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에선 ‘유동성 파티’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연일 사상최고가를 경신하던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올해 들어 조정받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 구루는 소나기(증시 변동성)가 올 것을 알고 미리 대비했을까.
최근 14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개한 투자 보고서를 통해 세계적인 투자자 4인(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레이 달리오, 빌 애크먼)의 지난해 4분기 투자 전략을 살펴봤다. 보고서는 보유 주식 수 변동, 신규 투자 종목 등을 담고 있다. 4인의 투자 구루는 기술주 대신 소비재 위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정비해 인플레이션 방어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버핏, MS 인수 전 블리자드 투자로 ‘잭팟’
가장 눈에 띄는 건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주식 쇼핑 목록이다. 기술주를 선호하지 않던 그가 게임사 액티비전 블리자드에 10억 달러를 투자했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해 말 기준 10억 달러(1조1970억원) 상당의 액티비전(1466만주)을 지난 4분기에 사들였다. 성과는 좋다. 17일(현지시간) 나스닥시장에서 액티비전의 주가는 지난해 말(66.53달러)보다 21.7% 급등한 80.9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마이크로소프트 인수 소식이 주가 오름세에 불을 붙인 것이다.
국내에서 손꼽는 가치투자가인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액티비전 투자는 버핏의 가치투자의 기본인 ‘쌀 때 산다’는 철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버핏이 투자에 나선 지난해 4분기는 액티비전 주가가 성차별적인 직장문화와 성 추문으로 크게 떨어졌던 시기다.
버핏은 정유회사인 셰브론도 940만주(약 11억 달러) 추가로 매수했다. 버핏은 지난해 말 기준 약 45억 달러(5조 3887억 원) 상당의 셰브론 주식(약 3800만주)을 보유하고 있다.
장기투자를 선호하는 버핏의 4분기 포트폴리오 상위 종목은 순위 변동이 없다. 애플(1575억 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449억 달러), 아메리칸 엑스프레스(248억 달러), 코카콜라(236억 달러), 크래프트 하인즈(116억 달러) 등 5개 종목이 투자 규모 기준 포트폴리오의 75%를 차지한다. 대부분 인플레이션에 강한 금융주와 소비재 종목이다. 이 같은 포트폴리오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가총액(7066억 달러)은 지난 17일 메타(5894억 달러)를 제쳤다.
워렌버핏(버크셔 헤서웨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리비안 ‘담고’ QQQ ‘판’ 소로스
버핏과 달리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는 신생 전기차 업체 리비안을 대거 매입했다가 손해를 봤다. SEC에 따르면 조지 소로스가 이끄는 소로스 펀드 메니지먼트는 지난 4분기 리비안에 20억 달러(2조3998억원)를 투자했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28.14%를 차지한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리비안은 소로스의 투자를 받았음에도 (현재) 주가는 지난해 고점 대비 67% 떨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공급망 문제로 지난해 생산 목표치를 채우지 못한 데다 삼성 SDI와의 배터리 생산 계약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조지 소로스(소로스 펀드 메니지먼트).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소로스도 투자의 귀재답게 올해 나스닥 하락장에 대한 대비를 지난해에 마쳤다. 소로스는 나스닥 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QQQ상장지수펀드(ETF)를 대거 팔았다. 3억 6620만 달러(4382억원)까지 늘렸던 투자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940만(11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뿐 아니다. 나스닥 지수가 하락하면 이익을 낼 수 있는 QQQ 풋옵션을 71만주 어치(약 2억8247만 달러) 사들였다.
레이 달리오(브리짓워터 어소시에이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투자 구루들은 지난해 말 인플레이션 헤지에 전념한 모습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릿지워터어쏘시에이츠의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는 소비재 기업 위주로 투자 비중을 늘렸다. 비누와 세재 등을 만드는 프록터앤갬블을 4분기에 50만주를 (약 8200만 달러) 추가 매입해 비중을 가장 크게 늘렸다. 전체 보유 규모는 8억 달러(9585억 달러) 정도다. 코스트코, 펩시, 맥도날드, 존슨앤드존스 등도 쇼핑 바구니에 담았다.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가격 전가’가 가능한 가격결정력이 높은 기업들이다. 실제 코스트코는 최근 멤버십 가격을, 팹시와프록터앤갬블은 제품 가격을 올렸다.
빌 애크먼(퍼싱 스퀘어 케피털 메니지먼트).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버핏과 투자 방식이 유사해 ‘베이비 버핏’이라 불리는 헤지펀드 투자자 빌 애크먼이 이끄는 퍼싱 스퀘어 캐피털 메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는 지난해 3분기와 큰 변화가 없었다. 대부분 소비재 기업이다. 포트포리오 비중으로 보면 미국의 주택 개조 회사 로우스 컴퍼니(21.94%)가 투자 비중이 가장 크고, 뒤를 이어 힐튼 월드와이드 홀딩스(18.57%), 치포틀레 멕시칸 그릴(18.42%), 버거킹과 파파이스가 속해 있는 레스토랑 브랜즈인터네셔널(13.73%) 순이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인플레이션 시기에 수익이 높은 종목은 가격 전가가 가능한 독점력을 가진 브랜드 소비재라는 게 투자 구루의 포트폴리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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