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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건강-간

간암 수술 후 5년... 남은 인생은 덤, 재밌게 살고 싶어

 

youtu.be/Ma-2pWLLIHA

 

민경윤 작가, 편집=홍헌표 기자  승인 2020.10.29 08:20

 

<간염에서 간경변, 간암에 이르기까지의 똑똑한 투병기> 출간 

‘우리간사랑 카페’ 회원들과 가끔 통화를 하는데, 어떤 분들은 정말 힘들게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통화를 할 때마다 위로의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집니다. 결국 꺼내는 한 마디는 "힘내요!!!”입니다.

제 아내는 우리 신혼 초에 50대 초반이었던 저의 두 형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식도정맥류였던 큰 형님은 지혈이 안되어서, 둘째 형님은 간경변 말기로 긴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당시 서른도 안 되었던 저에게 아내는 “당신도 마지막엔 저렇게 되겠구나!"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미 그 때 아내는 제가 어떻게 될지 이미 예견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B형간염 보유자는 환갑을 못 넘겼기 때문에 저 역시도 ‘내가 환갑을 넘길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당시 내 인생의 목표는 환갑까지 재미있게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짧지만 굵게 살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1995년부터는 매년 세 번씩 아이들까지 데리고 비행기 비즈니스석으로 해외 여행을 다녔습니다.

결국 59세를 못 넘기고 간암이 발병해 수술을 했는데, 그래도 환갑은 넘겼습니다. 간암 발병 당시 자료를 찾아 보니까 5년 생존율이 35%였습니다. ‘앞으로 5년만 더 재미있게 살자’고 마음 먹고 가지고 있던 비상금을 몽땅 아내에게 주고 집도 아내 명의로 넘겼기 때문에 지금 저는 빈털털이입니다.


저는 능소화를 참 좋아합니다. 지난 여름 우리 집 마당에 핀 능소화를 보며 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자주 가졌습니다.
간암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아내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교 때 은사님이 말기암으로 돌아가시기 3개월 전 집에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주변 친구, 지인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했대요.” 아내도 내게 ‘아름다운 죽음을 생각하고 있으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처음 간암 진단을 받을 때 생존율 35% 정도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저는 항상 마음으로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이면 절제 수술을 받은 지 5년이 됩니다. 엊그제 아내는 “당신은 재발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군요. 아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겠지요.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는 5년 단위로 인생을 끊어 살려고 합니다. 올해가 지나면 그 5년이 한 번 지나갑니다.

환갑이 넘어 사는 제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이라서 재미 있게 살려고 합니다. 어찌어찌 해서 우리간사랑 카페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스트레스도 받지만 고마워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보람을 느낍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도 항상 재발의 위험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간암 환우들은 아프지 않은 분들보다는 평균 수명이 짧은 게 사실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간암 수술 후 오래 사신 분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수명이 점점 늘고 있고 간암 치료 후 60세를 넘긴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젊은 분들이 갑자기 발병하여 크게 고통을 받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간은 참 신비로운 장기입니다. 간을 잘라내더라도 30%만 있으면 정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암이 발병하면 암세포는 혈관이나 림프절을 통해 우리 몸을 돌아 다니고,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져서 다시 세포분열을 하면 재발, 전이라고 한답니다. 재발을 막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정신 건강인 것 같습니다. 회원 중에 말기인데도 건강한 사람처럼 생활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들과 얘기를 해보면 한결같이 편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B형간염 보유자들은 성격이 예민하고 좀 신경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간암 발병까지 한 분들은 더 예민합니다. 이 것을 이겨내려면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누군가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부처님처럼 넒은 마음으로 살도록 본인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앙 생활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 또 다짐합니다.

우리 집 마당을 보면서 항상 생각합니다. ‘올해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구나’ 하면서요.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한 번 힘을 내어 이겨봅시다.

출처 : 캔서앤서(cancer answer)(http://www.canceranswer.co.kr)

 

 

기자명 최윤호 기자  승인 2020.07.31 11:16


모친과 두 형을 B형간염에서 기인한 간경변으로 여의고, 결국 본인도 간암 수술을 받고 "치병(治病) 중"이라는 민경윤 씨(64).

그는 B형간염 보유자였지만, 정기검사만 받으면 될 줄 알고 지내다가 간경변, 간암 진단을 잇달아 받았다. 항상 '괜찮다, 간수치가 정상이다'과 같은 말을 들어왔는데, 간암까지 가버렸다. 수술 후 5년. 슬기롭게 암을 다스리면서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사람들에게 꼭 해야할 말이 있다. 너무 후회되는 자신의 사례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간염에서 간경변, 간암에 이르기까지의 똑똑한 투병기>라는 제목의 책을 냈고 언론과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다.

장마가 끝나가는 금요일 오전, 그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듭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B형간염이 있다면 항바이러스제 복용의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간암 수술 후 5년, 긍정적 마인드로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민경윤 씨와 그의 저서 표지.
어머니와 두 형도 간경변으로 세상 떠 

평온한 삶을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격랑 같은 날들. 그가 겪어온 그 세월의 아픔을 들어봤다.

“2014년 갑자기 간경변 진단을 받았습니다. 제 나이 58세. 아직 한창 때인데, 믿을 수가 없었어요. 모계 B형간염 수직감염자인 걸 알고 있었기에 평소 조심했고, 의사의 말을 잘 들어왔어요. 6개월마다 정기검진도 받았고, 검진 때마다 정상이라 아무 문제없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안심하고 살았죠. 그런데, 느닷없이 간경변이라니...”



그는 대장내시경을 하자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동네 내과에서 내시경을 하면서 간초음파도 찍었는데 간경변 초기 진단을 받았다. 충격이 컸다. 어머니와 두 형을 간경변으로 잃고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는데, 허사가 됐다. 그때부터 항바이러스제 ‘비리어드’를 복용하기 시작했고, 좋아하던 술도 끊었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난 2015년 11월. 민경윤 씨는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간암 진단을 받은 것.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며 몸 관리를 잘해 왔고 주치의도 간수치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초음파을 찍었는데, 왼쪽 간엽 S3에 2cm 결절이 있었다. 간암 같지만 다행히 초기이고, 가장자리에 있어서 절제수술을 하기 좋은 위치라고 했다.

그래도 눈앞이 깜깜해졌다. 간암은 위험하다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수술이 잡혔다. 2015년 11월 30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간암수술을 했다. 간 좌엽S3뿐 아니라 S2까지 절제했다.

간암 체험 나누기 위해 네이버 카페 운영

그리고 5년. 그는 지금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핵심간부였던 회사를 은퇴하고, 새로운 삶을 즐기고 있는 민씨는 나름의 원칙들을 철저히 지키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를 몇 개 만들어 운영해오다가 최근에는 ‘우리간사랑'에 집중하면서 간암 예방, 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민경윤 씨가 운영하며 환우들과 정보를 나누고 있는 네이버 카페 '우리간사랑'.
민경윤 씨에게 물어봤다.

간암 진단 후, 뼈저리게 후회했다고 하는데...

“몰라도 너무 몰랐다. 조심하면 된다고 막연히 믿었던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마음 독하게 먹고 간에 대해 공부했다. 인터넷 정보와 관련 논문을 샅샅이 뒤졌다. 간염→간경변→간암, 이 진행을 챙겼어야 했는데 못했다.”

가장 커다란 실수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좀더 일찍 DNA 검사를 받았어야 한다. 간수치가 정상이라도 변종바이러스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는 DNA 검사를 받았어야 했다. 그리고 좀더 일찍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했어야 했다. 가족력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랬어야 하고, 그랬다면 간경변과 간암으로의 악화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교훈이랄까, 다른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첫째, 간수치가 정상이어도 DNA 검사는 꼭 해야 한다. 둘째, B형간염 보유자는 되도록 빨리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야 한다. 건강보험 비급여더라도 꼭 복용해라. 셋째, 간암 조기발견을 위해 프리모비스트 MRI를 꼭 찍어봐야 한다. CT로는 보이지 않는 1cm 미만의 암도 잡힌다. 이 세가지만 챙겨도 간염이 간암으로까지 진행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요즘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며 활발하게 행동하고 있는데...

“내가 했던 실수를 남들이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하고 있는 후회를 남들은 하지 않도록 하고 싶다. 똑똑한 환자가 되어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정보를 나누길 원하기 때문에, 내가 만든 카페들을 정리하면서, 전파력이 좋은 카페 <우리간사랑> 하나에 집중하고 있다. 간질환에 대한 믿을만한 정보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증상에 대해 설명도 해주고, 회원들의 물음에 답하기도 하면서 내 나름의 방식으로 다른 환우들을 돕고 있다.”

음악 속 15kHz 이상의 소리는 암세포 생성을 억제한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 그중에서도 바이올린 연주가 이에 적합하다. 음악감상을 하며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민경윤 씨.
요즘 건강상태는?

“이제 간암 수술 후 5년째다. 요즘도 매일 항바이러스제를 먹으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부터 먹는 것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특별히 챙기는 건강생활 원칙 같은 것이 있나?

“날마다 ‘채소, 견과류, 과일’로 구성된 도시락을 챙겨 먹는다. 아내가 정성껏 도시락을 싸준다. 고맙기 그지없다. 당근, 토마토, 브로콜리, 양배추, 적채, 파프리카 같은 채소가 기본이고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과일들이 더해진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건강한 섭생원칙. 5대 영양소를 골고루 먹고, 다양한 컬러 푸드를 먹는 등 자연식 위주의 식생활이다. 그리고 운동을 하루 2시간씩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바로 바로 푼다. 털어내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인생을 즐기며 사는 노하우가 있나?

“매일 항바이러스제를 먹고 6개월마다 MRI를 찍고 혈액검사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간암이 내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지는 않다. 보너스처럼 주어진 삶이라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인생을 즐기려 한다. 그림도 그리고, 합창단에서 노래도 하고, 색소폰도 분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치유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건강을 챙기되 나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살아가겠다는 것이 긍정적 삶의 노하우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것은 다 하면서 살고 싶다는 민경윤 씨는 틈틈이 그림을 그려 전시회도 하고 판매도 하는 화가다.
화백으로 소개하는 글들도 있던데, 그림 이야기를 조금 더 해달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그림을 그리면 학교 복도에 붙여지곤 했다. 젊은 시절 어머니와 두 형을 잃고는 내 인생이 60 넘기기 어렵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50대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지금도 계속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것은 사실이다. 유명하진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화가다. 해외에서 그림이 팔리기도 하니까(웃음).”

올초에 나온 책에 대해 설명해 달라.

“간염에서 간경변 간암에 이르기까지의 똑똑한 투병기라고 긴 제목을 붙였다. 나 민경윤의 진짜 체험기다. 1부 '간은 졸이다', 2부 '간을보다·기본상식', 3부 '간을 들이다·용어와 특징', 4부 '간을 맞추다·관리방법', 5부 '간에 좋다'와 같이 구성된 책에는 내 솔직한 간질환 체험기와 극복을 위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도, 많은 사람들이 항바이러스제만 복용하면 될 일을 타이밍을 놓침으로써 간암으로까지 악화되는 고통을 겪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점. 최근의 정보를 포함한 수정보완판을 준비하고 있다.”

끝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아픈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면 좋겠다. 내가 하지 않아 겪어야 했던 아픔을 남들은 겪지 않아야 한다. 내 경험이 수많은 간염, 간경변, 간암 환자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도 썼고, 인터뷰도 하고, 인터넷 카페도 운영한다. 다들 하루하루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출처 : 캔서앤서(cancer answer)(http://www.canceranswer.co.kr)

 

 

"암 수술 방으로 가며, 우리는 무사히 살아나가길 기도했다"

 

나는 2014년 12월 간경변 진단을 받고 B형간염 항바이러스제를 먹었는데, 불행히도 암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2015년 11월 간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전 검사는 복잡합니다. 흉부 엑스레이, 심전도, 뼈 스캔, 펫 씨티(PET CT), 위 내시경, 폐 CT, 기생충 검사, ICG-R15 테스트, 혈액 검사 등 이전까지는 용어도 몰랐던 여러 검사를 받았습니다.

ICG-R15 테스트는 검사 전에 미리 공부를 해두었는데, 간 기능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검사입니다. ICG는 인도시아닌 그린(Indocyanine green)의 약자로, 간기능-순환기능 검사나 안저검사에 쓰이는 형광색소입니다. 간에 의해 선택적으로 흡수되고 담즙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간의 경변이나 절제 가능 범위를 가늠하는 데 유용합니다. 다행히 이 수치가 정상치를 웃돌아 수술 후 관리만 잘 하면 될 것 같다고 안심하였습니다.

나는 복강경 수술을 원했는데, 수술을 담당한 주치의는 “열고 보면서 수술을 해야 암세포를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며 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개복 수술을 하게 된 거죠.


수술을 앞두고 대기실에 만난 환자들은 떨거나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술 당일 오전 7시15분. 병원 직원에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휠체어를 가지고 나를 데리러 왔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에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수술실로 가는 동안 여태까지 살아왔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내가 암환자가 되고 대수술을 받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술실이 가까워질수록 심장박동도 급격히 빨라졌습니다.

대기실에 있는데 남자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왔습니다. 잔뜩 긴장했는지 가볍게 떨고 있었습니다. 저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손을 꼭 잡고 말을 시켰습니다. 얘기를 주고 받으며 그분은 조금 안정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나도 한결 차분해졌습니다. 또 다른 여성 한 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꼭 내 마음 같아서 다독거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모두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 방에서 무사히 살아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수술 대기실에서 느꼈던 무수한 감정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느낀 적이 없는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짓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각자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의료진이 분주히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절차에 따라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했습니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있으니 몸이 경직되었습니다. 어찌나 추웠던지.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드디어 마취과 의사가 들어오고, 마스크를 씌우더니 숫자를 세라고 합니다. 넷까지 센 것 같습니다.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습니다.


수술 받고 첫날부터 폐 협착 예방을 위해 불기를 했다. 욕이 나왔지마 아픈 배를 움켜 쥐고 했습니다./게티이미지뱅크 
간호사가 이름을 묻고는 바로 입원실로 옮겼습니다.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하였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수술 전 연습한 볼 띄우기 기구(폐협착 예방용)를 열심히 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수술 자리가 아파 욕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빨리 낫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불었습니다. 공 3개를 한 번에 올려야 성공인데, 아픈 배를 움켜쥐고 숨을 짜내도 1개를 올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8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은 환자 치고는 꽤 잘 하고 있다고 저를 위로해보았지만 작은 공 3개를 띄우는 일은 지구를 드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날 회진을 온 주치의가 수술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간 좌엽 S3만 절제하려다가 확실하게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범위를 넓혀 S2도 절제했다고 들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아내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내 간은 여전히 중기 간경변 상태였습니다. 암 세포는 제거했지만 건 상태가 좋아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간호사는 진통제 버튼 사용법을 알려주며, 통증이 심하면 누르라고 했습니다. 생각보다는 아프지 않아서 진통제 버튼을 자주 누르지는 않았습니다. 걷기를 많이 해야 장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장폐색도 피할 수 있다고 해서 수시로 복도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병동에는 아픈 사람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옆에 있는 보호자도 몸이 성치 않아 보였습니다. 심지어 의료진도 아픈 사람인 듯 했습니다. 병원에 오래 있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빨리 퇴원하고 싶은 생각에 무리한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걸었습니다.

수술 이틀 째 요도에 끼운 호스를 뺐습니다. 동작이 자유로워져 혼자 수액걸이를 끌고 다니며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잠이 안 와 휴게실에 가 앉아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통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옆에 앉아 계시던 분이 “아버지에게 생체간이식을 해준 효자”라고 말해주더군요. 수술 후 통증이 너무 심해 잠을 못 자고 저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잠시나마 가족에게서 간이식 수술 받기를 원했기에, 그 청년의 모습을 보고 간암제거 수술을 잘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나 아들이 그 고통을 겪게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술 후 넷째 날이 되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기록실에서 절제 부위 조직검사지를 복사해 해석했습니다. 에드먼슨 등급을 봤더니 비교적 예후가 좋은 초기 간암이었습니다. 수술 경과도 좋고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었습니다. 수술 1주일 후 드디어 실밥을 뽑고 퇴원을 했습니다. 보통 간암환자는 수술에서 퇴원까지 열흘 정도는 걸리는데 저는 꽤 빠른 셈이었습니다.

출처 : 캔서앤서(cancer answer)(http://www.canceransw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