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청년 창업’ 붐
세계 경영계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도 시작은 초라했다. 그가 애플을 설립한 것은 대학 시절, 아버지의 차고에서였다. 경영자로 활동하면서도 많은 풍파에 시달렸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에다 사업에서도 여러 차례 쓴잔을 마셔야 했다. ‘항상 갈망하면서도 언제나 우직하게 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그의 명언이 감동을 주는 것도 험난한 역정들을 헤쳐왔기 때문이다.
<이코노미플러스>가 찾아간 대학생 CEO들은 창업 2~4년차들이다. 긴 경력은 아니지만 잡스처럼 성공을 갈망하면서 우직하게 어려움을 헤쳐온 신예 경영인들이다. 자질도 뛰어나다. 어지간한 시행착오쯤엔 기죽지 않는 과감한 추진력과 고객·협력업체를 끈질기게 설득하는 집요함은 기본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영리함과 조언을 구하는 후배 창업자들을 챙기는 넉넉한 품성도 갖췄다. 그들의 좌충우돌 창업기를 들어보자.
- ▲ 사진 : 유진행
송성근 쏠라사이언스 사장
개발·영업·시공 등 ‘원맨쇼’… 태양전지 사업 대박
송성근(27) 쏠라사이언스 사장이 창업한 것은 2008년이다. 지인들에게 하소연하다시피 빌린 돈 1000만원으로 재학 중인 경원대의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하면서다.
“고교시절 가세가 기울면서 컨테이너에서 생활할 만큼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과 생활비도 제 손으로 벌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창업지원기관도 드물 때라 악착같이 사업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주력제품은 태양전지가 부착된 가로등이었다. 전지판이 태양을 따라 움직이면서 발전효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터라 창업 3주 만에 6000만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포스코건설을 비롯한 대형건설사들과 공공기관들을 거래처로 두면서 전국 곳곳의 관공서와 공원, 아파트 단지, 상업단지에 납품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업을 구상했습니다. 차세대 에너지원인 태양전지를 응용한 제품들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죠.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돈으로 태양전지 부속들을 구해 제품도 미리 개발해뒀죠. 다른 창업자들보다 시행착오 기간이 적었던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사업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1인 기업으로 출발한 탓에 사업 초반엔 영업과 판매, 운송과 시공, 유지보수를 직접 담당했다. 사업 첫해엔 자동차로 전국 곳곳을 누볐다.
“혼자서 산업전시회의 부스를 꾸미느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하루 3번을 왕복한 적도 있습니다. 미수금을 받으려고 거래처인 건설사들을 찾아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직원 20명에 자체 기술연구소를 두고 있을 정도로 사업이 안정됐다. 사업 분야도 넓혔다. 태양전지의 충전전력이 바닥나면 일반전기로 전력원을 전환하는 하이브리드 컨트롤러와 LED 조명기기도 제품목록에 추가했다. 최근에는 미국,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몽골 등 해외에 제품을 수출하면서 매출처도 다변화했다.
송 사장에게 절실했던 것은 선배 경영인들의 조언이다. 전기공학이 전공이라 인사·법률·재무·마케팅 등 경영에 관한 필수지식들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부터 직접 멘토들을 찾아다녔다.
“신문에서 기업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의 회사로 찾아가서 만나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열성을 보이면 대부분 관심을 가져주더라고요. 제게 창업에 관한 자문을 구하는 모교 후배들에게도 열성을 강조합니다.”
- ▲ 사진 : 강민우
충남대 상권을 ‘홍대입구’처럼 만들려는 야심가
대전시 충남대 일대에서 박세상(27) 아이엠궁 대표를 모르면 ‘간첩’이다. 자타공인 ‘충남대 상권 지킴이’로 통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충남대 선박해양공학과 4학년 재학중이다. 다른 동기들은 취업준비가 지상과제지만 그는 다르다. 충남대 상권을 전국적으로 유명한 문화거리로 만드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의 회사는 상권 부흥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한다.
충남대 상권을 형성하는 유성구 궁동은 대전에서 유명한 번화가였으나 지금은 위축된 상태다. 인근에 다른 상권들이 발달한데다 주요 교통편인 버스 배차량이 줄어들면서 유동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충남대가 기숙사를 신축하면서 상권의 버팀목이던 자취생들마저 빠져나갔다. 날이 갈수록 이 지역 상인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1학년 때부터 줄곧 궁동에서 자취했습니다. 고향이나 마찬가지라 이웃 상인들의 처지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죠. 궁동의 400여 점포들이 모두 윈윈하는 사업으로 ‘궁동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아이엠궁의 궁동 살리기는 상권부흥 종합처방이다. 유동인구를 늘리면서도 이들의 체류시간을 연장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이 포함된다. 우선 충남대 기숙사와 궁동 사이에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과거 궁동에 살던 자취생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시도다. 쇼핑의 재미를 위해 궁동지역에서만 유통되는 쿠폰도 발행한다. 충남대 동아리와 교수들을 동원, 밴드·댄스 페스티벌, 길거리 강연도 수시로 개최한다.
지난 2월 궁동 상권 전용의 스마트폰 앱도 개발했다. 궁동을 방문하는 쇼핑객들에게 하루에 한 점포씩 소개하는 것으로 이 지역 상인들의 기대가 크다.
“서울의 대학가들은 홍대입구나 대학로처럼 소문난 문화거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방에는 특색 있는 거리를 찾기 어려워요. 벤치마킹을 위해 전국의 대학가들을 둘러보고 궁동을 살리려면 다양한 기획들을 동원해야 한다고 판단했죠.”
난제는 지역 상인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기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상인들이 박 대표에게 좀처럼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아들뻘인 대학생이 상권을 살리겠다고 나서니 믿음이 갈 리 없었다. 그러나 박 대표가 1년 6개월 동안 집요하게 업주들을 설득하자 마침내 그들도 마음을 열었다. 지금은 사무실 하나를 통째로 기부받을 정도로 상인들의 지지가 쏟아진다.
“매일 충남대 상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상인들과 쇼핑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했습니다. 이곳을 ‘대전의 홍대입구’로 번창시키고 싶어요. 성공을 거두면 대전과 충남의 다른 대학가들로 프로젝트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 ▲ 사진 : 유진행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캠퍼스 발명왕’
와이로드는 연세대 발명특기생 5인이 창업한 회사다. 발명대회 수상기록만으로 대학에 입학했을 만큼 발명에 특출한 인재들이다. 이 학교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에 재학중인 김진영(28) 와이로드 대표의 솜씨는 그중에서 백미다. 고등학교 시절 자동차의 ABS(브레이크 잠김 방지장치)를 접목시킨 자전거로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11만개의 출품작 중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와이로드는 생활용품에 IT기술을 접목시킨 제품들을 개발한다. 2년간 등록한 특허는 7개로 이 특허들을 제조업체에 판매하거나 기업과 공동으로 제품화하는 것이 목표다. 대표작인 유모차 브레이크 시스템은 국내 유명 유아용품 업체와 제품화에 들어갔다. 유모차 손잡이에 센서를 부착, 유모차에서 손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가동되면서 유모차가 멈추는 구조다.
발명에 익숙한 김 대표지만 제품을 개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소비자와 제조업체를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이라야 사업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모차 브레이크 시스템만 해도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를 토대로 개발됐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설문조사를 벌이다 쫓겨나곤 하죠. 사업제안을 하려고 제조업체를 방문했다가 문제점만 왕창 지적받은 적도 있고요.”
아직까지 와이로드의 특허목록에서 제품으로 출시된 사례는 없다. 창업 2년이 지났지만 특허개발만으론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개발자금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해마다 열리는 발명대회들이 나름 ‘캐시카우’ 역할을 한다.
“발명대회에서만 지난해 1200만원의 상금을 탔습니다. 신용보증기금, 중소기업청 등 정부기관이나 대학들이 주최하는 대회들이죠. 수상하면 마케팅에도 유리합니다. 수상자 명단이 보도될 때마다 제휴하자는 문의가 쏟아지거든요.”
김 대표는 다른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데도 열심이다. 주로 발명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다른 창업자들의 특허등록을 돕는 일이다. 까다로운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일이라 경험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발한 제품들을 구상하면서 사업화하려는 또래들이 많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 초기 암담했던 때를 생각하면 외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 ▲ 사진 : 강민우
최민준 자라다미술 대표
남아 특성 고려한 미술교육에 학부모들 ‘러브콜’
4년 전이다. 최민준(28) 자라다미술 대표는 아르바이트 삼아 유아들을 상대로 미술교습을 하면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남아들이 여아들보다 산만한데다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아들이 지시에 따라 고분고분 그림을 그리는 데 비해, 남아들은 엉뚱한 그림을 그리거나 학원 안을 멋대로 배회하기 일쑤였다.
최 대표는 아동심리에 관한 책들을 뒤적였다. 남아들이 여아들보다 1.5세가량 정서발달 속도가 느리며 성격도 자기중심적이라는 내용에 주목했다. 미세근육도 여아들보다 늦게 발달해서 그림 그리기처럼 섬세한 활동에 불리하다는 학설도 확인했다. 그는 남아들만을 위한 미술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유명한 화가들은 피카소처럼 대부분 남자들입니다. 남아들의 감각을 세심히 계발시키면 얼마든지 뛰어난 미술가로 길러낼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남아들의 정서와 발달과정을 배려한 미술교육이 전무합니다. 수업에 흥미를 잃은 남아들을 문제아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았죠.”
최 대표는 남아전용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기보다 찰흙·지점토를 이용한 조형미술 교육을 강화했다. 여아들보다 입체감이 뛰어난 남아들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다. 남아들이 여아들보다 자율성이 높다는 점도 감안했다. 스스로 자동차·기차 등 원하는 형상을 빚도록 유도했다. 수업 형태는 2~3명의 남아들만 참여하도록 했다. 남아들이 여아들보다 산만하기 때문에 수업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최 대표는 우선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남동생의 친구들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시험했다. 금세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면서 수강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난 2월에는 미술학원을 개설했다. 5명의 강사가 50명의 남아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수강 대기자가 100명에 달하는 상황이다. 올해 미술학원 한 곳을 더 설립할 계획이다.
최 대표는 한세대 시각디자인과에 재학중이다. 응용 분야가 많은 전공 특성상 학생들 사이에서 패션, 인테리어, 공공디자인 등으로 창업하는 사례가 흔했다. 반대로 폐업하는 경우도 많았다.
“창업지원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갖춰지는 분위기라 같은 시각디자인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경쟁자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확실한 틈새시장을 찾지 못하면 창업으로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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