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色 '몸뻬'입고 신나게 호미질… 우럭·바지락 어느새 양손 가득
"서울 다녀온 지 8년쯤 됐나…. 말로만 듣던 강남도 언제 한번 가봐야 될 텐데."
남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항마을까지 태워다 준 택시 기사는 "서울 말씨 참 오랜만에 듣네요"라며 한참 서울 얘기를 이어갔다. "하긴 요즘엔 가끔 창원만 들러도 복잡하고 어지러워 못 살겠데요. 여길 한번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가."
택시에서 내리니 새파란 하늘 아래 그보다 더 파란 바다가 펼쳐지고, 둥글둥글 아담한 섬이 물 위에 떠 있었다. 소박한 풍경 사이사이로 승용차 수십대가 빽빽히 들어찼다. 어촌의 고된 일상을 직접 겪어보겠다며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 도시 가족들이다.
경남 남해군 문항마을에선 주민 150여명이 물고기 잡고 농사지으며 산다. 4년 전 전국 최우수 어촌체험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밀물 때 공중에 매단 그물을 바닥으로 내려 고기를 가두고 썰물 때 맨손으로 잡는 개막이 고기잡이, 바지락·쏙·우럭조개 캐기, 돌굴 따기(겨울)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갖췄다.
마을 사무장 정경희씨는 "무엇보다도 우리 마을은 수산 자원이 풍부해서 인기가 많아요. 막상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면 실망해서 다시는 오지 않을걸요"라고 했다.
물때 따라 체험 시간은 매일 달라진다. 이날은 원래 오후 2시로 예정돼 있었으나 예상보다 물 빠지는 속도가 느려 체험객 200여명이 1시간 30분간 기다렸다. 성질 급한 도시 손님이 문의 겸 항의를 하러 오면 어민들은 무심히 답했다. "어찌할 방법이 없어요. 지구가 하는 일인 걸."
말문이 막힌 도시 부모들은 아이를 데리고 둑에, 정자에 걸터앉아 '지구의 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은 햇빛이 쨍쨍해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 되겠네요." 안내 방송과 함께 갯벌이 열리자 색색 화려한 '몸뻬' 차림 체험객들이 찰랑대는 물속으로 첨벙첨벙 들어섰다. "반드시 맨손으로 고기를 잡아주시고 어른은 한 사람당 두 마리까지만! 아이들에게 양보해주시면 정말 신나는 추억이 될 거예요." 숭어, 농어, 줄돔 같은 커다란 물고기를 두 손 가득 움켜쥔 어른과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질러댔다.
바닷물이 완전히 빠지자 마을 바로 앞 8자 모양으로 나란히 떠있는 섬 상장도·하장도로 이어지는 모랫길이 드러났다. 마을 사람들이 '보물 중의 보물'이라 부르는 섬이다. S자로 살짝 구부러진 길을 따라 체험객들이 섬으로 건너가 호미를 손에 들고 바지락을 캐기 시작했다. 일부는 다시 마을 쪽으로 건너와 쏙과 우럭을 캤다.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모래를 뒤지다 보니 5분도 채 되지 않아 온몸이 쑤셨다. 특히 바지락보다 두 배 이상 큰 우럭은 20~30㎝ 정도 모래를 깊이 파야 보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마치 다이아몬드라도 찾는 것 같은 얼굴로 웅크리고 앉아 조심조심 조개를 골라냈다. 아이들 핑계로 모처럼 도시에서 벗어난 어른들도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해가 저물고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 손에 물고기와 조개를 담은 비닐봉투가 주렁주렁 달렸다. 지구와 자연이 하는 일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내고 나니 복잡하고 어지러운 서울로 돌아갈 일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경남 남해군까지 시외버스로 4시간 30분 걸린다. 남해터미널에서 문항마을까지 택시 20분 소요. 자가용 이용 시 남해고속도로 진교IC 또는 하동IC→남해대교→설천면→문항마을. 주소 경남 남해군 설천면 강진로 206번길 54-19. 마을 내 40곳에서 민박을 운영한다.
개막이 맨손 고기잡이 체험 참가 비용 중학생 이상 1만5000원, 5세~초등학생 1만원. 갯벌 체험 중학생 이상 1만원, 5세~초등학생 5000원. 장화·운동화를 반드시 준비해야 하며 대여할 경우 1만원을 내고 반납할 때 8000원을 돌려받는다. 물에 젖어도 되는 편한 옷이나 수영복, 목장갑을 가져가면 좋다. 매일 물때가 달라지므로 날짜별 체험 가능 여부와 시간대를 사전에 꼭 확인해야 한다. 개막이 고기잡이 체험은 100명 이상 체험객이 모이는 날에만 실시한다.
'트랙터 마차' 다음 목적지는 옥수수밭입니다
농촌은 사람에게 마법을 건다. 노동은 놀이가 되고, 불편은 낭만이 된다. 허리를 굽혀 감자를 캐고 뙤약볕을 견디며 옥수수를 따면서도 절로 흥이 난다. 트랙터 마차의 승차감은 승용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찬 바람이 쌩쌩 나오는 에어컨 대신 정자에 앉아 더위를 식히며 수박 한 입 베어무는 게 전부. 그런데도 아이들은 "또 오고 싶어요"라고 외친다. 마법이다. 도시라는 콘크리트 성(城)에서 벗어나 농촌의 자연 속으로 아이와 함께 떠난다.
"감자는 뿌리식물일까요 줄기식물일까요? 땅콩은요?" 농촌 체험을 온 어린이집 아이들과 학부모 20여명 앞에서 질울고래실마을 이서영 사무장이 목청 높여 말했다. 아뿔싸. 손에 호미를 든 아이들은 이미 감자밭을 뒤지느라 답이 없다. 고사리손에 주저없이 흙을 묻히며 자기 팔뚝만 한 감자를 찾았다. "줄기식물이요!" 학부모 몇몇이 대신 대답한다. 이미 학부모들 태반도 줄줄이 나오는 감자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 무더기씩 감자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땅콩이 줄기식물인지 뿌리식물인지는 이미 관심 밖이다. 아이도 어른도 흙투성이가 됐다.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떨어진 경기 양평 질울고래실마을은 서울 근교에 있는 시골 친척집 같은 곳이다. 성인 엄지손가락만 한 여치가 뛰어다니고 물에는 소금쟁이가 떠 있다. '사람 살기 좋은 곳은 벌레도 살기 좋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경기권에서 농촌 체험 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나 다시 찾겠다고 말하는 손님이 많다. 마을 입구 옆을 지나 흐르는 실개울이 농촌에 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농촌 체험 마을은 절기·마을별로 수확 체험을 하는 작물이 다르다. 이 마을에서는 봄에는 딸기, 7월 초까지는 감자, 7월 중순부터는 옥수수 수확 체험을 한다. 수확한 감자와 옥수수는 체험 온 사람들끼리 나눠 갖는다.
'트랙터 마차'로 마을회관(식당·샤워장)에서 감자밭으로, 옥수수밭으로 이동한다. 트랙터에 나무 수레를 2대 이어붙였다. 승용차 대신 탈 뿐인데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옥수수는 감자와는 달리 어린이들이 수확하기 조금 어렵다. 가장 낮은 곳에 매달려 있는 옥수수도 어린아이 머리보다 한참 위에 있다. 아버지가 아이를 안아 들고 옥수수를 따게 한다. 다른 학부모가 따라 했다. "옥수수는 따면 4시간 안에 쪄야 단맛이 줄지 않아요." 사무장의 말에 어머니들 눈빛이 바뀐다. 이날은 옥수수가 아직 다 여물지 않아 체험 삼아 몇 개만 따봤는데 아이들보다도 학부모가 더 신났다. 하나라도 더 가져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누에는 평생을 뽕잎을 먹고 자라다 고치를 치고 누에나방으로 부화해요. 태어나서는 짝짓기를 한 뒤 알을 낳고 1주일 정도 뒤에 죽어요. 여기 이 좁쌀만 한 게 누에 알이에요." 마을 '왕삼촌(할아버지 대신 왕삼촌이란 표현을 썼다)'이 설명을 이어나간다. "누에나방은 날개가 있어도 파르르 떨 뿐 날지를 못해요. 이 접시만 한 바구니 안에서 평생을 살다 죽는 셈이에요. 인간이 기원전 5000년 전부터 키웠기 때문에 혼자 살 능력이 없어요."
그가 누에고치 10여개를 물에 넣고 끓이고서 나무막대기로 휘휘 저었다. 막대에 실 가닥이 6~7개가 감겨 올라온다. 원을 그렸을 뿐인데 실이 거짓말처럼 달라붙는 모습이 마치 솜사탕 기계에 젓가락을 넣고 돌리면 풍성한 솜사탕이 완성되는 걸 떠올리게 했다. 명주실 뽑는 법을 글로만 배웠던 학부모들도 탄성을 뱉는다. 막대에 감겨 올라온 실을 물레에 감아 걸고 손잡이를 돌리면 고치에서 실이 계속 뽑혀 나온다. 명주실 뽑기 체험은 아이보다 학부모가 더 재미있어한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반찬 7~8가지가 나오는 뷔페식 점심 뒤에는 물놀이가 시작됐다. 논에 방수포를 깔아 만든 농구장 2개 크기 정도 간이 물놀이장에 아이들이 뛰어들었다. 성인 무릎 높이 얕은 풀장이다. 계곡처럼 돌에 긁혀 다치거나 모기에게 시달릴 우려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농촌 체험에서 물놀이까지, 한자리에서 해결이다. 이 풀장에 메기를 풀어 아이들이 손으로 잡고, 그 메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는 일정도 있다. 아이들이 물에서 온 힘을 다해 뛰노는 동안 부모는 한숨 돌릴 여유를 얻는다.
서울에서 경기 양평 양서면까지 차로 1시간 안팎이 걸린다. 자가용 이용 시 서울 강변북로→가운사거리→삼패사거리→질울고래실마을. 대중교통 이용 시 경의중앙선 국수역에서 걸어서 20분 거리. 국수역에서 마을로 가는 택시가 있다. 주소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서도곡길 76.
트랙터 마차 체험, 계절별 작물 파종·수확 체험, 점심식사, 물놀이 등의 당일치기 프로그램이 2만5000원~3만5000원 선. 누에고치 명주실 뽑기 체험, 인절미 만들어보기, 메기 잡기, 움막 체험 등 각종 프로그램을 상담 후 맞춤 제공한다.
얼음처럼 쪼개진 바위… 지친 마음 식혀줄 계곡으로 간다
몸에서 그늘이 빠져나가면 앓는다. 그늘은 물과 바람, 흙과 풀에 서식한다. 그리고 호흡을 통해 옮겨다닌다. 그늘은 반드시 고도(高度)를 필요로 하며, 고도차가 그늘의 묽고 짙음을 결정한다. 누구나 조금씩은 갈병에 시달리고 있다. 너무 밝은 여름, 한낮의 세상에서 살아왔다. 지친 사람이 더 높은 산, 더 깊은 골을 찾는 이유. 산촌으로 간다.
서울에서 2시간 달려 강원도 춘천에 닿는다. '호반의 도시…' 녹색 표지판이 경계를 알린다. 땅의 높이가 달라지며 본격 녹음이 펼쳐진다. 여기서 20분을 더 달린다. 북산(北山)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 작은 촌락이 하나 숨어있다. 46번 국도를 타다 추곡 터널을 지나 굽잇길을 한참 오른다. 소양강댐에서 더 안쪽, 물 안으로 들어간다. 물안마을. 소양강댐이 생기기 전부터 강 안쪽에 마을이 있어 그리 불렸다. 북산면 부귀리 물안마을에서 차를 멈춘다. 남으로 소양호, 북으로 오봉산·부용산이 날개처럼 감싼 땅이다. 지난달 산림청이 휴가철 가족 여행지로 공식 추천했다.
"여!" 멀리서 동네 이장을 역임한 마을 주민 강석필(59)씨가 반긴다. 산촌 체험은 산촌 사람을 닮는 일. 감자를 캐고 옥수수를 따고 그것을 가마솥에 넣고 쪄먹는다. 이걸로 일단 기본을 해둔다. 강씨가 뒷산에 삼을 캐러 가자 한다. 산양삼(山養蔘)이다. 그늘진 산중에 씨 뿌리고 몇년 푹 묵히면 혼자서 자라나는 것들. 산은 으레 그렇듯이 그렇고 그런 풍경의 와중에 예외적 순간을 풀어놓는다.
그저 뒷산으로 불리는 가파른 비탈면을 오른다. 무성한 잣나무 숲이다. 고라니·멧돼지를 쫓기 위한 야영 텐트 너머, 나무 사이사이 동그랗고 빨간 열매를 단 산양삼이 보인다. 심마니처럼 설레기 시작한다. 잎자루 다섯개 달린 10년생을 하나 골라 호미로 살살 땅을 판다. 뇌두부터 가락지, 잔뿌리가 흙에서 빠져나온다. 몸통의 횡취(나이테)가 그늘로 충만하다. 손가락으로 서늘한 기운이 옮겨온다. 함께 온 아이들이 실뿌리 같은 손으로 더덕 따위를 캐며 신기해한다. 침엽수 사이로 바람이 자꾸 불어온다. 이곳을 찾은 15일, 서울과 이곳의 최저기온 차이는 6.5도였다.
산촌의 백미는 역시 계곡. 흙도 털어낼 겸 '물안계곡'으로 간다. 이런 데에도 계곡이 있나, 의심할 때 산은 진가를 드러낸다. 삼막길을 따라 500m쯤 가다 도로 옆 '산불 조심' 따위가 적힌 현수막을 젖히자 아래로 난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 내려가니 별세계다. 얼음처럼 쪼개진 바위, 그 위를 무두질하는 1급수 쾌수(快水). 이끼가 한가득 초록을 출산한다. 성인 무릎 정도 잠기는 수심, 바닥에 웅크린 다슬기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토종메기·버들치·꺽지·수수미꾸라지 같은 까다로운 물고기가 산다. 뛰어들어 물장구를 안 칠 수가 없다. 강씨가 "나뭇가지 하나 꺾어다 8호짜리 낚시줄 감아 던져넣어보라" 한다. 춘천서 왔다는 한재수(47)씨가 30분이 채 안 돼 버들치 열 마리를 낚아 바구니에 담아놨다. 낚은 고기는 바로 매운탕. 잭나이프로 배를 따고 손가락으로 내장을 쭉 밀어낸다. 모랫빛 속것이 울울 풀려나간다. 그것들을 한데 모아 밭에서 딴 깻잎을 넣고 고추장·된장을 풀어 끓인다. 뼈가 연해 씹어삼켜도 목에 걸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고도는 산의 특전이다. 보이지 않던 것이 탁 트이는 순간 눈이 환해진다. 계곡에서 10분쯤 오르막 도로를 올라가면 건봉령 승호대가 나온다. 소양강 전경이 곧장 펼쳐지는 곳이다. 출사(出寫)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경승지라 한다. 항아리에 담긴듯 고요한 29억톤의 물. 물새처럼 멀리서 배 한 척이 산기슭 단애 쪽으로 미끄러져온다. 보고 있자니 푸석푸석하던 몸에 물이 돈다.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이제 숙소로 내려가 감자전이나 부쳐 먹을까.
1박 2일 코스 감자 캐기·산양삼 캐기·목공예·오디 인절미 만들기·뽕잎 칼국수 만들기·숲 해설가와 산책·계곡 물놀이·밤낚시(점심·저녁식사 포함). 1인당 6만원
산양삼 캐기 2만원. 보통 6년근 2~3뿌리를 캘 수 있다.
20인 이상 단체객일 경우 1인당 1만원. 4~5인 소수 인원일 경우 1인당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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