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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최보식이 만난 사람] '카이스트 사태 그 뒤' 서남표 총장

“내겐 늘 반대세력 있어… 소통 부족? 그게 뭔지 이해 안 될 때도”
“공무원은 규정대로만 큰 변화를 담당 못해 나를 좋아하지 않아”
“서울대 교수들의 비판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자기 일이나 잘 하지”

캠퍼스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건물 바깥으로 학생들 모습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게시판에는 대자보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서남표(75) 총장도 나를 그렇게 맞고 싶었을 것이다. '카이스트 사태'가 있고서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이번 사태로 배운 게 있다면 우리 학생들이 성숙하다는 점이다. 처음엔 다 때려 부술 것 같았다. 그런 학생들이 투표에서 '개혁은 계속 돼야 한다'고 했다. 정말 놀랐다. 편하게 살자고 할 줄 알았지."

―만약 학생투표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면?

"…내가 남아있기가 그렇겠지. 나는 카이스트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서 와있다. 솔직히 그 일 때문에 있는 것이다. 안 그러면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지. 미국에는 내가 살 집이 있고 아들과 손자들도 있다."

―그 전만 해도 총장은 우리 사회의 '개혁 스타'였다. 이제는 '얼치기 개혁'의 표본으로 욕을 먹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안티'가 많다.

"인터넷에 들어가기가 불편하다. 별별 욕을 많이 하는데 어떤 점은 이해가 안 가고…."

―이번 사태가 터지자 일부 서울대 교수들이 '서남표 총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인터뷰 동안 그는 유일하게 감정을 드러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자기 일이나 잘하면 될 텐데. 카이스트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서 하는 말인가. 우리 학생과 학부모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지도 않나. 내가 여기 온 뒤로 서울대에서 계속 그렇게 해왔다. 우리가 도로 밑에서 전기를 받아 움직이는 '온라인 전기차' 발명에 들어갔을 때도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제2의 황우석'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서울대공원에서 전기버스 3대가 달리고 있다. 서울과 여수, 미국 보스턴 공항에서도 얘기가 오간다."

―솔직히 나도 총장이 책임지고 결국 사퇴할 것이라고 봤다.

"일단은 사태 수습을 해야 했고…, 주위에서 무책임하게 떠나면 안 된다는 이들이 많았다."

―총장 연임(連任)을 안 하고 작년에 떠났으면 '우상'으로 남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안 해봤나?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겠고…. 당초 미국서 카이스트 총장을 제안받았을 때 여러 차례 거절했다. 카이스트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고서야 수락했다. 나는 확신이 없었으면 오지도 않았다. 임기 4년을 마칠 무렵 연임 생각은 없었다."

―교육과학부의 반대로 총장 연임이 어려웠으나 본인의 의지로 뒤집은 걸로 나는 들었다.

"당초 그만두려고 하자 교과부에서 더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총장 임기가 끝나기 몇달 전부터 사방에서 '운동'을 하더라. 교과부에서도 딴말이 나왔다. 이미 그때는 내가 연임을 하겠다는 서명을 한 뒤였다. 그렇게 흔들려서 물러나면 이상해지지 않나. 무엇보다 내게 꼭 있으라고 한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해주는 말만 귀담아듣는가?

"이는 내 경험에서 나왔다. 내가 MIT(매사추세츠 공대)에서 학과장을 맡아 개혁할 때도 반발이 심했다. 동료들의 욕을 먹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 그때도 몇몇 지인이 '당신이 지금 그만두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이 다음에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말렸다. 그래서 3년을 마치고 그만두려고 했던 게 9년을 했다. 현재 내 보스는 이사회다. 거기서 그만두라고 하면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이 문제로 총장이 사퇴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내 인생에서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내 욕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말 없는 다수는 지지해줬다."

서남표 총장은“한국 부모들은 대학생 자녀를‘어른’이 아닌‘아이’로 키운다”말했다. ☞ 동영상 chosun.com 신현종기자 shin69@chosun.com
―이번 사태 때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바로 이 자리에서 네 번째 학생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다. 세 번째 자살 학생이 있고서 9일 만이었다."

―이게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책임이고 뭐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솔직히 젊은 학생들이 그런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나?

"원인은 학생 개인과 학교, 우리 사회 모두에 있다. 카이스트 학생은 대부분 과학고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를 받는 등 심한 공부 압박에 눌러왔다. 다른 대학에는 입학하면 좀 느슨해진다. 하지만 카이스트는 더 힘들어진다. 스프링에 눌려 있던 그런 긴장 상태가 쌓이고 쌓였다가 이번에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성적에 따른 수업료 차등제' 같은 '서남표식 개혁'이 거기에 일조하지 않았나?

"당초 그걸 시작한 이유는 제때 졸업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졸업을 안 하는 학생들이 수백명이나 됐다. 거의 한 학년이 따로 더 있는 셈이었다. 이들에게도 국민 세금으로 기숙사, 음식, 학비가 공짜다. 똑똑한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졸업하고 사회에서 공헌해야지, 학점이 잘 나올 때까지 계속 같은 과목을 선택한다? 잘못하면 다시 한다? 이는 삶의 태도 문제다. 사회에 나가면 다시 한다는 게 과연 몇 번이나 주어지나. 이렇게 쉽게 말이다."

―하지만 총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젊은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해 큰 꿈을 안 갖는다. 안정지향적으로 살면 안 된다"고 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성적'에 매이게 한 셈이다. 이율배반 아닌가?

"자기가 노력하고 책임지고 실패하는 경우는 괜찮다는 뜻이다. 카이스트에는 다들 1등 하는 아이들이 온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성적 서열이 생긴다. 이것도 배워야 한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사회로 나가면 그런 상황을 늘 겪게 되지 않는가. 한번 뒤처진다고 해서 세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게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다른 차원의 비판도 있다. 과연 성적에 매이게 해서 창의성 있는 학생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어느 정도 지식을 쌓아야 한다. 우리는 학문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 이후 '차등 수업료'에 관해 조사해봤다. 학생들이 모두 반대했을 것으로 생각하나? 절반으로 갈렸다. 하지만 워낙 이 문제로 시끄러웠으니 일단 폐지할 계획이다."

―총장이 추진해온 '영어 강의 전면 도입' '교수정년보장 심사' 등도 원점으로 돌릴 계획인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이번 사태가 났다고 해서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과학대학을 만든다는 목적이 바뀔 수 없다. 학생들 스스로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한다. 교수 대다수도, 이사회도 그렇다. 나는 앞으로 강의 방식도 개혁할 것이다. 우리 교수가 강의실에서 꼭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맞지 않다. 가령 물리학이라면, 세계에서 물리학을 가장 잘 가르치는 교수의 강의를 녹화해서 보면 된다. 우리 교수가 잘하는 강의는 다른 대학에 보내고."

―총장의 개혁 방향에 공감하는 이들조차 추진 과정에서의 독선과 소통부족을 지적한다.

"내 경우 항상 반대가 있었다. 반대가 없다면 그건 개혁이 아니다. 다만 반대세력이 얼마나 있으면 좋은가. 소통을 잘하면 반대세력이 줄어들 게 아닌가. 아마 그럴지 모른다. 그런데 소통을 어떻게 정의(定義) 하느냐가 문제다. 사실은 소통이 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게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의 특성일지 모른다.

"소통은 양쪽의 수준과 생각이 대략 맞아야 이뤄진다. 내가 메시지를 보내도 저쪽에서 안 받을 수 있고, 저쪽에서 보내도 내가 안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오랫동안 얘기해도 생각이 다르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가령 몇년 전부터 우리 교수들은 학내 의사결정기구인 '교수평의회'를 만들자고 했다. 나는 쭉 반대해왔다. 숱하게 설득했다. 회의만 하고 있으면 언제 일을 하고 언제 세계 대학과 경쟁할 수 있나. 카이스트의 장점은 빠른 결정이다. 목에 쇳덩이를 달고 있으면 뛰지 못한다."

―교수 정년보장(테누어) 심사에서 38명 중 15명이 탈락한 적이 있다. 교수들로서는 스트레스와 자존심의 상처를 받고 있다. 어떤 교수는 '리더는 누워있는 돌도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며 총장을 비판했다. 자존심이 상한 교수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테뉴어 심사위원회에서는 더 경쟁을 시키자고 한다. 이 제도는 내가 남아있든 떠나든 정착됐다. 큰일을 하려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총장께서는 경쟁을 좋아하는데, 다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빠져 있는 것 같다.

"경쟁이 다 좋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다. 양면이 있다. 경쟁이 없었으면 삼성이 생겨나지 않았고, 한국도 필리핀처럼 됐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 과정에서는 탈락자들이 생겨난다. 어린애를 안 낳거나, 자살률이 높은 것도 경쟁사회에서 온다. 경쟁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여야 한다. 그럼에도 카이스트는 나라 장래를 위해 경쟁을 안 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는 지식기반 기술로 살아가야 한다. 더 이상 남의 기술을 베끼거나 값싼 가격으로 팔아먹을 수 없다. 이게 카이스트에 주어진 운명이다."

―교과부에서도 총장의 독선과 고집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나를 안 좋아한다고 들었다. 공무원은 큰 변화를 담당하지 못한다. 원래 있는 규정대로 해야 하니까. 교과부와 잘 지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교과부 규정으로는 신임교수 임용이 15명인데, 나는 150명을 더 뽑았다. 왜 미운 짓을 하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가 망한다. 또 교과부에 일일이 보고를 잘 하지 않으니까, 화가 날 것이다."

―주위의 인심을 잃고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개혁은 할 만한 것인가? 이는 개혁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개혁은 앞날을 위하고 후배 세대를 위해 하는 것이다. 과거에 배운 이론으로 밥 먹고 사는 현재의 교수들은 변화를 좋아할 리 없다. 하지만 현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시간이 가면 뒤로 계속 밀려난다는 뜻도 된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 갔다. 접시닦이 등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기도 했다. MIT공대를 나와 카네기멜런대학에서 기계공학박사를 받았다. MIT 기계공학과장과 미국국립과학재단 공학부문 부총재를 지냈다. 카이스트 총장으로 온 것은 2006년이다.

―혼자 힘으로 모든 걸 극복하고 성공한 총장의 입장에서 요즘 학생들이 나약해 보일 수도 있겠다.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고 부모의 문제가 더 크다. 미국에서는 자녀가 18살이 되면 내보낸다. 경제적 지원만 좀 해줄 뿐이다. 내가 MIT에서 학과장을 할 때 '친구 아들이 대학원에 들어오고 싶어하니 한번 만나주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 사무실에 어머니를 앞세우고 그 학생이 우물쭈물 따라왔다. 내가 말했다. '누가 지원 하나. 어머니가 입학하시려는가. 석사를 하러 온 사람으로서 준비가 안 됐다. 내년에 아들 혼자서 다시 오라.' 한국 부모들은 대학생 자녀를 '어른'이 아닌 아이로 키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게 해야 한다. 넘어지고 코피도 나는 과정을 거쳐야지, 손에 흙이 묻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한다."

그는 국내 대학총장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