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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홍콩 가는 수출품 90%가 중국행…韓주력 반도체 불똥 `촉각`

美 `홍콩 특별지위 박탈` 엄포…한국산업 영향은



중계무역 요충지인 홍콩
美제재로 물류비용 증가 우려

글로벌 자금 홍콩→싱가포르
금융사 자금조달 비용 커져
18억弗이던 딤섬본드 발행액
작년 1.5억弗로 크게 줄어

 

◆ 기로에 선 홍콩 ◆

미·중 갈등의 중심에 선 홍콩 리스크로 한국 산업계에 `불똥`이 튀고 있다.

미국의 홍콩 특별지위 박탈이 현실화하면 홍콩을 중계무역 기지로 활용하던 국내 기업들은 당장 물류비용 상승 등 직간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이 격해지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반도체 수출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3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홍콩은 한국의 4위 수출대상국이자 지난해 301억3300만달러의 무역 흑자를 낸 우리나라의 무역 흑자 1위국이다.낮은 법인세와 안정된 환율, 높은 중국 본토 접근성 등 뛰어난 무역 여건 덕분에 우리 기업들이 중국으로 재수출을 하기 위해 활용하는 중계무역의 요충지 역할을 한다. 지난해에만 한국에서 홍콩으로 간 수출품 중 90% 이상이 중국으로 들어갔다. 지난해 한국의 홍콩 수출액 319억달러 가운데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홍콩으로 가는 반도체 물량의 대부분이 중국으로 들어간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무관세 제품이어서 중국 직수출로 전환이 가능하다"며 "이 경우 물류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화웨이의 스마트폰 생산이 위축되면 메모리 수요가 감소해 장기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간접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화장품, 농수산식품 등 품목도 중국의 통관·검역이 홍콩에 비해 까다롭기 때문에 통관 과정에서 차질이 예상된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은 "중국에 바로 수출하는 것보다 홍콩을 경유하는 게 비용 절감 측면에서 유리했다"며 "중국도 최근 규제 수위를 낮추고 있지만 여전히 홍콩을 경유하는 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외에 대중 홍콩 수출액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정유·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회사 전체 매출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로 미미하다"며 "갈등이 장기화하면 수출 전선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중 갈등 확대가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무역협회는 "미·중 갈등 확대로 중국이 홍콩을 경유한 대미 수출길이 막히면 우리 기업의 대미 수출이 상대적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로 석유화학, 가전, 의료·정밀, 광학기기, 철강 제품, 플라스틱 등에서 반사 이익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계는 홍콩이 제 기능을 상실하면 국내 금융사들의 주요 위안화 조달 창구가 사라져 타격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KDB산업은행, 신한은행 등 국내 금융사들은 홍콩에서 딤섬본드를 발행해왔다. 딤섬본드는 홍콩에서 발행하는 위안화 표시 채권이다.

업계 관계자는 "홍콩 위기가 계속되면 위안화 조달 비중이 더 낮아져 달러 의존도가 심화되는 등 외환 효율성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딤섬본드 발행 필요성이 많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2018년 18억1000만달러였던 한국의 딤섬본드 발행은 2019년 1억5000만달러로 급감했다. 달러 자금 조달 비용이 감소한 것도 위안화 매력을 떨어뜨렸다.

한 국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상당한 자금이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로 이동 중"이라며 "향후 홍콩 금융시장 금리가 전반적으로 올라 국내 금융사들의 자금 조달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주요 은행들 금융자산이 홍콩에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리스크 요인이다. 작년 3분기 기준으로 산업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 5개 은행의 홍콩 익스포저는 4조8417억원에 달한다. 익스포저 가운데 위험가중자산은 작년 3월 말 3조5210억원에서 같은 해 9월 말 4조208억원으로 14% 늘어났다. 홍콩 사태가 지속되면 증권사를 중심으로 금융 주선, 투자금융 자문 등 투자은행(IB) 업무 기회를 잃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크다.

신한은행은 홍콩IB센터와 홍콩지점에 각각 26명, 21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KB금융은 홍콩 지역 내 KB국민은행 지점과 KB증권 현지법인이 진출해 있으며, 하나금융도 홍콩지점, 하나글로벌재무유한공사 등 2개 조직을 홍콩에 두고 있다.

 

 홍콩 문제로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제기되자 정부와 금융당국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시장 모니터링에 착수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원·달러 환율 움직임이 커진 것은 우리 경기 부진이나 외환시장 외화 수급 상황이 반영돼 그런 것은 아니다"며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큰 요인은 미·중 분쟁이 고조되면서 위안화 변동성이 영향을 미쳐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기재부는 일부 시중은행 등에 장기적으로 미국 제재 수위에 따른 홍콩에서의 비즈니스 이탈 가능성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홍콩을 이탈할 글로벌 금융기관·자본을 한국에 유치할 수 있는 방안을 염두에 둔 시장반응 조사로 보인다.

[문일호 기자 / 원호섭 기자 / 백상경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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