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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험자산 투자 확대가 '원화 강세' 불렀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 1100원선 무너져…
달러당 1096.7원, 2년6개월 만에 최저… "치솟는 물가 잡으려고 정부가 용인" 분석도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리먼 사태 이전 수준인 1100원 선 이하로 돌아갔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7.5원 내린 1096.7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미국 리먼 사태 직전인 2008년 9월 10일에 달러당 1095.5원을 기록한 이후 2년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그래픽= 신용선 기자 ysshin@chosun.com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 기미를 보이며 해외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게 원화 강세를 이끌고 있다. 이날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들은 12일 연속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다.

외환 전문가들은 올해 말 환율이 달러당 1050원 안팎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율이 하락하면서 수입 물가는 낮아지는 효과가 있지만, 수출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환율 하락은 위험자산 투자심리의 개선 때문

외국인들이 최근 한국 증시와 채권에 투자를 늘리면서 환율이 하락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원자재·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당 70엔대로 떨어졌던 엔화 환율은 국제사회가 공조하면서 대지진 이전 수준인 82엔대로 복귀했다. 31일 미국의 원유 재고가 증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이 전일보다 배럴당 0.03달러 하락했다. 30일 브렌트유는 일주일 전과 비교해 0.6% 하락하면서 배럴당 115달러 수준에서 옆걸음질 치고 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많이 받는 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원자재 가격의 안정세로 투자 매력도가 커지고 있다"며 "2분기엔 아시아 경기선행지수가 반등하는 반면, 선진국의 선행지수는 고점이 예상돼 투자자금이 아시아로 흘러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긴축정책도 최근 완화되고 있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내수 위주로 소비를 촉진하고 앞으로 5년간 매년 900만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방향을 내놓았다. 중국의 소비·투자가 증가하면 한국이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가 급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환율 하락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낮아져 국내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환율이 1100원대 근처까지 떨어지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올린다는 관측이 나오곤 했는데, 최근엔 정부의 환율 방어 의지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시장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이 많이 참고하는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보고서도 "한국의 고환율을 주장하는 정책자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서 원화가 앞으로 강세로 갈 요인이 크다"고 밝혔다.

◆환율 하락은 물가에 긍정적 수출엔 부정적

많은 전문가는 원화 강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연구소와 증권사들은 올해 환율은 달러당 1050원 안팎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한다. 노무라증권은 오는 2분기(3~6월)에 환율이 달러당 1060원, 바클레이즈는 1075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연말 환율이 1050원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환율 하락 속도가 최근처럼 가파르다면 한국 수출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0.004% 오르며 거의 변동이 없던 환율은 최근 10일 동안 3.5% 떨어졌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환율이 10% 하락하면 수출은 0.54%포인트 감소하고, 성장률은 0.72%포인트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환율 하락은 물가 안정이라는 긍정적 효과와 수출 감소라는 부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며 "물가가 안정되더라도 환율 하락 속도가 최근처럼 빨라지면 수출업체들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