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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Weekly BIZ] [경영 칼럼] 눈앞 성과만 급급해선 창조가 없다

포드가 고안한 단기성과주의, 한두푼에 일희일비할 뿐
카이스트의 개혁 진통도 결국 단기 성과만 좇은 것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IMF 위기 이래 기업은 물론, 비영리 공공기관까지 우리나라 대부분 조직에서 성과주의가 급속히 확산됐다. 그 결과 소니·모토롤라·도요타 같은 일류기업들마저 위기를 겪고 있는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오고 있다. 성과주의가 왜곡돼 근시안적 단기 성과 지상주의를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두 성과주의

더 높은 성과를 지향하는 성과주의는 경영의 핵심 본질이다. 각 기업이 자율적으로 성과 향상을 계속 시도하고, 그 중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한 기업이 시장에서 더 큰 보상을 받음으로써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다. 이 성과주의 대원칙은 자유시장경제를 믿는 사람이라면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구체적 실천방안에 이르면 성과는 결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특히 성과 향상을 위한 제도가 효과를 볼지 여부는 극도로 모호하다. 성과는 수익성만 따져봐도 자산수익성, 투자수익성, 매출수익성, 주가수익성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이들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성과 유형 간 불일치가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단기 성과와 장기 성과 간 충돌이다. 단기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불확실한 미래지향적 투자를 없애고 현재 강점을 가진 사업이나 역량을 선택,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장기 성과의 기반을 상실해 결국 위기를 맞게 된다. 반대로 장기 성과를 높이는 과감한 미래지향적 창조 혁신은 불확실성과 실패 위험이 커 단기 성과에 부담을 준다. 따라서 이상적 경영은 장단기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기 성과는 효율성과 선택 집중, 장기 성과는 창조와 혁신이라는 정반대 논리를 가지고 있어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업은 드물다.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가 경쟁의 룰이던 20세기 대량생산 시대는 대부분 단기 성과 극대화에 치중했다. 당시에는 환경 변화가 예측 가능하고 느렸으므로 성과를 창출하기 충분했던 것이다. 모델 T만 20여년간 1500만대 이상 생산했던 포드가 예이다. 그러나 환경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늘 급변하는 21세기 초경쟁 환경에서 단기 성과주의는 치명적 위기의 원인이 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강점과 경쟁 우위를 남보다 먼저 만들어내야 하는 상시 창조적 혁신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GM 등 20세기를 대표하던 기업들이 최근 갑자기 무너지고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신세대 기업들이 단숨에 정상에 오른 이유다.


포드의 망령과 시대착오적 20세기형 단기 성과주의

그런데 우리가 최근 시도해온 성과주의 개혁들이 대부분 20세기형 단기 성과주의에 치중돼있다. 산업이나 직종을 가리지 않고 확산된 단기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대표적 예다. 매년 실제 창출한 성과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결정하는 한국형 연봉제는 주어진 현재 과업만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양적 성과에 집중돼 있다. 불확실성과 실패 위험이 크지만 미래 경쟁력에 꼭 필요한 창조적 혁신을 이끌지 못한다. 우리 조직들의 현 상황이다.

단기 성과주의 임금제도는 포드가 20세기 초 고안했다. 당시의 단순 반복작업에는 주어진 작업 분량 달성에 성공하면 보상하고 실패하면 처벌하는 성과급제도가 효과적이었다. 또 이를 위해 물샐 틈 없는 치밀한 평가와 감시, 상벌제도가 시행됐다. 그러나 한두 푼에 일희일비하며, 실패하지 않는 데 급급한 20세기형 단기 성과주의로는 창조적 혁신이 절대 불가능하다. 반대로 21세기형 기업들은 실패를 오히려 권장하는데, 웰치는 GE의 실패처벌금지를 공표했고, 구글은 아예 실패의 장인 구글랩스를 만들었으며, 3M에서는 심지어 회사에서 실패축하파티도 열어준다. 실패회피에 급급한 인간형을 양산해온 한국형 단기 성과주의가 애플·구글·페이스북을 못 따라잡는 이유다.

최근 서남표식 개혁 논란에서 알 수 있듯 대학 등 비영리 공공조직도 단기 성과주의에 몰두해왔다. 창조 혁신 시대에 대학경쟁력은 당연히 중요하나 단기 성과주의 개혁은 오히려 경쟁력을 파괴한다. 지난 10여년간 논문 수와 연봉, 처벌을 철저하게 연동시켜온 결과 우리 선두 대학 교수들의 논문 수는 이미 세계 최고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글들만 양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양적 업적 평가로는 일생에 걸쳐 극소수의 걸작만 집필했던 아인슈타인이나 케인스도 즉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 대학을 지향하자는 서남표 총장의 대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 않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한 영재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이라는 살벌한 제도를 들이대 실패하면 '징벌 대상자'로 낙인 찍는 시대착오적 단기 성과주의제도는 문제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MIT에서 교수를 논문 점수로 통제하거나 학생의 학점을 계산해 징벌대상자로 규정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반대로 학생의 성과가 향상되고 있는지 방향과 과정을 중시하고, 특출한 소수가 거둔 성과에 숨마(Summa Cum) 등의 작위를 부여해 우리로서는 꿈도 못 꿀 엄청난 명예를 준다.


창조 혁신 성과주의로 무장한 21세기형 우파가 필요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서남표식 개혁에 찬성하면 우파, 반대하면 좌파라는 식의 고질적 이념 논쟁의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적절한 논점은 포드로 대표되는 20세기형 단기 성과주의와 잡스로 상징되는 21세기형 창조 혁신 성과주의 간 우파 내부의 논쟁이다. 대다수 구성원들을 돈 한푼에 울고 웃고 실패할까 노심초사하는 소위 '쪼잔한 찌질이'로 만든 조직에서 21세기형 창조적 혁신은 기대할 수 없다. 21세기형 성과주의는 실패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 창출에 성공한 소수의 영웅들을 존경하고, 보상하며, 축하하는 것이 핵심이다.

20세기형 단기 성과주의는 한국형 성과주의가 최근 해왔듯 독하게 자르고, 줄이고, 옥조이면 된다. 그러나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21세기형 성과주의는 지식, 상상력, 열정, 소명의식, 도전정신 등이 동시에 필요한 지고지난한 과업이며, 무수한 실패가 동반된다. 따라서 일시적 실패를 처벌해 재기 못하게 만드는 시대착오적 단기 성과주의가 아니라 오뚝이처럼 계속 다시 도전해 기어이 창조적 혁신을 성공해내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은 실패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과감하게 미래에 도전하는 창조 혁신의 영웅들이 필요한 21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