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사회연구원 우해봉 박사
1970년대 이래 최빈사망연령 분석
통계청은 공식 분석 내놓지 않아
남녀 수명격차 감소…4년으로
‘고졸이하’ ‘대졸이상’ 3년 격차
학력 낮을수록 사망 시점 불확실
몸은 개인과 사회를 기록한다. 몸에 자리한 주름과 습관, 크고 작은 상처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환은 몸 주인의 삶, 곧 생애의 흔적이다. 몸에는 동시에 공동체의 변천과 명암, 한 사회의 역사가 투영된다. 수명은 이런 몸의 메커니즘과 변화를 내장하고 있다. 예컨대, 수명의 증가는 한 사회의 역사적 성취와 진보를 증명한다. 하지만 소득과 교육 등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서로 다른 수명의 격차는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낸다.
기대수명이란 0살인 출생아의 기대여명이다. 즉 갓 태어난 아기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는지를 추정한 기대치이며, 특정 연도의 연령별, 성별 사망률이 그해에 태어난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적용된다고 가정한 통계치다. 평균수명은 통계학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용어이지만, 일반적으로 기대수명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2020년에 태어난 아기는 몇살까지 살 수 있을까?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2020년 기준)은 평균 83.5살이다. 남자는 80.5살, 여자는 86.5살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여성은 대략 남성보다 6년을 더 산다는 뜻이다. 50년 전인 1970년에는 어땠을까. 이 수치는 남자는 58.7살, 여자는 65.8살로 평균 62.3살이었다. 50년 새 수명이 21.2년이 늘었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0.4년이 증가한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지만, 무엇보다 소득 증가와 기술 인프라가 영아사망을 크게 줄인 덕분이다.기대수명의 상승은 우리 사회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 선진국에 진입했으며, 더불어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사회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에게 낯익은 이런 기대수명 지표와 담론은 우리 사회의 고령화 현상의 실체를 정확히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때로는 실제보다 과소추정할 위험도 다분하다.이유는 명료하다. 선진국에서는 수명과 직결되는 사망이 통상 노년기의 좁은 연령 구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데 기대수명 지표는 어디까지나 평균을 보여줄 뿐 집중적인 사망 구간, 즉 수명의 실제 ‘중심’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표는 바로 최빈사망연령(Mode of age at death)이다. 사망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을 뜻하는 이 지표는 한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실제 가장 많이 사망하는 ‘중심’ 지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고령화와 사망불평등의 현주소를 기존의 기대수명 지표보다 훨씬 더 체감 있게 표현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우해봉 연구위원이 이달 초 주목할만한 새로운 최빈사망연령 통계를 내놓았다. 1970년대 이래 우리 사회의 최빈사망연령 추세와 성별 격차 등을 분석해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이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최빈사망연령(2015~2019년 기간의 5년 평균)은 남성 85.6년, 여성 90년으로 나타났다. 자살이나 사고 등으로 조기 사망하는 이들을 제외하고 다수의 여성은 이미 기대수명인 85살을 넘겨 90살까지 산다고 추정할 수 있는 수치다. 남성도 기대수명은 80살이지만 이미 85살을 넘겨 생존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표 너머의 현실에서는 물론 그 이상을 사는 이들도 있다.주목해야 할 지점은 최빈사망연령이 보여주는 한국인의 고령화 모습이다. 대다수 한국인은 80살 언저리에서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90살 가깝게 사망하고 있어 한국 사회의 고령화는 기대수명이 보여주는 모습보다 훨씬 심각하고 더 긴 안목의 노후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개인의 노후설계는 물론 건강보험 및 국민연금 등 고령기 사회정책 디자인도 이런 현실에 맞춰 점검해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최빈사망연령을 기초로 본 남녀간 수명 격차의 모습도 기대수명 수치와는 살짝 다르게 나타났다. 1970년대 초반(70~74년) 남성의 최빈사망연령은 67.50살이었고, 여성은 80.96살에 이르렀다. 산업화 시대, 성별 사망 격차는 무려 13.46년에 이르러 남자는 여자보다 13년 이상을 먼저 사망했다. 이 격차는 1980~90년대 한국 사회의 고속성장기를 거치면서 급속히 줄어, 90년대 초반(1990~1994년)에 이르러, 남성은 76.16살, 여성은 83.13살로 나타났다. 남녀 간 최빈사망연령 격차가 7년 정도로 좁혀진 것이다. 2000년대 초반(2000년~2004년)에는 남성의 최빈사망연령도 80살이 처음 넘어섰다. 이 시기 최빈사망연령은 남자 80.08년, 여자 85.31년으로 격차는 어느새 5.23년으로 줄었다. 마침내 근년(2015년~2019년) 들어 남녀간 성별 사망 격차는 남성 85.60년, 여성 90년을 기록해 4.40년으로 줄었다. 기대수명 지표에서 나타나는 성별 격차가 6년으로 나타났음을 고려하면 1.6년 더 좁혀진 모습이다.최빈사망연령에서 보듯 남녀간 성별 사망 격차는 해마다 좁혀져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오래 산다”는 세간의 통념보다는 적은 4년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차이가 지속해서 좁혀진다면 언젠가 ‘백년해로’라는 말이 단지 상투적인 주례사가 아닌 현실의 언어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1970년 이래 다른 나라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대표적인 초고령화사회인 일본의 최빈사망연령을 보면, 1970년대 초반 남성 78.23년, 여성 82.32년이었다. 그러다 20년 전인 2000년대 초반 일본 여성의 최빈사망연령은 이미 90살을 넘었다. 당시 남성도 85살이 넘었다. 근년(2015~2019년)에는 남성 87.66년, 여성 92.49년을 기록한다. 같은 기간 프랑스는 남성 88.16년, 여성이 91.18년이며, 스웨덴은 남성 85.89년, 여성 90.15년이다. 미국은 남성 86.01년, 여성 89.85년으로 나타났다.우 연구위원은 “최빈사망연령 분석 결과,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생애 자체가 길고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생존 기간의 평균값에 해당하는 기대수명 지표에 더해 최빈사망연령을 추가로 생산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기대수명은 해마다 발표하지만, 최빈사망연령은 아직 공식적으로 내지 않고 있다.
기대수명과 최빈사명연령의 증가는 소득 향상 등 한국 사회의 괄목할만한 성장과 성취에 힘입은 것이지만, 각도를 달리해 살피면 ‘또 다른 이야기’들이 드러난다. 사회 내의 소득 수준과 교육, 지역 등에 따라 생존 기간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사망 불평등’이 그것이다.우 연구위원은 이 중에서 특히 교육수준별 사망 격차를 분석했다. 교육은 생애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고등교육은 노동시장과 관련해 기회의 불평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대체로 더 높은 교육을 받은 이가 더 많은 소득과 자산을 가질 기회를 갖는다. 중상위층에서 나타나는 ‘스펙 쌓기’는 교육의 이런 특성에서 기인한다.우 연구위원은 1985년에서 2015년까지 교육수준별 기대여명(30살 기준)의 격차를 살폈다. 이 결과를 보니 대졸 이상과 고졸 이하 집단의 기대여명 격차는 2015년 기준 남성은 4년, 여성은 2년으로 나타났다.대졸 이상의 남성은 고졸 이하의 남성보다 4년을 더 오래 살고, 대졸 이상의 여성은 고졸 이하의 여성에 비해 2년을 더 오래 산다는 뜻이다. 이 교육수준별 사망 격차는 1985년에는 남성은 6.8년, 여성은 2.92년이었다. 지난 30년간 전체적으로 수명은 가파르게 증가했지만, 교육수준별 사망 격차는 상대적으로 미미하게 줄었다는 얘기다. 이런 경향은 최빈사망연령 분석에서도 똑같이 확인됐다. 2015년 기준 고졸 이하의 최빈사망연령은 83.96년이었지만, 대졸 이상은 86.90년이어서 3년의 격차를 보였다.교육수준이 낮은 계층은 높은 계층에 비해 수명도 짧지만, 특히 고학력층에 견줘 사망 시점이 특정 구간에 집중돼 있지 않고, 더욱이 건강이 좋은 상태에서 보내는 기간(건강기대여명)도 짧은 것으로도 확인됐다. 저학력 계층은 교육수준이 높은 계층에 비해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는 기간이 더 길고, 생존 기간과 사망 시점 또한 더 불확실하다고 우 연구위원은 풀이했다. 우 연구위원의 이번 분석 결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신 보고서 <한국의 사망력 변천과 사망 불평등>에 상세히 수록돼 있다.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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