 자신의 친인척 예금을 무단으로 빼가기도 했다. 

서민들은 이렇게 발 동동 굴렀는데… 지난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의 계열사인 부산2저축은행에 예금자 수천명이 몰려와 예금인출을 요구하며 북새통을 이뤘다. 바로 전날 이 저축은행의 임직원과 그들의 친인척은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예금을 인출해 갔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영업정지된 다른 저축은행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2월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부산, 부산2, 중앙부산, 전주, 대전, 전주, 보해 저축은행)에서도 영업정지 전날 마감 이후 총 1056억원의 거액 예금이 인출됐다. 창구를 지켜야 할 금융회사 직원들이 고객 돈은 나몰라라 하고, 소수 VIP의 예금만 먼저 챙겨줬다. VIP 아니면 맘 놓고 예금도 못할 세상이 됐다.

농협도 금융권 신뢰 추락에 한 몫 하고 있다. 지난 12일 일어난 농협 전산장애는 사건 발생 15일째인 현재(26일)까지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 전산장애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농협의 대처는 미흡하기만 했다. 완전 복구하겠다는 약속을 수차례 번복했고, 계속 부인하던 원장 소실 가능성도 최근에서야 시인했다. 고객의 전 달 카드이용대금에 대해 연체료를 부과하지 않기로 약속해놓고 2만3000명에게 연체료를 부과한 사실이 알려져 뒤늦게 환불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시중은행 등 타 금융기관도 ‘신뢰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21일 KB국민은행은 장기주택마련저축의 이율을 잘못 적용해 이자를 미지급했다고 밝혔다. 이자 지급 착오가 발생한 대상계좌는 3만7513좌, 미지급 이자규모만도 26억원에 이른다. 앞으로 손해보지 않으려면 매달 이자가 제대로 들어왔는지 일일이 계산해봐야 할 일이다.

저축은행 대주주 및 임직원의 모럴해저드, 금융전산망 마비, 시중은행의 이자계산 오기, 고객정보 유출 등 최근 잇따라 터진 금융사고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간단치 않은 사안이다. 금융시장의 신뢰를 송두리째 허물어버릴 수 있는 이같은 중대한 실책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는 것은, 국내 금융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하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금융회사는 고객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곳이다. 믿을만한 곳이 아니면 그 누구도 자신의 돈을 맡기지 않는다. 그래서 금융회사는 고객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시스템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너무도 간단한 명제를, 지금 이 순간 금융권 종사자 모두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