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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진서 ‘바둑 올림픽’ 잉씨배 우승… 14년 만에 왕좌 되찾았다

 

입력 2023.08.23.
 

신진서(23)가 유서깊은 잉씨배의 아홉번째 주인이 됐다. 개인 통산 메이저 정복 횟수는 5회로 늘어났고, 잉씨배 한국 석권 전통은 2009년 최철한 이후 14년만에 부활했다.

제9회 잉씨배 결승 2국 후 열린 시상식 모습. 오른쪽이 우승자 신진서, 왼쪽은 준우승자 셰커.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진 제9회 잉창치(應昌期)배 결승 3번기 2국도 신진서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 랭킹 21위 셰커(謝科·23)는 3시간을 다 쓰고 2점 벌점이 눈앞에 오자 돌을 거두었다. 226수 끝 백 불계승. 신진서의 2대0 완승이었다.

 

 

사상 최초의 2000년대 출생 기사 간 메이저 첫 결승전은 신진서의 강함을 확인시키는 의식(儀式)이었다. 셰커의 4귀 점령에 신진서는 중앙에 외벽을 쌓으며 두터움으로 맞섰다. 셰커는 우변 전투에 올인했지만 집 차이는 갈수록 벌어져만 갔다.

신진서는 이번 결승을 앞두고 부담감 때문에 전에 없던 슬럼프를 겪었다. 란커배 결승 1대2 역전패, 국수산맥 결승전 패배, 이달 초 몽백합배 16강 탈락 등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국가대표팀 동료들과의 특별 스파링을 통해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위기를 정면돌파 했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신진서의 국내외 대회 총 우승 횟수는 33회로 늘었고 국내외 7관왕으로 올라섰다. 44개월째 국내 톱랭커인 그의 올해 승률은 89.4%(76승 9패)로 상승, 다시 9할대 도전을 바라보는 중이다. 셰커와의 상대전적은 신진서의 2승 1패 우세로 역전됐다.

 

 

메이저 타이틀 세계 지도도 바뀌었다. 신진서는 잉씨배와 삼성화재배 등 복수(複數)의 기전을 꿰찬 현역 유일의 기사로 등장했다. 나머지를 변상일(춘란배), 구쯔하오(란커배), 딩하오(LG배), 미위팅(몽백합배) 등이 분할 통치하는 양상이다.

신진서가 다섯 번 메이저봉에 오른 과정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다섯 번의 결승전을 모두 2대0으로 완봉한 것이다. 제24회 LG배(2020년)서 박정환, 13회 춘란배(2021년) 때 탕웨이싱, 26회 LG배(2022년) 양딩신, 27회 삼성화재배(2022년) 때 최정이 희생양이 됐다.

 

 

신진서의 세계 메이저 제패 횟수는 몇 회까지 이어질까. 이 부문 1위는 17회 우승한 이창호이고 그 뒤를 이세돌(14회), 조훈현(9회), 구리(8회), 커제(8회), 유창혁(6회)이 뒤따르고 있다. 신진서는 박정환과 함께 공동 7위에 올랐다.

본인은 “커제를 따라잡는 것이 1차 목표”라고 몇 차례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최대 경쟁자이기도 했거니와, 그를 넘어서면 두 자릿수 우승도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있다.

 

 

아직 23세로 나이도 창창하다. 지난 봄 국내대회 시상식에서 그는 “내 나이 앞숫자가 바뀔 때쯤 전성기가 끝나 가겠지만 한계를 정해놓지는 않았다. 전성기가 지난 뒤에도 세계대회 우승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있다. 한 마디로 자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석권 전통의 잉씨배를 되찾아왔다는 점도 큰 수확으로 꼽힌다. 한국은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등 ‘4대천왕’이 1~4회 대회를 제패하면서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섰다. 6회 때의 최철한을 포함해 9회 중 6회나 잉씨배를 제패했다.

 

 

제4회 잉씨배 우승자인 이창호 9단은 “잉씨배는 모든 면에서 상징적인 대회”라고 우승 당시를 회상한 뒤 “신진서 9단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 한국 우승 전통을 되찾아와 기쁘다”며 후배를 격려했다.

 

 

신진서는 우승 상금으로 40만 달러를 받았다. 고환율 덕에 한화로 약 5억 3000만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코로나 등 탓에 결승전이 2년 이상 지연되면서 4000만원 가량 늘어났다. 이래저래 즐거운 신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